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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간에서 피랍된 봉사단원들. 한국정부와 탈레반은 29일 피살된 고 심성민, 배형규씨를 제외한 전원을 석방키로 합의했다.
ⓒ 자료사진

한국정부와 탈레반이 드디어 한국 인질 석방에 합의했다. 8월 29일 전 세계 언론은 머릿기사 중 하나로 이 소식을 전했다.

한국정부와 탈레반이 이룬 합의는 한 국가의 정부와 국제사회로부터 '테러집단'으로 낙인찍힌 집단 사이의 대규모 인질 석방을 위한 협상이라는 점에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이로써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고 논란도 많았던 인질 사태는 이미 일부 인질의 석방과 함께 상황 종료로 향하고 있다.

이번 협상과 관련해 국내적으로는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의 관례를 깨고 테러집단과 직접협상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테러리즘에 대한 정의와 테러집단의 규정이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일관성 있게 이뤄지는지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테러리즘은 대체 뭘까? 백개가 넘는 답

아쉽게도 '테러리즘'에 대한 정확한 사전적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연구자들마다 또는 정의하는 사전마다 조금씩 다른 해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리태니커 사전은 "테러리즘은 일반적으로 폭력의 이용이나 폭력적 위협을 통해 공포를 조장하고 이를 통해 희생자는 물론 일반 대중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테러리즘의 목적은 직접적인 무력 사용이 승리를 보장할 수 없을 때 폭력의 조직적 이용을 통해 공포를 조장하고 군사적 승리가 아닌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유엔은 "테러리즘은 두려움을 조장하는 반복적 폭력행위로 개인·단체·국가에 의해 행해진다, 무작위로 선택된 일반인이나 상징적 인물들을 희생자로 삼아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며 "테러리스트들은 위협과 폭력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고 관심을 끌어낸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외에도 백 개가 넘는 정의가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합의된 정의는 '테러리즘이 목표로 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공포의 조장이고 이를 위한 도구로 다수의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다'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이러한 테러리즘을 최악의 비인도적인 범죄로 규정하고 테러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으며 테러 행위를 하는 개인이나 집단과는 절대 타협이나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무언의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정권 잡은 '테러집단' 하마스와 IRA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비인도적 범죄를 저지르는 테러 행위는 그 어느 것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합의된 정의가 없다는 것에 함정이 있다. 현실 국제정치에서는 누가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테러행위와 테러집단을 규정하느냐에 따라 한 집단이 단순한 무장세력이 되기도 하고 테러집단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동일한 무장세력이 내부 지지자들에게는 '자유를 위한 투사'가 되고 다른 편에게는 '테러리스트'가 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가장 첨예한 예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세력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해 극렬한 무장투쟁을 선택한 하마스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했다. 하마스는 2006년 초 팔레스타인 자치구 선거에서 승리해 정당하게 정부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집권한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고 다른 서방국가들까지 설득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모든 원조를 중단했다. 결국 올 6월 압력에 못 이겨 하마스 총리가 물러나고 새로운 총리체제가 들어서자 미국과 서방세계가 원조를 재개했다.

▲ 지난해 선거에서 이스라엘 정부는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들의 투표권과 관련, 무장단체 하마스의 선거유세를 불허한다는 조건으로 투표참여를 허용했다. 거리에 붙은 하마스 출마자 포스터가 떼어져있다.
ⓒ 이강근
그러나 비슷한 형태의 무장세력이고 테러리즘의 정의에 부합되는 범죄를 저질러도 외부의 정치적 목적이나 이익이 개입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테러집단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아일랜드 공화군(IRA)의 경우 공포를 조장하고 무고한 민간인을 살해하는 각종 범죄를 저질렀지만 이들은 정치세력의 하나로 아일랜드 평화회담에 항상 당사자로 참여했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전의 경우에도 각종 무장세력이 테러 행위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을 테러집단으로 규정해 내전종식을 위한 평화회담에서 제외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전 당사자들인 이들의 참여가 없이는 내전 종식과 진정한 평화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어떻게 '테러 집단'이 됐나

하마스의 예처럼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테러분자라는 낙인을 받게 되면 그 집단의 정치적 목적이나 요구는 어떤 근본적인 이유에서 출발했던 간에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미국은 9·11 테러 후 급진 이슬람 세력이었던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테러리즘의 정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미국은 탈레반이 알 카에다를 적극 지원했다는 주장 하에 억압정권이지만 명백히 한 국가를 통치하고 있던 탈레반을 9·11 테러를 저지른 알 카에다와 동급 취급했다.

미국은 자신들의 말에 따르는 새 아프간 정부를 세웠고 하루 아침에 무장 집단이 된 탈레반을 테러집단으로 규정했다. 이를 통해 미국은 탈레반의 합법적 존재를 부인하고 탈레반 세력에 대한 무력 진압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 탈레반은 납치나 자살폭탄공격 등 테러행위에 부합하는 무장투쟁을 벌이지도 않았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탈레반 정권의 몰락 후 아프가니스탄은 내전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미국과 연합군의 지원을 받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무력 대결은 별 승산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작년부터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탈레반은 이제 아프가니스탄의 한 정치세력으로 복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침공과 탈레반 정권 몰락한지 6년이 다 돼가지만 아프가니스탄 상황이 좋아지지 않자 미국과 아프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다.

이러한 불만이 탈레반 세력에 대한 새로운 지지로 옮아갈 여지는 충분하다. 그럴 경우 미국과 연합군의 지원을 받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세력 사이의 첨예한 무장 대결도 지형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물론 탈레반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납치나 자살폭탄 공격 같은 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든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장기적 안목에서 아프간 평화를 생각한다면 탈레반 세력의 확장을 결코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

테러집단과의 직접 협상이 잘못된 것인가

▲ 지난 7월 25일 아프가니스탄 경찰 차량이 가즈니주의 탈레반에게 살해된 한국인 인질이 발견된 장소에 도착하여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 AP 연합뉴스
아프간 내전은 현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이 실현되어야만 종식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탈레반 세력의 정치적 인정이 불가피하다.

현재 미국과 연합군이 탈레반 소탕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이들은 절대 탈레반 세력을 무력 진압할 수 없다. 탈레반을 지지하는 국내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고 탈레반 몰락 후 아프간 사회가 가시적인 변화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아프간 정부에 분개하고 있는 국민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테러행위나 테러집단 규정과 관련된 국제정치의 파워게임을 이해한다면 한국정부가 테러집단인 탈레반과 직접협상을 감행한 것이 국제적으로 도덕적인 빚을 지거나 국제 관행에 어긋난다고만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덧붙여 세계 어느 정부든 자국과 자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치지 않는 나라는 없다.

한국 정부가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력을 받으면서도 자국민의 이익을 위해 전향적인 자세로 탈레반과의 직접협상을 택함으로서 탈레반은 국제적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이 결과가 장기적으로 볼 때 탈레반의 정치세력화, 아프간 내전 종식, 장기적 평화건설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가 가시적 변화를 보일 경우 탈레반도 테러 행위를 지양하는 무장 투쟁 쪽으로 방향 전환을 할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번 협상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태그:#탈레반, #한국인질, #아프간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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