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천태산의 멋진 바위능선과 골짜기 풍경
▲ , 천태산의 멋진 바위능선과 골짜기 풍경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그것 참! 왜 우리들이 산에만 가려고 하면 꼭 비가 내린다고 하지?"

올 여름을 지나는 동안 등산하는 날,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이날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등산날짜를 잡아놓고 3일 전 일기예보부터 또 비가 내린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는 일은 없었다. 아니 전국이 아니라 어느 한 지역도 계속 비가 내리는 일은 없었다. 요즘 내리는 비는 일부 지역에만 그것도 잠깐씩 퍼붓는 식이었다.

지난 8월28일 충북 영동에 있는 천태산을 오르기로 한 날도 일기예보엔 그 지역에 비가 내린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들이 등산하는 천태산은 같은 시간에 비가 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울을 출발했다. 우리들이 산행하는 몇 시간 동안 비가 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일종의 요행심리라고나 할까.

그러나 서울에서 대전을 거쳐 옥천까지 가는 동안 잠깐씩 이슬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곳은 없었다. 경부고속도로 옥천나들목을 빠져나간 우리들은 4번 국도를 달리다가 501번 지방도로로 바꿔 달렸다.

"충청도 땅도 온통 산골이로구먼."
차창 밖으로 바라보이는 풍경은 정말 온통 산과 골짜기뿐이었다.
"우리나라는 정말 금수강산이야.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짙푸른 녹음이 우거진 산과 골짜기는 정말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한참을 달려도 천태산이나 영국사를 알리는 이정표는 나타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길가의 농가 옆에 차를 세우고 마당에 있는 노인에게 묻자 곧장 가면 나온다고 한다. 잠깐 더 달리자 정말 천태산 안내 표지판이 나타났다. 천태산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커다란 개심저수지를 안고 달리다가 영국사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등산길에서 만난 철도침목을 잘라서 만든 특이한 모양의 계단
▲ , 등산길에서 만난 철도침목을 잘라서 만든 특이한 모양의 계단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불에 탄 나무사이로 바라보이는 천태산 정상
▲ . 불에 탄 나무사이로 바라보이는 천태산 정상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영국사 입구에 당도하니 지금껏 괜찮던 하늘에서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닌가. 비를 맞으며 걸어야 하는 주차장에서 영국사까지의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주차장 관리 직원에게 물어보니 영국사까지 올라가는 우회도로가 있다고 한다.

다시 차를 돌려 영국사를 찾아갔다. 구불구불 돌고 돌아가는 길은 골짜기 하천을 옆으로 끼고 달리는 길이었다. 전날부터 비가 많이 내렸는지 개울을 흐르는 물의 양이 제법 넉넉했다. 그렇게 잠깐 올라가자 영국사가 보이는 지점 오른편에 '천태산 등산로 C코스 입구'라는 안내 팻말이 보인다.

마침 간이화장실이 세워져 있는 옆에는 제법 넓은 공터가 있어서 주차하기도 좋았다. 차를 세우고 바라보니 영국사로 건너가는 작은 골짜기 안쪽에는 몇 채의 가옥들도 보인다. 그곳에 차를 세우고 C코스로 오르기로 했다.

여전히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더구나 산꼭대기 쪽에는 검은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서 한 바탕 장대비라도 퍼부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우리들이 막 산에 오르려고 할 때 주차장 쪽에서 올라온 6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노인들 다섯 명이 우리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들도 역시 우리들이 오르려고 하는 C코스로 오르려는 모양이었다. 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으며 등산을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올라온 사람들과 어울려 앞서기니 뒤서거니 산을 올랐다. 처음 산길은 대체로 평탄한 편이었다. 그런데 한 10분쯤 오르자 산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경사가 급하지는 않았지만 바윗길로 바뀐 것이다. 다행이 바윗길마다 밧줄이 설치되어 있어서 위험하거나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바윗길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었다.

