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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부모의 가족이 더는 갈등의 요인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일 뿐이다.
 편부모의 가족이 더는 갈등의 요인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일 뿐이다.
ⓒ I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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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 소재에서 ‘가족’이 빠진다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을까? 유교적 가부장적인 제도의 틀을 유지했던 과거에서부터 핵가족과 이혼이 만연된 지금까지 숱한 가족드라마를 우리는 보아왔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대가족 제도에 근간하는 모습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너무나 교과서적인 가족의 모습, 이혼이라는 상황을 극단적으로 그리는 내용이 드라마의 주류를 이루었다. 즉 사회는 변화해 나가는데, TV 드라마 속 가족의 모습은 그대로여서 답답해하는 시청자도 많았다.

이 가운데 조금씩 드라마 속 가족이 현실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진화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현상은 아무래도 세 쌍 부부 중 한 쌍이 이혼하는 시대의 덕(?)을 본 듯싶다. 이혼하는 부부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대가족 제도는 깨지고 말았고, 때문에 편부모를 둔 가정, 재혼한 가정 등의 다양한 가족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나마 대가족의 모습을 유지하던 일일드라마와 주말드라마도 서서히 진화하기 시작했다. 또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이 변화하면서 부부관계 또한 예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통적 대가족만이 가족은 아니야!

우선 이러한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에서 진화한 대표적인 사례로 <커피프린스 1호점>과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을 들 수 있다. 공교롭게도 박원숙이라는 중견 배우가 모두 어머니 역으로 등장한다.

<커피프린스 1호점>의 경우 주인공 은찬(윤은혜)이 편부모 가정인데, 으레 가장은 어머니의 몫으로 그려지던 것에 반해 딸인 은찬이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돈벌이로 동생 은새(한예인), 어머니(박원숙)가 먹고 살아간다.

이제껏 보았던 가정의 모습이지만 그것을 다루는 데 있어 사뭇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으레 편부모 가정을 묘사할 때 반항하는 자식 혹은 생계를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지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정작 편부모 가정 은찬네는 누구보다 발랄한 가족이다. 거기에 생계를 위해서 맏딸이 책임지는 것에 대해 본인 스스로 불평 한 번 하지 않는다. 또 어머니는 가난하지만 애교 넘치고, 예쁜 중년의 모습이다.

여기에 어머니를 좋아하는 노총각 구씨(이한위)는 줄기차게 그녀에게 해바라기를 보이고, 어머니의 재혼에 대해 두 딸은 “좋은 사람 있으면 결혼해라”고 말하는 등 재혼에 대해 관대하다.

으레 재혼은 드라마 속에서 갈등의 요인으로 등장해 부모자식 간의 갈등으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문제처럼 그려졌으나 이 드라마에서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일상으로 그려져 보다 재혼가정이 증가하는 현실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에서도 편부모 슬하에 두 딸이 등장하는데, 어머니(박원숙)는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고 두 딸을 키워온 억척엄마로 등장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이혼과 아버지의 외도를 두 딸은 이해한다.

사뭇 진지해질 법도 한데 불륜과 이혼이 갈등 요인이 아니다. 또한 큰딸 정미희(김성령)가 남편의 외도로 세 번이나 이혼했음에도 그러한 부분에 대해 심각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딸의 남자를 찾아주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여기에 자신도 스스로 그러한 남편을 둔 것에 대해 힘들어하기보다는 이혼으로 받은 위자료로 여행사를 키워 사장으로 일하면서 재혼할 상대 남자를 적극적으로 찾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윤희(배두나)네 가족의 모습도 불륜과 이혼, 편부모 가정으로 예전 같으면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할 만한 요소들이 함께 모여 있어도 역시나 화목하고 발랄하다.

대가족 속에서 이혼과 사별한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대가족 속에서 이혼과 사별한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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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주말드라마 <깍두기>도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독특하게 이혼과 사별한 사람들의 사랑이야기가 주축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주말드라마는 대가족의 모습을 미덕을 삼아 대부분 불륜과 이혼, 재혼을 갈등의 원인으로 그려왔다.

