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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로(言路)의 균형발전은 정녕 기대조차 어려운 것인가?’‘누가 미디어 시장을 침해하고 위협하는가?’

 

무거운 화두다. 자본권력의 미디어 시장 점유율이 방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로의 서울 1극 체제가 극심한 상황이다. 논의 자체가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화답이 있다면 언론은 분명 희망이 있다는 계산과도 같다.

 

지방대 교수 2명이 이에 대한 화답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것도 전국에서 인구대비 가장 많은 지역 일간지가 난립한 곳에서 해법을 제시했다. 이목을 쏠리게 할만도 하다.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전북민언련)이 지난 3일부터 개최한 '언론학교'에선 시민과 학생, 언론계 및 학계 전문가들이 모여 열띤 토론이 펼쳐지고 있다.

 

올해로 14번째 행사인 '참언론 실천의 한마당' 행사인 '언론학교'는 10월 1일까지 매주 월, 수, 금요일마다 전주우체국 3층 대강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모두 10개의 주제로 교수와 중견 언론인들이 강사를 맡아 강의와 토론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지역언론, 희망은 있다'란 주제로 3일 첫 강의가 시작됐다.

 

강준만 교수, '게으른 습성', '안전제일주의' 혹평 

 

강 교수는 "대선 후보자들이 지역을 잇달아 방문하고 있지만 지역 언론사들은 지역 아젠다보다 서울 아젠다에 함몰돼 있다"며 지역언론계의 '안전제일주의'를 비판했다. 특히 "지역신문들은 비용이 싸게 들어가는 맛에 갈등을 빚는 양쪽의 이야기만 전달하는 데에 급급할 뿐, 독자적인 심층 취재로 양쪽의 주장을 평가하려는 자세는 보이지 않는다"며 '게으른 습성'을 혹평했다. 지역 언론의 '주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봐야 그걸 누가 알아주겠느냐고 성급하게 굴면 안 된다"며 "뻔하게 굴었던 과거의 비용을 치르고 이제는 정말 소통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혁, 그것도 사즉생의 각오가 깃든 개혁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방민들의 의식구조도 바뀌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는 "지방의 삶을 제대로 다뤄달라고 요구하지 못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라고 물은 뒤 "지방 사람들이 체념의 지혜를 발휘하는 것도 정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즉 "지금과 같이 서울 중심적 소통구조는 지방을 넘어 국가적 재앙"이라고 말하는 그는 "귀향의 행렬이 이어지는 설과 추석 때뿐만 아니라 1년 365일 내내 서울이 아닌 전국을 생각할 수 있게끔 소통구조부터 개혁하려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부연 설명했다.

 

무엇보다 지방이 개입해 '여의도 방송'을 명실상부한 '전국방송'으로 변화시켜야 하며, 서울 지방지들이 전국을 장악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그는 두 가지 이론(법칙)을 예로 들었다.

 

그는 "한국형 롱테일 법칙을 고민하자"고 제안했다. 지방이 중앙의 꼬리, 그것마저도 파편화된 꼬리가 되어버린 우리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중앙이 독식하고 있는 리스트에 각 분야에 걸쳐 지방의 이름을 올리고, 또한 지방 자신의 리스트를 만들고 그걸 키워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방은 지금 스스로 파편화된 꼬리가 되기 위해 안달하고 있고, 그걸 지역발전 전략이라고 부르고 있다"며 현실을 개탄했다. 두 번째 그가 강조한 이론은 '역 나노의 법칙'이다.

 

"패배주의 벗어나야 희망 싹튼다"

 

같은 구조로 이뤄진 물질이라도 구성입자의 크기가 나노 사이즈로 작아지면 반응의 속도가 빨라지고 간섭도 줄어들기 때문에 새로운 물질과 장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나노의 법칙'을 역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커지면 성격이 달라진다'는 '역 나노의 법칙'을 믿고 실천해 보자"고 강 교수는 제안했다.

 

"누군가가 무슨 새로운 시도할 경우 그것이 왜 안 되는 것인지를 설명하는 데엔 모두 다 천재들이라는 사실에 놀랐다"는 그는 "놀라울 정도로 날카롭고 깊이가 있는 그런 사람들이 조금씩만 도와주면 되는데 왜 안 되는 쪽으로만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그가 학생들과 창간한 인터넷 신문 <선샤인>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과 지역언론을 외면한 채 돌을 던지고 침을 뱉기에 바쁜 비정상적인 행태를 이렇듯 빗대어 표현했다.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법칙을 싹 틔울 때 비로소 지역 언론에도 희망이 보인다"는 그의 논리에는 한이 서려 있는 듯했다. 

