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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Salzburg) 거리와 골목에는 맑은 햇빛이 부서지고 있었다. 하늘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이 파랗다. 깔끔한 베이지 톤의 중세 건물들은 태양 아래에서 더욱 밝게 빛나고 있다. 나는 가족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잘츠부르크 골목을 누볐다. 나 혼자 여행이라면 수많은 문화유산을 둘러보느라 바쁘겠지만, 유럽이 처음인 아내와 딸은 골목의 가게와 사람들 구경에 여념이 없다.

모차르트 생가에서 좁은 골목을 지나자 넓은 대학광장이 나온다. 잘츠부르크의 유명한 재래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잘츠부르크 인근의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과일, 채소, 꽃, 약초 등이 거래되는 웰빙 시장이다.

 과일이 풍성하고 사람들의 활력이 넘친다.
▲ 잘츠부르크의 시장. 과일이 풍성하고 사람들의 활력이 넘친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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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적으로 여유를 가지면서 자유롭게 노천시장을 둘러보았다. 대규모 점포들은 아니지만 참으로 청결하고 운치가 있는 시장이다. 그리고 세계의 어느 시장과 마찬가지로 삶의 역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느 곳이나 비슷하다는 동질감을 느끼면서 시장 안의 편안한 분위기를 만끽했다.

아침 일찍 열리는 이 시장은 오후 3시~5시까지만 운영된다. 그래서 이 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눈에 띄었을 때는 주저하지 말고 바로 사야 한다. 오후 늦은 시간에 오면 시장 자체가 사라졌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 시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과일 가게다. 가게의 위치도 시장 입구여서 꽤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과일을 산다. 이 곳 오스트리아의 과일들은 모양이 참 예쁘고 탐스럽게 생긴 것들이 많다.

과일가게에서는 복숭아가 인기인데, 우리나라 복숭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익숙한 바나나와 같은 과일도 많지만, 나는 오스트리아만의 특색 있는 과일들을 골라서 먹어 보았다.

붉은 선홍빛을 띠고 있고 크기도 매우 크다.
▲ 오스트리아의 체리. 붉은 선홍빛을 띠고 있고 크기도 매우 크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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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독일 뮌헨에서도 사 먹었던 체리(Cherry)다. 과일 사먹기를 즐기는 아내가 그냥 지나갈 리 없다. 나는 우선 체리 열매 수십 개를 사서 가족과 나누어 먹었다. 무뚝뚝하게 보였던 과일 가게 아주머니는 일단 대화가 시작되자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나는 요란하지 않은 친절함이 오스트리아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느껴지는 그들의 국민성이라고 생각했다.

오스트리아 체리는 마치 핏빛과 같이 붉은 선홍색을 띠고 있고 크기도 매우 크다. 여행자들을 유혹하는 붉은 입술과 같은 체리. 체리를 한 개씩 입안에 넣어보았다. 입 속에 새콤달콤한 맛이 진하게 퍼진다. 농약을 치지 않은 체리라서 맛이 더욱 상큼하다.

나는 오스트리아에서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차창 밖으로 보이는 민가의 뜰에 키 큰 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나무 중 상당수가 체리나무와 사과나무였다. 나는 집 마당의 키가 꽤 큰 체리나무에 열매가 가득 열려있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부러운 정경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자기 집 안마당의 새빨갛게 잘 익은 체리를 따기 위해서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체리는 오스트리아 음식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과일이다. 국토가 바다와 접하지 않은 오스트리아에서 먹는 음식은 주로 사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고기와 민물생선이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체리를 졸인 육수에 고기를 썰어서 넣어 먹었는데, 고기에서 체리의 깔끔한 맛을 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 정열적인 붉은 색의 체리는 오스트리아 커피의 휘핑크림 위에 올려 지기도 하고, 체리 케이크의 원료로도 사용되기도 한다.

알프스 아래에서 자라 와인 원료로 쓰인다.
▲ 오스트리아의 청포도. 알프스 아래에서 자라 와인 원료로 쓰인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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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일가게에는 체리 외에도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과일인 청포도, 사과, 산딸기, 자두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수많은 알맹이가 탐스럽게 달린 청포도를 사서 바로 맛보았다. 청포도의 맛은 우리나라에서 먹는 청포도의 맛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달고 싱싱하다.

포도 재배 역사가 오래된 오스트리아의 포도와 우리나라의 포도 맛이 비슷한 것은 우리나라 과일의 국제화가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남부 알프스의 기후는 감미로운 포도를 만드는 데 아주 적당하다.  특히 품질 좋은 오스트리아 청포도는 좁고 가파른 산허리나 깎아지른 험한 언덕에서 어렵게 재배된다.

이 감미로운 포도는 화이트 포도주를 만드는 데에 사용되는데, 특히 이 포도로 만든 햇포도주 호이리게(Heurige)의 명성은 자자하다. 이 호이리게는 와인의 참맛을 아는 와인 마니아들이 마신다는데, 오스트리아에서 이 호이리게를 맛보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과일가게에서 사과도 샀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검정 비닐봉지에 사과를 담아주는 게 아니라 종이봉투에 사과를 담아 준다. 사과의 크기는 우리나라 사과보다 조금 작고, 생긴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농약 세례를 받지 않아서인지 당도는 우리나라 사과보다 덜한 것 같다. 아무래도 사과의 맛은 우리나라 사과 맛이 세계적이지 않을까 싶다.

달콤하고 신선한 맛이 있다.
▲ 오스트리아의 산딸기. 달콤하고 신선한 맛이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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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가게에서 잘 팔리는 과일 중에선 특이하게도 산딸기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잘츠부르크의 산딸기는 달콤하면서도 신선한 향이 있고 감칠맛이 났다.

나는 시장을 나와 거리를 걷다가 한 슈퍼에서 산딸기잼을 사서 호텔로 가지고 돌아왔다. 오스트리아의 산딸기가 브랜디에 절인 과일 잼과 페스트리 빵의 재료로 많이 이용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인공색소나 방부제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산딸기 잼은 한국의 잼 같이 그저 달지만은 않았다. 오스트리아 내에서 생산된 품질 좋고 당도 높은 산딸기만을 엄선해서 사용했다는 이 잼은 맛이 약간 씁쓸하면서도 밍밍했다. 약한 과일주 같은 새큼하고 달콤한 향기도 조금 난다. 그러나 이 건강한 잼 맛이 익숙해지면 달디 단 잼은 먹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이 잼을 먹으면서 내가 마치 시골길에서 직접 딴 산딸기를 먹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체리, 산딸기, 청포도! 오스트리아 과일은 열대의 과일같이 풍성하지는 않지만, 알프스 아래에서 자라는 예쁘고 탐스러운 과일이 많다. 그리고 그 맛이 나름대로 특색있다. 나는 오스트리아 여행 중에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한다는 명목으로 과일이 눈에만 띄면 조금씩 사서 먹었다. 더운 날의 갈증도 과일과 함께 날아갔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07년 7월의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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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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