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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오르막길에 자전거를 타고 애 쓰며 올라오니, 아담한 절집에 피어난 고운 살사리꽃이 가장 먼저 반겨줍니다.
▲ 압곡사에도 가을이 가파른 오르막길에 자전거를 타고 애 쓰며 올라오니, 아담한 절집에 피어난 고운 살사리꽃이 가장 먼저 반겨줍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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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한가위 큰 명절을 아주 즐겁고 알차게 보냈지요. 다른 이들은 적어도 닷새 동안 쉴 수 있는 날이었지만, 우린 겨우 사흘밖에 쉬지 못했어요. 게다가 하루는 비가 와서 꼼짝도 못했고요. 우리 부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자전거를 타고 부지런히 밟았답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경북 군위군에 있는 '압곡사'란 절을 소개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깊은 산속 외딴 곳에 있는 이 절과 여길 올라가는 길 풍경이 꽤 멋스러웠던 기억이 나요. 한번쯤 틈을 내어 꼭 가보려고 마음속으로 찜 해두었던 곳이지요.

구미에서 장천면 오로저수지를 지나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오르내리며 군위군 우보면까지 갔어요. 이 길은 보통 때에도 차가 많이 다니는데, 명절이라 그런지 더욱 많았어요. 우리는 자전거로 가야 하기에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은 매우 위험해요. 게다가 갓길이 거의 없는데다가 차는 또 어찌나 쌩쌩 내달리는지….

겁이 나서 찻길 건너 냇물을 따라가는 둑길로 갔다가 길이 끊기는 바람에 되돌아 나오기도 했어요. 다행스럽게도 우보에서 영천까지 가는 28번 국도는 생각보다 갓길이 꽤 넓었어요. 앞 기어를 3단에 놓고 거의 28~30㎞ 빠르기로 달렸답니다.

3시간 반 만에 고로면 화수리에 닿았어요. 예까지 와서 보니, 화수리 마을이 군위군과 영천시가 나뉘는 곳이더군요. 그러니까 우리는 군위군 끝까지 왔던 거였어요. 길가에 드문드문 '고로면 송이버섯'을 알리는 펼침막이 있는 걸 보니, 이 마을이 송이버섯으로 이름난 곳이고 지금 한창 제철인가 봐요.

이 작은 암자에 오려고 꽤 오랫동안 벼르고 별렀답니다.
▲ 선암산 압곡사 이 작은 암자에 오려고 꽤 오랫동안 벼르고 별렀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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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저 걸로는 못 가!"

화수 삼거리에서 마실 것을 사서 먹으면서 가게 아저씨한테 압곡사 가는 길을 물었더니 손사래를 치세요.

"아저씨, 압곡사를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하나요?"
"이 앞으로 한참 가야 하는데…….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거길 가요?"
"네."
"아이고, 저걸로는 못 가! 압곡사 올라갈라믄 길이 이런데!"


아저씨는 손짓으로 깎아지른 오르막길을 보여주었어요. 우리는 그저 웃으면서 다시 물었지요.

"그러면 압곡사에서 춘산면으로 넘어가는 길이 있나요?"
“길이야 있지. 그런데 거긴 돌탱이길이라서 자전거 타고는 넘기 힘들어! 차도 잘 못 가는데?"


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그 험한 길을 가느냐고 어이없는 듯 바라보셨어요.

집에서 떠날 때 위성지도를 살펴보니 압곡사에서 춘산면으로 바로 넘어가는 임도가 희미하게 표시되어 있는 걸 봤던 게 생각나서 그 길로 춘산면을 지나 의성군 탑리까지 다녀올 생각이었거든요.

어쨌거나 자전거로는 거기까지 못 간다는 아저씨 말을 뒤로 하고 또 부지런히 달립니다. 한참 동안 가다보니, <삼국유사>를 쓰신 일연스님이 계셨던 인각사가 나오고 (인각사 이야기는 다음편에 바로 소개할게요)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말없이 흐르는 물빛이 무척 고왔어요. 물빛도 산빛도 들판도 올여름 그 무덥던 날들을 견디며 조금씩 가을빛으로 물들고 있어요.

마을도 없는 길을 달려 온 가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높이 솟아있는 멋진 바위를 봤어요. 바위 모양이 무척 남다르게 생겼지요?
▲ 아미산 바위 마을도 없는 길을 달려 온 가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높이 솟아있는 멋진 바위를 봤어요. 바위 모양이 무척 남다르게 생겼지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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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 그런데 가면 갈수록 마을을 보기 힘들어요. 그저 보이는 건 산과 골짜기, 그리고 파란 하늘뿐이었어요. 그야말로 '오지'였어요. 마치 강원도 깊은 산골에 온 듯했어요.

화수삼거리에서 10㎞ 쯤 달려서 '가암 삼거리'에 닿았어요. 오른쪽으로는 '아미산'이라는 팻말이 있고 그 곁을 보니 우뚝 솟아있는 바위가 무척 멋졌어요. 마치 키큰 장군이 큰 칼을 들고 서 있는 모습 같기도 하고, 아이들을 가슴에 품고있는 아버지 같기도 한 그런 모습이었어요.