멀리 바라보이는 백두대간
▲ . 멀리 바라보이는 백두대간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저쪽 어디쯤이 대둔산
▲ , 저쪽 어디쯤이 대둔산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어, 이거 산길이 장난이 아니네, 계속 바위를 타고 오르는 길이잖아."

일행 한 명이 조금 힘이 드는지 투정을 한다. 그 사이 조금씩 내리던 비는 그쳐 있었다. 간간이 햇빛도 나고 바람도 불어서 등산하기는 아주 좋은 날씨였지만 그때까지도 정상 부근의 검은 구름은 봉우리를 뒤덮고 있어서 앞길을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잠시 더 올라가자 같이 오르던 안성에서 왔다던 60대 중반의 등산객들 5명이 발길을 돌린다. 기왕 내친김에 정상까지 올라가자고 했지만 바위산이어서 올라가지 않겠다고 한다. 그곳까지 올라오면서 상당한 위험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들이 내려가는 것을 전송해주고 우리들끼리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윗길은 점점 더 험해진다. 한 곳은 까마득하게 올려다 보이는 거의 직각의 바위가 100여m는 될 것처럼 높아 보인다.

"어, 이거 큰일 났네. 여길 어떻게 오르지."

앞장섰던 일행은 덜컥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옆으로 돌아 올라가는 또 다른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도 아주 쉬운 길은 아니었다. 경사가 조금 완만하고 짧았을 뿐 물기가 있는 바위는 미끄러웠고 어떤 곳은 밟고 올라가는 곳으로 졸졸 물까지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천태산이야. 설악산이야? 정말 멋진 산이구먼."

어렵게 올라선 능선에서 일행 한 명이 흐르는 땀을 씻어 내린다.

"힘들긴 했지만 정말 충북의 설악이란 말이 실감나는군, 이 산 자체도 그렇고, 저 바라보이는 전망도 일품이잖아?"

정말 그랬다 충북의 설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 자체의 풍치도 좋았지만 조망도 정말 좋았다.

그런 바윗길은 거의 정상 가까이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특별히 위험한 곳이 없다는 게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정상은 해발 714.7m. 그리 높은 산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상에 올라서자 사방이 툭 트여 있어서 시원한 전망이 눈이 시릴 지경이다.

천태산 정상표지석
▲ , 천태산 정상표지석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정상에 설치되어 있는 방명록함
▲ , 정상에 설치되어 있는 방명록함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동쪽 편으로는 황악산(1111m)과 민주지산(1242m), 그리고 덕유산(1614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아스라하다. 남쪽으로 30km 가량 떨어진 덕유산(1614m)도 보인다. 또 서쪽으로는 대둔산도 어렴풋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이 올라올 때 이 봉우리를 뒤덮고 있었던 시커먼 먹구름이 어디로 가버렸네."
"정말 그러네. 상당히 걱정스러웠는데. 우리들을 위하여 슬쩍 자리를 피해준 것 같은데. 저길 좀 봐? 그 구름덩어리가 저쪽으로 옮겨갔잖아."

그럴 듯한 말이었다. 정말 걱정스럽던 그 비구름이 멀찌감치 물러나 다른 산봉우리에 감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이! 근데 이게 뭐야? 산꼭대기에 방명록을 비치해 놓았네."

일행 한 명이 방명록에 이름을 썼다. 그런데 나도 기록을 하려고 하니 조금 전까지 내린 비에 흠뻑 젖어 있어서 글씨를 쓰기가 쉽지 않았다. 정상 옆의 나무그늘에 앉아 간단한 간식을 나누고 하산 길로 나섰다.

"또 쓰레기 주우려고?"

다른 일행이 묻는다. 의례적인 질문이다. 일어서면서 일행 한 사람이 예의 비닐봉지와 집게를 찾아 손에 들었다. 정상에서부터 내려가는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기 위해서다. 전에는 손으로 주웠었는데 언제부턴가 작은 집게를 준비했다.

