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수강 신청을 잘못하는 황당 사건(?) 때문에 나는 3학년 2학기를 자취생활로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엄마, 아빠. 나 자취할게요. 공부하려고요."

이 말 한마디에 부모님은 흔쾌히 알았다고 하신다. 반대하실 줄 알았는데 웬걸? 오히려 아들이 마음먹고 공부한다니 좋아하는 눈치다.

지금 생각해보니 부모님의 흔쾌한 승낙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충남 연기군 조치원(홍익대 조치원 캠퍼스)에 해 있다. 그래서 아들이 자취하게 되면 놀지 않고 공부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 아닐까?

뭐, 덕분에 가장 어려울 거라 믿었던 부모님 설득은 간단히 해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내가 지금까지 자취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군대도 다녀오고 하숙과 기숙사 생활은 몇 번 해봤지만 밥부터 시작해서 빨래까지 일일이 도맡아야 하는 자취생활은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그래서 솔직히 겁이 덜컥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은근 기대된다. 대학생활의 꽃이라 불리는 '자취'를 드디어 3학년 2학기가 되어서 한다니 말이다. 학교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새로운 친구들도 만들고, 또 온갖 파란만장한 일들을 만들어 다닐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들뜬다.

'자자, 시간이 없다. 어서 빨리 방 구해야지!'라고 마음먹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규라는 아이인데 자취생활만 2년째 하고 있기 때문에 자취에 대해서는 도가 튼 친구다. 그런 친구를 둔 것을 감사하며 얼른 전화를 걸었다.

"성규야~ 나 방 구하려고 하는데 같이 돌아다니자!"
"응! 좋아!"


친구의 흔쾌한 승낙에 룰루랄라 기분 좋게 자취방을 찾으러 출발했다.

자취방 협상! 그냥 한 학기 100만원에 오케이!

자취방을 찾으러 함께 돌아다니는 성규가 내게 좋은 자취방 찾기 노하우를 말해준다.

1. 무조건 학교 전공과목 강의실에서 가까운 곳으로 자취방을 정한다.
2. 자취방 구석구석 꼼꼼히 체크. 침대, 장롱, 책상. 냉장고 상태는 물론 물이 제대로 나오는지도 꼭 확인해야 한다.
3. 주변지역에 음식점, PC방, 슈퍼마켓 등 부대시설이 가까이 있는지도 확인.
4. 방 계약을 할 때는 최대한 가격을 낮춘다(2학기는 버티면 버틸수록 가격이 떨어진다).


그런데 자취방 찾기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학교 주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데 위 조건에 충족하는 자취방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개강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의 좋은 자취방들은 이미 다 나가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남은 자취방들은 120만원찌라 방부터 140만원 방까지 비싼 방 몇 군데뿐이 없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그 중에서 내 마음에 쏙 드는 방은 없었다. 한 시간째 이곳저곳 헤맸지만 맘에 드는 방은 없었고, 결국 친구와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실망스럽게 말했다.

"아, 너무 늦게 자취방 찾은 건가 봐. 망했어. 망했어!"

그런데 갑자기 무엇인가 떠오르는 듯, 친구가 밝게 말한다.

"아! 맞다! 내가 사는 자취방 아래층에 방 하나 비었는데 주인 아주머니한테 물어보면 되겠다!"

내가 한학기동안 살게될 있을만한 것은 다 있다.
▲ 내가 살게될 자취방 내가 한학기동안 살게될 있을만한 것은 다 있다.
ⓒ 곽진성

관련사진보기

와, 친구의 말에 갑자기 마음에 다시금 희망의 빛이 밀려 들어왔다. 드디어! 드디어! 방을 구하는구나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서 나는 얼른 친구를 따라 주인 아주머니가 있는 곳으로 갔다. 친구는 자신만 믿어보라고 한다. 그리고는 아주머니에게 연락을 했다.

친구네 자취방 근처에 도착하자 미리 소식을 들은 주인 아주머니가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성규 왔네? 친구 데리고 왔구나…. 방 구경해봐."
"네. 아주머니, 그런데 방 가격이 얼마 정도예요?"
"120만원 정도."
"에이. 아주머니 그런 게 어딨어요. 싸게 해주세요. 100만원 정도로. 2학기잖아요."
"아…. 그건…,"
"그렇게 해주세요. 아주머니! 아셨죠?"


친구의 능수능란에 화법에 아주머니가 속수무책이다. 덕분에 120만원짜리 방을 100만원에 얻게 된 것이다. 2학기라고는 하지만 그 정도면 분명 자취방을 엄청 싸게 얻은 것이다. 나는 속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는 한발 더 나간다.

"아주머니, 근데 100만원 너무 비싸요. 95만원 정도…로…."
"안돼. 그건 절대."
"아주머니…. 제발,"
"안 되는데…."
"저도 쓰고, 친구도 아래층 쓰자나요."
"아…."


가만히 대화를 지켜보던 난 왠지 아주머니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친구의 말을 끊었다.

"아주머니, 됐어요. 그냥 100만원에 할게요. 다음 주에 계약할게요. 그때 뵈요."

학교가려면 이 기나긴 계단을 넘어가야 해서 조금 걱정이 되지만 그것만 빼놓고는 학교와 자취방은 아주 가깝다
▲ 학교가는길 학교가려면 이 기나긴 계단을 넘어가야 해서 조금 걱정이 되지만 그것만 빼놓고는 학교와 자취방은 아주 가깝다
ⓒ 곽진성

관련사진보기

나의 제안에 시무룩했다가 얼굴이 활짝 펴지시는 주인 아주머니, 친구가 내 옆구리를 꾹 지르고 귓속말로 말한다.

"왜 그래, 너 더 깎을 수 있었는데…?"

나는 웃으며 말했다.

"됐어, 이 정도면 만족해."

그 말에 친구도 말없이 웃고 만다.

"하여튼 오늘 자취방 찾아서 다행이다. 앞으로 더 자주 보겠네. 우리 같은 빌라에서 자취도 하게 되고,"

자취방을 찾느라 길었던 하루가 끝이 났다. 이제 드디어 학교는 개강이다. 본격적인 대학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대학교 개강과 함께 내 마음은 설레고 있다. 과연 어떤 생활이 기다릴까? 어떤 교수님들이 어떤 특별한 강의로 날 설레게 할까? 그리고 또 어떤 인연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글 | 정열은 냇물의 흐름과 같다. 얕으면 소리를 내고 깊으면 소리가 없다.
곽진성 기자의 미니홈피 http://cyworld.nate.com/UsiaNO1



태그:#대학생활, #자취방, #대학친구, #주인 아주머니, #2학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잊지말아요. 내일은 어제보다 나을 거라는 믿음. 그래서 저널리스트는 오늘과 함께 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