이젠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갑니다. 들머리에서 '압곡사 7㎞'라는 안내판을 따라가는데, 어이쿠! 이건 가는 내내 오르막이군요. 이제 가을이라고 해도 한낮에는 아직 햇볕도 뜨겁고 땀이 많이 나지요. 더구나 외딴 곳이라 사람구경도 할 수 없는 곳에서 오로지 길만 보며 올라갑니다. 이런 곳에 아스팔트로 길이 잘 닦여있다는 게 신기할 만큼 외진 곳이었어요.

한참 올라가다가 꼭대기에 닿으니 저 아래로 작은 마을이 하나 보여요. 여기까지 오면서 처음 보는 마을이라 무척 반갑기까지 했답니다. '낙전리'라는 이 마을 어귀에 사람도 서넛 보이고, 자전거를 타고 온 우리를 신기한 듯 보아요.

마을 앞을 지나 또다시 왼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압곡사로 올라갑니다. 1.8㎞라는 팻말을 보니, '어이쿠! 죽었구나!' 싶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아주머니 한 분이 자전거로 여길 어떻게 올라갈 거냐고 물어요. '압곡사' 이야기만 하면 저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손사래를 치니 덜컥 겁이 났어요. 그렇지만 이 절에 가려고 벼르고 별러 이 먼 길을 달려왔는데 코 앞에서 그만둘 수는 없죠?

물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올라갑니다. 들머리부터 어찌나 가파른지 용을 쓰면서 올라갔어요. 왼쪽으로는 가파른 낭떠러지이고, 차 한 대만 겨우 갈 수 있는 좁은 길이에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절집까지 1.8㎞나 되는 길이 꾸준히 가파른 오르막이었어요.

가파른 언덕길을 용을 써서 올라가 보니, 우와! 산 아래로 아까 봤던 낙전리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있어요. 작은 마을이 이 선암산 풍경을 제대로 살려주더군요.
▲ 낙전리 마을 가파른 언덕길을 용을 써서 올라가 보니, 우와! 산 아래로 아까 봤던 낙전리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있어요. 작은 마을이 이 선암산 풍경을 제대로 살려주더군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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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큼 올라가니 탁 트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아까 보았던 낙전리 마을과 논밭이 손바닥만 하게 보여요. 경치가 참말로 좋더군요. 깊은 산속에서 아무리 둘러보아도 파란 하늘과 골짜기뿐인데 저만치 아래로 몇 집 안 되는 마을이 이곳 풍경을 제대로 살려주더군요.

숨을 고르며 잠깐 쉬었다가 또 발판을 지그시 밟으며 올라갑니다. 아직도 길은 가파르고 저 위를 가늠할 수 없어요. 게다가 울창한 소나무 숲 그늘이라 길에 이끼가 많이 끼어있어 매우 조심스럽게 타야 했어요.

얼마쯤 가니 아저씨 한 분이 내려옵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더니, "아이고! 여길 어째 자전거를 타고…, 대단하시네, 이제 다 왔어요, 절까지는 여기가 가장 가파른 덴데…" 하시며 격려해주셨답니다.

시인의 가슴으로 오르는 압곡사

평평한 터 앞에 좁은 돌계단이 있어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어서 올라갔어요. 모퉁이 하나를 돌아서니 나무판자에다가 쓴 시 두 편이 눈에 들어와요. 모두 '압곡사 가는 길'이란 시에요.

하나는 최병창 시인이 쓴 시인데 꽤 오랜 세월이 흐른 듯 판자에 이끼가 끼어 글자를 희미하게 알아볼 수 있어요. 또 다른 하나는 박주엽 시인이 올해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와서 쓴 시였어요. 그 가운데 하나를 소개할게요.

압곡사 가는 길/ 시인 박주엽


최병창 시인이 쓴 시를 나무판자에 적어놓았는데, 오랜 세월을 견딘 흔적이 보입니다.
▲ 압곡사 가는 길 최병창 시인이 쓴 시를 나무판자에 적어놓았는데, 오랜 세월을 견딘 흔적이 보입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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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엽 시인이 압곡사를 오르며 쓴 시랍니다. 여기에 올라오는 사람은 누구나 느꼈을 듯한 마음이 시에 잘 나타나 있어요.
▲ 압곡사 가는 길 박주엽 시인이 압곡사를 오르며 쓴 시랍니다. 여기에 올라오는 사람은 누구나 느꼈을 듯한 마음이 시에 잘 나타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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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펐던 과거를
기억하게 일러주는 길

초파일을 앞두고
걸어놓은 연등길이 춤을 추네

낙전리를 지나
푸른 잎새소리 따라
높은 언덕길 오르며 마음을 닦고
새들의 노래장단에 맞춰
즐거움이 묻어나는 길

태고적 향취 그대로
수행하는 스님 뒷모습에

노송도 말없이
천년을 웃고있네

압곡사 가는 길은
내 슬펐던 기억에
사랑 심어주는 길

2007.5.10


여기 올라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듯한 마음이 매우 잘 나타나 있고, 무엇보다 쉽게 읽히는 시라서 참 좋았어요.