비닐봉투와 집게는 이제 그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등산장비 목록이 되었다. 등산할 때마다 그에게는 또 하나의 일이 생긴 것이다. 꽤 귀찮고 힘든 일이었지만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그만의 행복과 보람을 쌓는 일일 것이다.

내려가는 길은 D코스로 잡았다. 산을 내려가 영국사에 들렀다가 우리들이 차를 세워놓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올라올 때와 달리 내려가는 코스는 바위급경사도 별로 없었고 한결 쉬운 길이었다.

영국사 대웅전
▲ . 영국사 대웅전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보물533호 삼층석탑
▲ . 보물533호 삼층석탑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능선을 타고 잠깐 내려가자 B코스는 등산로를 폐쇄했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곳을 지나서 조금 더 내려가자 낙타등처럼 생긴 멋진 바위능선이 나타난다, 바위능선도 멋있지만 그 바위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계곡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이 멋진 산에 산불이 났었던 모양이네?"

그러고 보니 영국사 쪽 산자락의 거의 대부분이 불에 탄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능선길에도 여기저기 불에 타죽은 소나무의 처참한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전망바위에서 잠간 쉬었다가 바로 영국사를 향하여 급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산 아래쪽은 산불의 상처가 더욱 크고 깊었다. 충북의 설악이라는 천태산은 몇 년 전에 발생한 산불로 극심한 상처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사에 도착할 때쯤에는 하늘에 햇볕이 쨍하다. 출발할 때 걱정했었던 비는 우리일행들의 등산을 위하여 참아주고 비껴주었을 뿐만 아니라 돌아오는 발걸음을 한결 상쾌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천년고찰 영국사는 깊은 정적에 싸여 있었다. 절이 저만큼 다가오자 재빨리 앞서간 일행 한 사람이 대웅전 법당에 엎드리는 모습만 눈 안에 가득하다. 대웅전 앞에 있는 보물 533호인 3층 석탑도 고즈넉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대웅전 앞마당에는 3층 석탑과 함께 보리수와 단풍나무, 그리고 감나무가 한 그루씩 사이좋게 서 있는 모습도 정답다.

이 영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의 본사인 속리산법주사의 말사다. 창건연대는 신라 제30대 문무왕8년으로 원각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후 제32대 효소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피난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려 제23대 고종 때 감역 안종필이 왕명으로 탑과 부도, 그리고 금당을 중창하고 절 이름을 국청사(國淸寺)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영국사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은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에 홍건적이 개성까지 침입하여 왕과 신하들이 이곳까지 몽진(蒙塵)하여 국가안녕을 비는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마침내 왕의 근위병들이 홍건적을 무찌르고 개경을 수복하게 되자 공민왕이 크게 기뻐하며 부처에게 감사하고 떠나면서 절 이름을 영국사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다른 설화에는 조선 태조 때 세사국사가 산 이름을 지륵이라 하고, 절 이름을 영국사라 부르기 시작했다고도 전한다.

수령 1300년의 은행나무
▲ , 수령 1300년의 은행나무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우리들이 절을 둘러보고 절 아래 1300년이나 되었다는 엄청나게 큰 은행나무를 살펴보고 있을 때 참배를 마친 다른 일행이 헐레벌떡 뛰어 내려온다. 이 은행나무는 높이가 31m, 둘레가 11m나 되는 거수로 고려 말 몽고의 침입 때는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천연기념물 제223호로 지정된 나무였다.

"불공 많이 드렸어? 뭘 빌었나?"

짓궂은 다른 일행이 넌지시 묻는다.

"오늘 등산 안전하고 즐겁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지. 왜 다음엔 같이 하고 싶어서 허허허."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든 등산을 마치고 나면 몸과 마음이 항상 거뜬하고 즐거워진다. 그래서 주고받는 실없는 농담도 서로를 즐겁게 하는 것이다. 점심 겸 저녁은 지나오는 옥천 읍내에서 올갱이 해장국에 맥주와 소주를 곁들여 일행 모두를 더욱 행복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천태산, #영국사, #방명록, #산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