 

"지역언론을 살리는 게 정말 안 될까?, 불가능할까?, 정치경제적 구조의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그 한계의 몫에도 미치질 못하고 있잖은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단합해 덩치를 키워 나간다면 지역언론 시장과 수용자의 성격이라는 것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강 교수는 이날 끝없이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서 문제의식의 공유와 단합을 강조했다.

 

이틀 후인 5일에는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미디어 산업과 권력'이란 큰 주제를 들고 나섰지만 그도 역시 극도로 피로감에 사로 잡혀 있는 지역 미디어의 문제점과 대안에 주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승수 교수, "언론-정치-자본권력 일체화"

 

김 교수는 두 번째 강의에서 언론권력과 정치권력, 자본권력의 관계를 '일체화'라는 말로 설명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대 신문재벌이 누리는 신문권력은 자금, 인력과 인맥, 정보 등에서 다른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며 "배후에는 재벌, 광고주, 부동산자본, 미국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보통제 기능을 크게 국가권력과 삼성과 같은 대기업권력, 국제권력, 스타권력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방송법, 통신자유법을 수시로 고쳐 공공성과 공익규제를 허약하게 만든 국가의 미디어 정책과 신자유주의 정책 등이 정보통제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대통령 홍보실-문화부-국정홍보처-방송위원회-한국방송광고공사 등은 미디어 시장을 통제하는 규제 기구들이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한국정보자본주의와 미디어산업이 안고 있는 모순의 핵 가운데 하나는 통제 불능 상태의 삼성권력을 들 수 있다"며 "방대한 인맥과 자본을 갖고 있어 삼성공화국을 넘어 삼성제국으로 불려질 정도가 된 삼성그룹은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대한민국의 건강한 발전과 민주주의에 결정적인 해를 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매년 막대한 광고비를 지출하여 미디어산업의 흐름을 통제하는 삼성권력은 국가권력을 넘어서는 힘을 가졌지만 누구도 감시와 견제가 어려운 공룡이 됐다"고 우려했다. 이밖에 김 교수는 "국제권력의 핵심인 미국은 경제력, 군사력, 정치력, 정보력, 문화력을 바탕으로 한국을 통제한다"며 "한미자유무역협정 등으로 인해 미디어시장은 더욱 미국에 개방되어 자주성이 흔들릴 정도"라고 표현했다.

 

"심각한 광고 불평등 '게임 끝'인가?"

 

스타시스템 역시 우려할 수준이라는 것. 김 교수는 "스타시스템이야말로 대중미디어시장의 재원을 고갈시키며 수용자에게 과다한 소비주의나 상업주의 이념을 강제하기 때문에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계급"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김 교수가 가장 우려한 분야는 역시 지역 미디어 시장이었다. 그는 "지역 미디어산업이 위기지만, 정부나 국회, 전문가나 업계 누구 하나 동정이나 눈길조차 보내지 않는다"며 "이 문제가 나오면 이들은 경쟁력이 없다거나 비리의 온상이라고 하면서 지역 미디어의 존재 의의를 깎아 내린다"고 비난했다.

 

김 교수는 "지역이 튼튼해야 나라도 튼튼해진다"며 "그렇지만 지금은 서울도 부실하고 지역은 더 부실한 형편"이라고 잘라 말했다. 미디어 산업의 서울집중 때문이라는 것이다. 앞서 강 교수처럼 김 교수도 언로와 미디어산업의 서울 집중은 정보, 문화의 방향을 서울에 한정시킬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서울 식민지는 도시와 시골을 불평등하게 만들고 지역 미디어 시장을 폐허로 내몰고 있다는 주장이다. "어떤 것을 셈할 때 어떤 한쪽이 독주를 하면 시합이 끝나기도 전에 '게임 끝'이라고 말한다. 서울과 지역의 심각한 광고 시장의 불평등성도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역의 미디어시장이 처참한 지경에 이르고 있음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태그:#강준만교수, #김승수교수, # 지역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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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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