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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경선 당시 광주가 노무현을 선택해 '노풍'을 불러일으켰듯이, 개혁세력을 자처하는 대통합민주신당의 각 후보들도 광주의 표심에 승패가 갈린다며 '올인'하는 형국이다. 

정동영 후보는 "여기서 1등 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전체에서 통하게 되어 있다"고 말하고 손학규 후보도 "29일 광주 경선은 이번 대통령을 결정하는 경선"이라고 말했다. 이해찬 후보는 '若無湖南 是無國家'(약무호남시무국가)라는 한자로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각 후보들은 추석 연휴기간 내내 광주에 머물면서 광주의 표심을 달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27일 대통합신당의 유세가 있는 광주 현장에 도착해 발을 딛는 순간, 지난 2002년 대선과 현재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게 보였다.

 

"정동영·이해찬 올리면 당 해체돼 버릴 것... 이명박이는 못되여"

 

광주역에서 내려 택시를 잡자마자 처음 만난 한 택시운전사는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들에 대한 비관적 민심을 전했다.

 

"그놈들은 물 건너 갔당께, 되들 안혀. 가능성 있는 걸 혀야제".

 

그러면서도 그는 손학규 후보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는 "같은 한나라당이라두 이념이 달라. 이명박이 허구 맞붙었을 적에 손학규밖에 없당께"라고 못 박듯 말했다.

 

이해찬 후보와 정동영 후보에 대한 점수는 박했다.  그는 "이해찬처럼 국민들 지지를 못받는 사람얼 후보로 내놔보랑께, 본선에선 안되지라, 되덜 안혀요"라고 말한 뒤 "정동영, 이해찬을 찍어줄 처지가 못된당께"라고 거듭 힘을 줬다. 이어 "대통합 신당 생각도 안혀요, 만약 정동영이허구 이해찬을 당으로 올려 놓으믄 그대로 당이 해체되어 버릴것이여"라고 말했다.

 

이명박 후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명박이는 대통령감이 못되여. 절대 전라도는 이명박으로는 안 가여"라며 반한나라당 정서를 그대로 전했다.

 

문국현 후보에게는 후한 점수를 줬다. 그는 "유한킴벌리 사장 문국현이가 된다"며 "정동영, 손학규보다 문국현이가 대통령이 될거다"라고 확신에 찬 말을 했다.

 

오후 2시 광주 명주체육관에서 유세가 시작됐다. 세 후보를 지지하는 지지자들이 실내를 메웠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많이 없었다. 약 2000여 명 정도로 2층만 채우고, 3층은 텅 비었다. 1층 바닥은 기자들과 내외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정동영 후보가 전체 좌석의 반이 되는 5000명을 채우겠다고 장담한 것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아무리 조직력이 튼튼하다고는 해도, 불법을 용인하지 않는 선거법이 강화되면서 조직 동원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역시 조직 동원 면에서는 세 후보 중 정동영 후보가 1등인 것 같았다. 지지자들은 40~50대 사람들로 생동감 있고 열성적이었다.

 

유세는 간결하게 앞뒤 찬조연설과 축사도 없이 짧은 후보들 연설만으로 끝났다. 유세가 끝난 후 기차를 타기 위해 광주역 근처 양동시장으로 가는 택시를 잡았다.

 

50대 초반의 택시기사는 "손님들이 대선 이야기를 안혀요…. 개인적으로 손학규헌티 기대를 혔는디 경선 도중 그 짓거리를 혀 실망했고…,한나라당에서 하는 짓거리를 또 하고 있다"며 "기사들이 그런 아집을 가지고 정치하면 안된다더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광주에는 지역주의 없어요, 언론들이 괜히 부추기는 거지… 여긴 이명박 지지하는 사람도 있어요, 예전과 다르죠, 예전에는 민주당 깃발만 들면 다 찍어줬는데"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통합민주신당에서는 누굴 지지하냐고 묻자 "이해찬은 머리에 든것이 많은지 똥고집이고 손학규는 경선을 끝까지 갈지 의심"이라며 "정동영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민주당을 탈당한 이낙연 등 8인 중에 박광태 광주시장,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손학규 지지를 한 게 표심에 영향을 주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예전에는 민주당에 기대를 걸고 찍었는데 지금은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당을 떠나서 인물을 보고 뽑을 것이고, 이젠 광주도 많이 반성하고 인물 본위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은 뭐 얼어죽을... 먹고 살기도 바쁜데"

