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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안개가 이렇게 심하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출근하는데 자동차의 속도를 낼 수가 없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운전을 하고 있는데도, 시야를 확보할 수가 없다. 전방 10 m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아무리 안개가 짙게 끼어 있어도 이렇게 안 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마음은 급한데 앞이 보이지 않으니, 달릴 수가 없다.

 

답답하다. 조심조심 달릴 수밖에 없었다. 불안한 마음이 커지기도 하고 앞을 볼 수 없으니, 당혹스럽기도 하였다. 그래도 달리 도리가 없었다. 보이지 않은 앞으로 주시하면서 조심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사람을 얼마나 위축시키고 난감한 것인지를 온 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글짓기가 너무 힘들어요.”

어린이가 쓴 작품에 들어 있는 내용 중의 하나이다. 지도를 위하여 제출한 원고지를 일일이 검토하면서 발견하게 된, 문구가 마음을 꽉 잡는다. 어린이가 얼마나 답답하였으면, 이렇게 표현하였을까를 생각하니, 당혹스럽다.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는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내 지도 방법에 대해서 반성하게 된다.

 

초등학교 2학년에게 논술 공부는 무리다. 그래서 ‘논술부’라고 하지 않고 ‘글짜기’ 지도라 이름을 붙이고 지도하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부터 체계적으로 글짓기 지도를 하게 되면 더욱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판단으로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상상 외로 어려움이 많았다. 어린이들이 어느 정도 이해를 하는지가 관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은 한글을 해득한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 책읽기에 겨우 첫걸음을 뗀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생각은 있다. 그들의 생각을 주제로 묶어서 글짜기를 해본다면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생각의 폭을 넓히는데, 강조점을 두고 지도하고 있다.

 

관찰의 중요성을 실천하며 책 읽기를 지도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오관을 통해서 감지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재해석하여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그 재료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래서 우선 보기를 강조하여 지도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신바람을 내면서 잘 따르고 있어서 효과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

 

 

아이의 작품에서 어렵다는 마음을 알게 되니, 지도 방법을 바꿔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열심히 지도한다고 하여도 정작 아이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려워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가르침이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생각을 정확하게 인지해야 지도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렵다고 표현한 아이 뿐만 아니라 모든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도록 하였다.  다른 아이들의 생각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원고지 사용법에 맞춰서 쓰기가 어렵다는 등, 문단을 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아이들의 생각을 하나도 빼지 않고 그대로 칠판에 적었다.

 

나열한 생각들을 한가지로 중심으로 묶도록 하였다. 그 기준은 바로 ‘글을 쉽게 쓰려면’이었다. 잘 쓰려는 욕심을 비우게 하였다. 그리고 생각들을 연결시키도록 한 것이다. 아이들의 능력은 대단하였다. 나열한 생각들을 어렵지 않게 술술 풀어 써 나가는 것이다. 원고지 다섯 장을 다 쓰는 것이었다.

 

“야 ! 다 썼다.”

환호성을 올리는 우민이의 얼굴에 함박웃음 꽃이 피어났다. 주변이 다 훤하다. 활짝 피어난 국화꽃처럼 빛나고 있었다. 위봉사에 들렀더니, 국화가 벌써 만개해 있었다. 화분에 심어진 꽃이었지만 그렇게 탐스러울 수가 없었다. 글짜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아이들의 얼굴처럼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이의 생각을 점검하고 확인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선생님이 아무리 열정을 가지고 지도를 하여도,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일이다. 가르치는 선생님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배우고 있는 아이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다. 어려움이 해소되니, 안개에서 벗어나 앞을 볼 수 있는 것처럼 환하다. 당연 신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모습이 국화꽃처럼 우뚝하였다.<春成>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완주 위봉사에서 촬영


태그:#아이, #생각, #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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