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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하려고 누군가 옥수수를 누마루에 걸어놓았어요. 옛집과 꽤 잘 어울리죠?
▲ 씨알 을 하려고 누군가 옥수수를 누마루에 걸어놓았어요. 옛집과 꽤 잘 어울리죠?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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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일은 '지례 흑돼지' 한 번 먹으러 가자!"
"지례? 거기 멀지 않아?"


"뭐 그다지, 한 50km쯤 되는데, 그까짓 거야 식은 죽 먹기잖아?"
"하하하, 그렇긴 한데 내일 날씨가 꽤 덥다던데…."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8월 19일, 이글거리는 뙤약볕을 받으며 자전거를 타기는 쉽지 않았어요.

경북 김천시 '지례'하면 '흑돼지 구이'로 아주 이름난 곳인데 가까이 살면서도 한 번도 가본 일이 없었어요. 이름난 먹을거리도 한 번 먹어보러 가자는데 아무리 더운들 마다할까요?

남들이 우리 보고 미쳤다고 하겠다!

먹성 좋은 우리가 이 지역에서 이름난 먹을거리를 찾아간다는 건 참으로 신나는 일이지요. 하지만, 말이야 '뭘 먹으러 가자!'이지, 남편은 자전거 탈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던 터라 '지례 흑돼지'로 날 꾀이고 있었던 거였어요. 하긴 지난봄부터 지금까지 늘 새벽밥 먹고 자전거를 타러 돌아다녔으니, 우리 둘은 모두 자전거에 어지간히 미친(?) 사람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해요. 하하하!

한낮 뜨거운 해는 피하려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나왔어요. 그러나 얼마만큼 달리다 보니 오전 9시밖에 안 되었는데도 벌써 해가 얼마나 뜨거운지 몰라요. 땀은 비 오듯 하고 바람 한 점 없이 33∼34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우리를 보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뭐라고 했을까요?

"애고, 남들이 우리 보고 미쳤다고 하겠다."
"가만히 있어도 뜨거운 날씨에 잔차 타고 간다고 말이야."


"하하하! 그러게 아이고, 덥긴 진짜 덥네!"
"어! 그런데 저기 저게 뭐지?"


"응? 어디?"
"저기 저 마을에 말이야!"


김천 남면을 지나 구성면에 들어섰을 때였어요. 저만치 앞서 있는 들판 뒤로 나지막한 집이 여러 채 있는데 그 가운데 있는 집이 무척 남달라 보였어요.

"어! 그러게 옛집 같은데?"
"한 번 가보자!"
"가만있어 봐. 오늘은 지례가 목적지니까, 먼저 거기부터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가보자!"

처음 지례에 가려고 마음먹고 그 마을에 볼거리가 있을까 싶어 이것저것 알아봤으나 그다지 마땅한 게 없었어요. 그런데 가는 길에 생각지도 못한 볼거리를 만난 거예요. 당장 자전거를 돌려 가보고 싶었지만 돌아올 때 들르려고 마음먹고 부지런히 발판을 밟았어요.

그나저나 날씨가 꽤 덥군요. 후텁지근하다 못해 등이 뜨겁기까지 해요. 집에서 나올 때 마련해온 물과 음료수가 있었는데도 무더운 날씨 탓에 어느새 데워져 너무 뜨뜻해서 마실 수가 없었어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가게만 보이면 내려서 시원한 음료수를 사서 마셨어요. 잠깐 쉴 때마다 서로 얼굴을 번갈아 보니, 벌써 벌겋게 달아올라 익을 대로 익었어요. 아무튼 올여름 둘 다 원 없이(?) 새까맣게 태우네요.


까만 돼지 두 마리가 귀엽게 웃고 있는 펼침막, 이 마을이 '지례흑돼지'로 이름난 걸 가장 먼저 알리더군요.
▲ 지례마을 들머리에요 까만 돼지 두 마리가 귀엽게 웃고 있는 펼침막, 이 마을이 '지례흑돼지'로 이름난 걸 가장 먼저 알리더군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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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례 흑돼지' 맛보려고 이 고생을 하다니...

"아이고, 얼굴이 말이 아니네. 자기 괜찮아?"
"아이고 죽겠다. 지례 흑돼지고 뭐고 이대로 가다가 퍼지겠다."
"그래도 예까지 왔는데 끝까지 가야지?"


어찌된 일인지 남편이 나보다 더욱 힘들어해요. 지도로 볼 때, 구미에서 지례까지 어림잡아 50km쯤 되는 길이었는데 실제로는 60km나 되더군요. 더위 때문에 지치고 힘들었지만 아무 탈 없이 지례 마을에 닿았어요.

