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에 생각한 20대 후반의 나의 일과 사랑은 무엇하나 빠지지 않고 멋지게 성공한 남자의 그것이었다. 그땐 나이가 서른쯤되면 저절로 일에서도 인정받고, 사랑도 성공하여 결혼이라는 관문에 멋지게 골인할 줄 알았다.

그러나, 서른즈음에 바라본 나의 모습은 어릴적 상상했던 장밋빛 인생이 아니었다. 누구나 서른쯤되면 결혼하고 직장에서도 인정받을 줄 알았던 나의 생각은 그저 착각일 뿐이었다.

여자에게 있어서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는 단지 '30-1'이라는 숫자로만 치부하기엔 너무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20대 초, 중반의 여성들에게 결혼을 언제쯤 할 계획이냐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서른살 안에는 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남자에게도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는 혼란의 시기이겠지만, 여자에게 있어서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는 '젊음'이라는 버스의 종점에 다다른 안타까움에 "기사님 그만 STOP" 하고 외치고 싶은 승객의 심정이다.

스물아홉. 세상을 알만큼 알아버렸기에 감정대로 무턱대고 저질러버리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아직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아직은 20대 청춘이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고민에 빠져 허우적대기 쉬운 시기다. 불확실한 미래에서 오는 불안정한 심리가 살아가기에도 급급한 그들에게 더욱 큰 혼돈으로 다가온다.

영화 <싱글즈>를 통해 먼저 만난 스물아홉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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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아홉해를 살아온 자유로운 싱글족 여성의 일상을 잘 보여준다
ⓒ (주) 싸이더스 픽쳐스	관련사진보기

몇 해 전에 영화 <싱글즈>를 통해 만난 스물아홉 처자들은 사랑도 일도 거침이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때론 직장에서 상사 때문에, 일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끝까지 자기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더 당당한 여자가 되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 노력한다. 그녀들을 통해 흔히 '싱글족'으로 대변되는 라이프 스타일을 과감없이 보여줘 여성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싱글즈>의 스물아홉살 먹은 여자 동미(엄정화)는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결혼'을 전제로 하지않는 '연애'에 익숙하기에 여자는 나이가 차면 결혼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만큼은 어느 정도 자유롭다. 그녀의 '연애'와 '섹스'는 거침이 없다. 'Feel'이 꽂히면 처음 만난 남자와도 자유롭게 '섹스'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걸리적 거릴 게 없는 자유로운 인생관을 지닌 그야말로 '싱글족'이다.

추석 특집으로 24일 낮에 방영된 '성지혜' 감독의 영화 <여름이 가기 전에>에서 표현된 '스물아홉' 여자는 <싱글즈>의 '동미'와는 또 다른 '스물아홉'의 사랑을 보여준다.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 소연(김보경)이 방학 중에 한국에 들어와 잊지못한 옛 남자와 새롭게 알게된 남자사이에서 갈등하는 스토리가 주를 이룬다. 사실 갈등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갈등의 비율이 99:1 정도로 극단적으로 치우쳐있어 갈등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다.

'여름이 가기전에' 그녀가 바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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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조차 그녀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극도로 혼란한 심리상태의 스물아홉살의 여자를 만난다.
ⓒ ㈜엠엔에프씨	관련사진보기

새로운 남자 재현(권민)과 만나고 있을 때도 온통 머릿속에는 옛 남자인 민환(이현우) 생각 뿐이다. 그녀를 힘들게 하고, 마음 아프게만 하는 '민환', 그녀를 위해 온갖 배려를 아끼지 않는 '재현'. 제3자가 보기에는 당연히 '재현'을 선택하는게 그녀를 위한 선택이다. 그녀도 그걸 알고 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성적인 판단을 흐려놓는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내가 사랑하지 않는 남자'사이에서 철저히 '나를 사랑하지 않지만,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택한다. 이혼한 부인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바쁜 외교관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무신경한 말투로 그녀의 맘을 아프게 하고 그녀와의 약속을 번번히 깨고마는 나쁜 남자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이기에 그를 향한 모든것에 관대해진다.

'민환'이 보고싶다는 말 한마디에 만나고 있던 남자에게 거짓말까지하며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는 '소연'과 두손에 무거운 짐을 든 채 언덕길을 다시 내려가서 '생수 심부름'을 해오는 '소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랑의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희생만을 강요당하는 그녀가 안타깝기도 하고, 지극히 바보같게도 느껴진다.

바보같은 사랑 앞에서 힘들어하는 소연에게 재현이 묻는다. “도대체 소연씨는 누구예요?”. 그녀는 “나도 모르겠어요. 내가 누군지”라고 대답한다. '아홉수'중에서도 가장 힘든 '아홉수'라 할 수 있는 '스물아홉'을 살고 있는 그녀의 혼란한 심리를 대변해주는 대사가 아닌가 싶다.

영화 <여름이 가기 전에>에서 말하는 여름이 '젊음'일지,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있는 시간'일지, 아니면 '젊은날의 사랑'일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가기 전에 후회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게 아닐까.

안 그래도 명절에 일가 친척을 만날 때면 항상 듣는 말이 '결혼은 언제할 거니?', '사귀는 여자친구는 있니?' 라는 말들인데, 추석연휴에 스물아홉살의 사랑이란 주제의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연애'와 '결혼'에 대한 물음표가 더 커져가는 것만 같다.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교류의 사랑만 찾아가는 사랑의 네비게이션 시스템이 머릿속에 심어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