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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지만, 죽음이라는 단어는 늘 안타까움을 안고 오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고인과 안면이 있거나 없거나 죽음이라는 사실 앞에 나 몰라라 하기에는 '죽음'이라는 단어는 피할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한 달 전 저는 귀국을 앞둔 인도네시아 출신 에꼬(Eko Imam)와의 대화 중에 죽음이 가져다주는 충격이 어떠함을 실감했습니다. 에꼬는 7년 전 전남 나주에 있는 한 복층유리공장에서 일을 했었는데, 그는 같이 일하던 동료가 자신의 눈앞에서 사망하는 것을 목격했었습니다.

 

공장 한 쪽에 세워뒀던 대형 유리가 넘어지면서 친구를 덮는 사고가 있었는데, 그 일이 지금까지 또렷하다고 합니다. 당시 에꼬는 사고가 난 후 아무런 말도 못하고 충격에 휩싸여 있었는데, 사고처리를 위해 자신의 회사를 방문했었던 누군가가 자신의 모국어로 자신을 위로해 줬었는데, 그게 저였다고 하더군요.

 

7년만에 만난 에꼬는 저를 기억한다고 했지만, 사실 저는 에꼬의 말을 들으면서도 당시 만났던 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7년 전 사고가 났던 회사와 그 당시 회사 담당자로부터 들었던 몇 가지 이야기만이 드문드문 떠오를 따름이었습니다.

 

"멀리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돈이라도 많이 벌 수 있도록, 여기 나주에서 배 수확 철이라도 되면 일손이 귀한 과수원에 회사가 쉬는 주말에 일하도록 소개도 해 주고 했었는데……. 이런 일이 생겼네요. 같이 일하던 친구들이 서로 사이가 참 좋았는데, 남아 있는 사람들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네요."

 

시골 한적한 곳에 자리 잡아 달리 유흥거리가 없었던 에꼬와 그 친구들은 쉬는 날에도, 기회가 되면 인근 농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있었는데, 사고로 그 중 한 명이 사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일 후에 에꼬는 회사를 나왔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7년 전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게 되고 눈물이 난다는 에꼬는 라마단이 끝나 축제가 시작되는 이둘 피트리(Idul fitri)가 시작되기 전, 추석전후로 월급과 퇴직금을 받으면 돌아갈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출국 전 인사를 미리 나눴던 에꼬로부터 한 달이 지나 다시 온 연락은 듣는 이의 마음을 안쓰럽게 했습니다. 에꼬가 연락을 해 온 곳은 '화성외국인 보호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출입국 단속에 걸려 강제추방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지리도 운이 없다'는 생각이 들며 에꼬에게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저, 퇴직금 받지 못했어요. 사장님께 말씀드렸는데, 외국 사람은 퇴직금 없다고 했어요. 제가 7년 동안 반장도 하고, 회사 일 다 책임졌어요. 퇴직금 받게 도와주세요."

 

목소리에 힘이 없었습니다. 쉼터에 왔을 때 우연히 여권에 적힌 이름과 불리는 이름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뭐라 그랬더니, "고향에선 애기 때 부르던 이름하고 어른 돼서 부르는 이름이 달라요"하며 능청스레 답하던 그의 밝은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뒤늦게 에꼬의 목소리가 힘이 없는 이유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에꼬는 퇴직금을 요구했다가 회사의 신고로 노동부 근로감독관 앞에서 경찰에 체포되어 출입국으로 인계되었던 인도네시아 출신 야햐(Yahya)를 외국인보호소에서 만난 것이었습니다.

 

에꼬는 야햐를 보면서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소식이라도 전하려고 연락을 해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7년이라는 세월도 씻지 못한 죽음에 대한 충격과 강제추방이라는 현실을 마주하며, 에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자신이 7년 동안 일한 회사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귀국한다면 그 원망을 누가 듣게 될까요?

 

바라건대 에꼬가 모든 문제를 잘 해결하고 원망과 시비 없이 대한민국을 떠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태그:#산업재해, #죽음, #강제추방, #퇴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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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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