마을 앞에 들어서니, 아니나 다를까 귀엽게 생긴 까만 돼지 두 녀석이 방긋 웃고 있는 그림을 넣어 '지례 흑돼지'를 알리는 펼침막이 먼저 맞아주네요.

찻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쭉 이어진 마을은 무척 작고 소박해 보였어요. 그런데 이름난 먹을거리가 있는 곳인데도 고깃집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어요. 서너 군데 있었는데 가게는 작았지만 가는 곳마다 손님들이 북적이는 걸 보면, 생각대로 '지례 흑돼지'가 이름나긴 했나 봐요.

그 가운데 자전거를 세워둘 만한 곳을 찾아 들어갔어요. 날씨가 너무 더워서 지칠 대로 지쳤지만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밥집에 앉아서 두툼하게 썬 흑돼지 고기로 소금구이를 해서 먹는데 참으로 맛있더군요.

배부르고 시원하니 꼼짝도 하기 싫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만큼 왔으니 다시 돌아갈 길도 아득한 것을….

처음 계획에는 점심을 먹고 가까운 냇가에서 발 담그고 쉬었다가 갈 생각이었는데, 막상 가서 보니 냇물이 얕은데다가 햇볕이 하도 뜨거워서 물이 미지근했어요. 마땅히 앉아서 쉴만한 곳도 없었고요. 어쩔 수 없이 다시 자전거를 탔어요. 이제는 아까 올 때 보았던 구성 마을에 있는 그 집으로 가려고 또 부지런히 달렸어요.

생각지도 못한 문화재를 만나다

김천에서 '신간회'를 이끌고 '광명학숙'을 차려 독립운동을 한 여환옥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삶터에요.
▲ 성산여씨하회택(문화재자료 388호) 김천에서 '신간회'를 이끌고 '광명학숙'을 차려 독립운동을 한 여환옥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삶터에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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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던 길로 돌아오면서 구성면에 거꾸로 들어서니, 길 왼쪽에 또 뭔가 남다른 것이 있어요. 바로 '방초정'이라고 하는 곳인데, 마을 한복판에 있는 꽤 큰 정자에요. 그 모양과 양식이 매우 남달랐어요. 이 얘기는 다음에 따로 자세하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윽고, 그 옛집에 닿았어요. 멀리서 봤을 때 대충 '옛집'이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아주 큰 집이었어요. 바로 '성산 여씨 하회택'(문화재자료388호)이라고 하는데, 바깥 대문채를 지나 넓은 마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ㄷ' 자 모양으로 만든 큰 집(정침)이 있어요. 한눈에 보기에도 꽤 오래된 집이고, 이 집에 살던 이가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겠구나! 싶었어요.

"야옹∼!"하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온통 다른 빛은 찾아볼 수도 없는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요. 마치 '아니, 저것들 뭐야! 누군데 알록달록하게 생긴 것들이 와서 날 방해하는 거야!'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를 노려보는 듯해요.

얼른 사진기를 들고 가까이 다가가니, 집 뒤로 냅다 도망을 가네요. 사람이 살지 않는 옛집에서 까만 고양이를 만나니 왠지 으스스하기도 했어요. 또 한쪽으로는 잘 쉬고 있는 녀석을 놀라게 한 건 우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미안하기도 했어요.

고양이 생각을 뒤로하고 집을 찬찬히 둘러보니, 가운데 있는 큰 마루를 중심으로 한쪽에 7∼8칸 되는 방과 부엌, 마루, 사랑방, 광(고방)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요. 누마루에는 누군가 말려서 씨알을 하려고 걸어놓은 옥수수가 제법 잘 어우러져요.

높게 지은 누마루나 처마 밑을 꼼꼼하게 살피는데, 옛집 짓는 전통 방법으로 나무에 홈을 내거나 깎아서 끼워 맞춰 넣은 모양이에요. 군데군데 못질을 한 흔적도 남아있는데, 아마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 조금씩 손 본 듯했어요.