 

확실히 2002년과 현재 상황은 많이 달랐다. 대선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그전보다 많이 둔화됐고 노태우, 김영삼 정권 때보다 지역주의가 많이 사라졌다. 더 이상 망월동을 다니고 시내에서 전경들과 싸우던 때의 광주가 아니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만들어낸, 지역주의를 버린 성숙한 광주시민들의 모습이었다.

 

이번에 만나본 시민들은 대부분 한나라당이든 범여권이든 당을 따지지 않고 인물을 본다고 말했다. 이명박이도 괜찮고, 박근혜도 괜찮고, 한나라당을 뛰쳐나온 손학규도 괜찮다는 것이다.

 

광주 양동시장에서 만난, 자신의 나이를 49세라고 밝힌 한 남성은 자신있게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다. 

 

그는 "(한나라당) 경선이 일관성 있었고, (TV) 드라마 등을 통해 이명박 후보가 산업화, 건설산업 등 젊은시절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며 "서울시장을 잘해왔다"고 지지 이유를 밝혔다.

       

 
양동시장 내 한 순대국밥집에 들어섰다. 이곳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 확정되고 난 뒤 순대국밥을 먹었다고 해서 유명하게 된 분식집이다. 하지만 주인 남아무개(43)씨는 그때도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고 했다.

 

남씨는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나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니까 행운이라는 생각으로 지지하게 됐다"며 "그 이후 장사가 잘 됐다, VJ특공대 등 특선 방송에 많이 나와 장사가 잘됐는데 지금은 노무현 대통령이 인기가 떨어지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밥먹고 갔다'고 하면 그냥 나가는 사람도 있다"고 다른 분위기를 전했다. 

     

남씨는 "지금도 지지하는 사람이 없지만 이명박이 경제적으로 박식하다, 경제 대통령으로 인정한다"며 "영호남과 당을 떠나 나라가 잘 돼야 좋다"고 말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할 뜻을 내보였다.

 

반면 시장에서 만난 정천주(66·전남 곡성)씨는 "이명박이 안 될 것 같다"고 예측했다. 그는 "(이 후보 외에) 다른 사람은 관심이 없지만 누가 되든지 국민을 편안하게 잘 해주는 사람이 되면 되지 않겠나"라고 말해 아직 뚜렷한 지지 후보가 없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석용(39)씨도 "특별한 사람이 없다, 이명박 후보를 위쪽에서는 많이 지지하는 것 같은데, 있는 사람들, 강남 한나라당 사람들이 지지하겠지만 (나는) 무덤덤하다"며 "확실한 뭐가 없지만 그중 손학규가 낫다. 행정적으로 준비가 된 후보인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역을 가기 위해 세번째 탄 택시기사는 냉랭하고 말이 없었다. 그는 "(대선에) 관심 없어요, 대선이 뭐 얼어죽을…, 먹고 살기도 힘든데"라고 불평할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대부분 광주시민들도 "먹고 살기 힘들다"며 대통령 선거, 특히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에 관심조차 없었다.

 

한편 지난 17일에 미국으로 출국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출국하기 전 박지원 비서실장을 통해 광주·전남 인사들에게 이해찬 후보 지지를 요청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어 광주 표심의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9일 경선을 벌이는 광주 선거인단은 총 11만353명, 전남은 13만6163명으로 모바일투표와 여론조사를 제외한 전체 선거인단의 18%를 차지한다. 모든 후보들이 앞다퉈 광주의 표심이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하는데, 과연 투표률이 얼마나 되고 누가 이곳에서 승자가 될 것인지가 사뭇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세종뉴스(www.sje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 대선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태그:#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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