보통 그러한 소재들은 조연들이 담당해왔으나, 이번 드라마에서는 내용의 중심축으로 달라지는 가족의 모습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극 중 정동진(김승수)은 서지해(김보경)와 이혼했고, 유은호(유호정)는 사별한 여성으로 등장해 삼각관계를 이루며, 재혼 커플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처럼 이젠 편부모 가정 혹은 재혼가정이 흉이 아니다.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드라마에서도 이젠 갈등을 조장시키는 요인보다는 하나의 일상으로 그려지면서 조금씩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을 주장하던 것에 비해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력 부재로 남편이 권력을 잃어버렸지만 부부관계는 이상무!
 경제력 부재로 남편이 권력을 잃어버렸지만 부부관계는 이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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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지는 아내, 약해지는 남편

이처럼 가족의 모습이 진화하면서 핵가족이 보편화되었다. 이러한 가족의 모습이 경제력과 맞물려 가족 내에서 권력도 이동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박해미(박해미)와 이준하(정준하)의 부부를 들 수 있다.

경제력을 상실한 이준하와 한의사로 집안의 경제력을 떠받들고 있는 박해미. 두 사람은 경제력 이동으로 권력 또한 아내이자 며느리 박해미가 서열 1위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아내의 말이라면 대체적으로 ‘Yes'로 답하는 이준하.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러한 권력이동이 이들 부부 관계에 있어 아무런 갈등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이러한 가족의 경우 돈을 잘 벌지 못하는 남편이 의기소침해진 나머지 돈을 잘 버는 아내에게 열등감에 사로잡혀있거나, 아내 또한 무능력한 남편을 탓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들 관계에서 경제력의 이동으로 권력의 이동이 이어졌을 뿐 부부 금슬에는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 오히려 닭살 부부로 등장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줬으니 말이다. 이처럼 부부 관계가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들로 등장하는데 주말드라마 <깍두기>와 <며느리전성시대>에서도 이 같은 모습이 등장한다.

<깍두기>에서 정구만(김성겸) 일가의 정한모(김세운)는 고등학교 교감으로 대가족의 가장이지만 권위적이기보다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대가족하면 권위적인 가장의 모습과 아내와 자식들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보다 뒤에서 마음속으로 사랑을 주는 모습이 보편적이었는데, 이젠 그러한 모습에서 조금씩 진화한 것이다.

이와 함께 이승용(서인석) 일가에서도 이승용도 한 가정의 가장이지만 아내 최지숙(김자옥)의 행복이 가장 우선시되고 있다. 큰 며느리 박재영(박정숙) 때문에 툭하면 심사가 틀리는 최지숙. 그녀를 달래주는 몫은 남편인 이승용이다.

계란에 웃는 얼굴을 그려 아내에게 보여주며 화를 풀어주는 자상한 남편이며, 딸과 사별한 며느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비교적 그러한 집안의 대소사 및 자질구레한 일들은 어머니 혹은 며느리의 몫이었는데, <깍두기>에서는 그러한 모습은 남편의 몫으로 이동했다.

목소리가 높아지는 아내, 가족의 모든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목소리가 높아지는 아내, 가족의 모든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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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며느리 전성시대>에서는 전적으로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는 아내와 약해지는 남편의 모습이 등장한다. 주인공 조미진(이수경)의 가족을 보면 그러한 모습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금감원 국장 출신인 조민식(이영하)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고시를 준비하던 시절 부인 윤인경(김보연)을 만나 혈서를 쓰고 부인에게 충성을 맹세한 독특한 인물이다. 대게 경제력이 없는 남편이 아내의 기에 눌려 사는 모습이 익숙한 시청자에게 그는 굉장히 낯설다.

이유인즉 경제력으로 볼 때 전혀 꿀리지 않는 남편인데도 부인 윤인경에게 눌려 살며, 이 집안에서 목소리는 아내가 더 크다는 점이다. 또 권력이 아내에게 있어 딸의 결혼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그녀의 승낙이 곧 딸의 결혼으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대게 가부장적인 가족의 근간을 두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남편과 아내는 동등하지 못했다. 더 나아가 모든 권력과 결정권은 남편에게 있었지만 경제력 상실 혹은 부드러워지는 남성들의 모습 때문에 서서히 아내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이를 <며느리 전성시대>에서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러한 가족의 모습이 조금씩 진화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시대가 바뀌고, 가족의 모습이 다양화되는 시점에서 무조건 대가족의 제도만을 고집하거나, 그것을 보여줌으로써 현실과는 동떨어지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공감대를 잃어버려 시청률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이처럼 드라마 속 가족이 현실의 가족을 하나씩 담아갈 때 비로소 시청자들은 함께 웃고, 울고,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드라마의 순기능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진화는 아주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다음 편에서는 [2007년 드라마 키워드 청춘드라마 날다]가 이어집니다.



태그:#가족, #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 #깍두기, #며느리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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