가운데 있는 큰 마루를 중심으로 한쪽에 7~8칸 되는 방과 부엌, 마루, 사랑방, 광(고방)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요.
▲ 'ㄷ' 자 모양으로 지은 성산여씨하회택 가운데 있는 큰 마루를 중심으로 한쪽에 7~8칸 되는 방과 부엌, 마루, 사랑방, 광(고방)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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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짓는 전통 방법대로 나무에 홈을 내거나 깎아서 끼워 맞춰 넣은 모양이에요.
▲ 옛집 전통양식 옛집 짓는 전통 방법대로 나무에 홈을 내거나 깎아서 끼워 맞춰 넣은 모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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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방법대로 지은 이집에서 가장 멋스럽게 여겨졌던 거예요.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선이 매우 아름답지요
▲ 누마루 전통 방법대로 지은 이집에서 가장 멋스럽게 여겨졌던 거예요.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선이 매우 아름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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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데군데 못질을 한 흔적도 남아있는데, 아마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 조금씩 손 본 듯했어요.
▲ 누마루 군데군데 못질을 한 흔적도 남아있는데, 아마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 조금씩 손 본 듯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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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농민항쟁(1870년)과 큰 물난리(1936년)를 거치면서 불에 타서 없어지거나 무너져 버리는 바람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남았다고 해요. 더구나 지금 있는 대문채도 벽이 무너져 있어 헛간으로 쓰고 있는 듯 커다란 농기구가 이 안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 성산여씨하회택 대문채 조선 후기에 농민항쟁(1870년)과 큰 물난리(1936년)를 거치면서 불에 타서 없어지거나 무너져 버리는 바람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남았다고 해요. 더구나 지금 있는 대문채도 벽이 무너져 있어 헛간으로 쓰고 있는 듯 커다란 농기구가 이 안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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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에 이바지한 여환옥 선생

본디 이 집은 조선시대 숙종 때, 성산 여씨 12세손인 여명주씨가 세 해에 걸쳐 지은 집이래요. 처음엔 1700평 땅에 지은 60칸이나 되는 큰 집이었는데 조선 후기에 농민항쟁(1870년)과 큰 물난리(1936년)를 거치면서 불에 타서 없어지거나 무너져 버리는 바람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남았다고 해요. 더구나 지금 있는 대문채도 벽이 무너져 있어 헛간으로 쓰고 있는 듯 커다란 농기구가 이 안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집 뒤로 돌아가니, 어이쿠! 조금 앞서 봤던 까만 고양이가 또다시 놀라게 하네요. 아까 도망간 줄 알았더니 이 녀석이 뒤에 숨어서 우리를 내내 지켜보고 있었나 봐요. 이번에는 아예 뒤꼍 대나무 숲으로 쏜살같이 사라져버렸어요.

고양이한테 두 번씩이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돌아보니, 마당 오른쪽으로 따로 흙돌담을 쌓아 둘러놓은 사당이 있어요. 맞배지붕을 한 이 집은 아마 새로 손본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아주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었답니다.

마당 오른쪽으로 따로 흙돌담을 쌓아 둘러놓은 사당이 있어요. 맞배지붕을 한 이집은 아마 새로 손본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아주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었답니다.
▲ 사당 마당 오른쪽으로 따로 흙돌담을 쌓아 둘러놓은 사당이 있어요. 맞배지붕을 한 이집은 아마 새로 손본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아주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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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더욱 남다른 얘기를 알았는데, 그건 바로 지금 이 집 임자인 여만종씨의 할아버지인 '여환옥 선생'(1896∼1963년) 이야기인데요. 일제강점기 때에 김천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이었답니다. 1920년대에 자기 돈을 들여서 '광명학숙'이라는 강습소를 만들어, 이 지역에서 나라 잃은 서러움을 겪던 청소년을 가르치고 일깨웠던 분이었어요. 또 나라를 되찾으려는 뜻을 모아 중앙을 중심으로 일어난 '신간회' 활동을 하기도 했어요.

김천 지역 '신간회' 지회장을 맡으면서 식민지 지배정책에 반대하며 독립운동에 이바지한 매우 뜻 깊고 훌륭한 일을 한 분이었어요. 가까운 곳에 이렇게 훌륭한 분이 살았고, 또 그분이 태어나고 자란 삶터를 우리가 와서 보며 그 땅을 밟고 있다는 게 퍽 자랑스러웠습니다.

문화재를 둘러볼 수 있으리란 생각은 아예 하지 못하고 그저 자전거 타고 맛있는 '지례 흑돼지' 고기 한 번 먹으러 왔다가 뜻밖에 좋은 볼거리와 얘깃거리를 만나 무척 신이 났습니다. 다른 어느 때보다 무더위와 씨름하면서 몸은 많이 지쳤어도 마음만은 퍽 뿌듯하고 즐거웠어요.

천정이나 부엌, 아궁이를 보면서 오래 되고 낡았지만, 무척 정겨웠어요.
맨 아래 사진은 맞배지붕을 이고 있는 사당이에요.
▲ 정겨운 옛집 천정이나 부엌, 아궁이를 보면서 오래 되고 낡았지만, 무척 정겨웠어요. 맨 아래 사진은 맞배지붕을 이고 있는 사당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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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성산여씨하회택, #지례흑돼지, #자전거, #독립운동, #여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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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자전거는 자전車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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