애쓰고 올라온 만큼 얻은 것도 많았어요. 그동안 여러 군데 절을 다니면서 느낀 거지만, 산길이 너무 넓어 차가 많이 지나다니는 크고 화려한 절은 어쩐지 구경하는 '맛'이 없어요. 작고 아담한 절이지만 조용하게 낮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스님은 참 좋겠구나! 싶었어요.

'부처가 따로 있을까? 여기에서 마음을 닦는 사람은 저절로 부처가 되겠구나!'

조용한 압곡사에는 사람 소리도, 스님 염불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찾아온 사람도 없는 듯, 있는 그대로 깊은 산속 풍경이 되어 있었어요.

다만, '선암산 압곡사'라고 쓴 현판이 걸린 절집 툇마루에다가 널어놓은 빨간 고추와 공양보살님이 입으셨을 듯한 옷가지만 빨랫줄에 걸려있을 뿐 아무 말 없이 산과 하나가 되어 있었답니다. 그야말로 이 고즈넉한 절집에서는 알록달록한 차림으로 찾아온 나그네도 저절로 풍경이 될 뿐이었어요.

보이는 건 그저 산이요, 골짜기 뿐이구나! 산 빛과 파란 하늘빛만 감도는 이 고즈넉한 절집에서는 알록달록한 차림으로 찾아온 나그네도 저절로 풍경이 될 뿐이로구나!
▲ 압곡사에서 내려다본 풍경 보이는 건 그저 산이요, 골짜기 뿐이구나! 산 빛과 파란 하늘빛만 감도는 이 고즈넉한 절집에서는 알록달록한 차림으로 찾아온 나그네도 저절로 풍경이 될 뿐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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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보살님이 입으셨을 듯한 옷가지만 빨랫줄에 걸려있을 뿐 아무 말 없이 산과 하나가 되어 있었답니다.
▲ 압곡사 빨랫줄 공양보살님이 입으셨을 듯한 옷가지만 빨랫줄에 걸려있을 뿐 아무 말 없이 산과 하나가 되어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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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산 압곡사 툇마루에 빨간 고추를 널어놓고 말리고 있어요. 또 다른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답니다.
▲ 압곡사에 머무는 가을 선암산 압곡사 툇마루에 빨간 고추를 널어놓고 말리고 있어요. 또 다른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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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덜 익은 감 하나 떨어져 나비가 입맞춤을 하고 누렇게 익은 늙은 호박은 고즈넉한 절집에도 가을이 찾아왔음을 알려줍니다.
▲ 절집에서 맞이하는 가을 아직 덜 익은 감 하나 떨어져 나비가 입맞춤을 하고 누렇게 익은 늙은 호박은 고즈넉한 절집에도 가을이 찾아왔음을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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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곡사에는 세가지 보물이 있답니다. 탱화와 아홉분이나 되는 선사영정과 또 다른 하나, 물맛 좋기로 이름난 샘이지요. 참으로 시원하고 달콤했답니다.
▲ 세가지 보물 가운데 하나 압곡사에는 세가지 보물이 있답니다. 탱화와 아홉분이나 되는 선사영정과 또 다른 하나, 물맛 좋기로 이름난 샘이지요. 참으로 시원하고 달콤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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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뒤로 하고 절집을 빠져나왔어요. 올라오는 길이 가파르고 힘들면 내려가는 길도 조심스러워요. 조심조심 내려와서 이번에는 춘산면으로 갑니다. 지도에서 봤던 그 희미한 산길이 실제로 있는지 알아보기도 해야 하고, 그 길을 따라 춘산면을 지나 의성 탑리리까지 가야했기 때문이에요.

춘산면까지 가는 길은 화수삼거리에서 만난 아저씨 얘기대로 그야말로 '돌탱이길'이었어요. 여기도 꾸준히 오르막이었는데 쿵덕거리며 돌길, 진흙길을 빠져나가야 해요. 갈 길은 멀고, 배는 고프고, 끊임없는 오르막길이 무척 힘들게 하네요.

※ 다음 이야기는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이 계셨던 곳, 인각사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군위군 고로면 낙전리 선암산 압곡사는?
선암산 높은 곳에 자리한 압곡사는 신라문무왕 17년(677)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압곡사라는 이름은 의상대사가 인각사를 세운 뒤에 부속암자를 찾던 가운데 절에서 약 8㎞ 떨어진 아미산에 올라가 신통력으로 나무로 오리를 만들어 날아가게 하고는 이 오리가 앉은 곳에 암자를 짓고 절 이름을 압곡암이라 지었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런데 본래 이 골짜기에는 물이 없었는데 나무오리가 앉은 뒤부터 깨끗한 물이 흘러내리고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압곡사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었는데, 물맛이 뛰어난 샘과 보물급 탱화와 아홉 분의 선사영정을 따로 모셔두었습니다. 그 가운데 탱화는 누군가 훔쳐가 버렸고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수월당대선사, 의상조사, 사명당대선사와 모두 9분의 큰스님 영정을 따로 모셔두고 있습니다.


태그:#압곡사, #자전거, #압곡사 가는 길, #박주엽, #선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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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자전거는 자전車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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