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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신정아의 벗은 사진까지 일간지에 실렸다. 갈 데까지 간 집단관음증이다. 우리 사회에 켜켜이 쌓인 병리적 현상이 한 겹 한 겹 벗겨지는 순간이다.
 

문제의 핵심은 '권력형 비리'임에도 세간의 눈길은 사생활에 쏠린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른 데에는 검찰의 신중하지 못한 발표도 한 몫 했다.
 

물론, 청와대 정책실장이 부당하게 행사한 압력은 낱낱이 밝혀야 옳다. 하지만 권력형 비리의 진실과 사생활은 별개의 문제다. 신정아라는 한 여성의 벗은 몸을 공개할 자유는 누구도 없다. 하물며 신문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것은 언론의 자유와 전혀 무관한 황색 저널리즘을 고백하는 추태에 지나지 않는다.
 

신정아 파문이 몰고 온 선정적 보도는 집단관음증에 그치지 않는다. 집단매도의 징후마저 퍼져가고 있다. 학력 위조를 둘러싼 파문이 금도를 넘어선 게 그것이다. 대표적 보기가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학력 의혹' 보도다.


오해 없기 바란다. 학력 위조는 그 누구라도 성역 없이 바로잡아야 옳다. 신정아의 가짜 학위 문제는 그의 벗은 몸과 달리 밝혀야 마땅하다. 하지만 아니다. <문화방송> 저녁 뉴스를 비롯해 거의 모든 신문과 인터넷신문에 보도된 지관 총무원장의 학력 의혹 보도는 한국 저널리즘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관 총무원장이 13일 기자간담회에서 밝히기 전에, 이미 12일에 낸 총무원의 해명에서도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지관 총무원장은 46년 전에 편입학한 대학을 졸업한 뒤 정상적으로 석사와 박사를 거쳐 대학총장을 지낸 스님이다. 새삼 대학 편입학 전의 학력이 대대적으로 보도될 아무런 이유가 없다. 편입학 시점이 46년 전인 1961년임을 감안하면, 게다가 그가 14살의 나이로 출가한 상황을 감안하면, 참으로 생뚱맞은 의혹 보도다.


문제는 이미 지관 스님이 언론의 신중하지 못한 보도로 큰 상처를 입은 데 있다. 적잖은 사람의 머리에 지관 스님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질지는 새삼 말할 나위가 없다. 더구나 불교에 대한, 조계종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 커질 수 있다.

   

바로 그 점에서 <문화방송> 보도는 <문화일보>의 알몸사진 게재와 더불어 문화와 거리가 먼 선정주의의 대표적 보기다.
 

그래서다. 곰비임비 불거지는 학력 마녀사냥을 이제 경계할 때다. 한국 사회의 오랜 병리인 학력 중심이나 학벌 중심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보도다.
 

솔직히 말하자. 장미희가 연기를 가르치는 데 학력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바둑 천재' 이창호에게 학력을 따지는 황당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공인이 학력을 속인 것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이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을 모두 매도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한 유명한 연극배우가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의 학력을 바로잡는 모습에서 참담함을 느낀 것은 과연 나만 일까. 그럼에도 학력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세태 때문에 침묵했다. 하지만 보라.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에까지 선정적 잣대를 마구 들이댄다. 


명토박아 둔다. 학력을 위조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줄기차게 부와 권세를 누려온 것은 엄벌할 일이다. 하지만 젊은 날의 어느 한 순간에 일어난 실수이거나, 그 자신도 모르게 기록된 일 때문에, 평생에 걸쳐 쌓아온 한 사람의 생애를 모두 의심하는 일은 '마녀 사냥'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평생 시들방귀로 여기는 일상적인 '학벌 사냥'과 같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우리가 실로 충격 받아야할 사실은 한 온라인 취업사이트 조사에서 나타났듯이 20~30대 성인 남녀의 20% 가량이 취업이나 성공을 위해 학력 위조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대답한 데 있다. 바로 그것이 신정아의 벗은 몸보다 더 논의할 사안이다. 
 

그렇다. 드러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진정 들여다 보아야 할 것은, 신정아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의 추한 알몸이다. 썩어 문드러진 '학벌 공화국'이다. 대학까지 물든 부패한 권력형 비리다. 눈길을 돌릴 때다.


태그:#학벌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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