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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22일 오후 세종로 정부합동청사 브리핑실에서 국정홍보처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발표를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서울의 기자들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 정부의 브리핑 룸 통폐합 조치 등에 맞서 서울 광화문과 세종로에서, 그리고 과천에서. 경찰청과 외교통상부 기자실에서 붙은 불은 보건복지부로, 과학기술부로 삽시간에 번지고 있다.

이게 몇 년 만인가. 기자들이 이처럼 한 목소리로 '언론자유'를 위해 행동을 같이한 것이. <경향신문>은 오늘(23일) 사설에서 "기자들의 줄 이은 성명은 과거 독재 정권 시절 언론탄압에 맞서 행해지던 시국선언을 연상케 한다"고 썼다. 실제 그렇다. 언론 자유를 위해 기자들이 이처럼 한 목소리로 '행동'에 나선 것은 아마 1987년 호헌 철폐 서명 이후 처음이지 않나 싶다.

'언론 자유' 위해 '집단 행동' 나선 기자들

반가운 일이다. 언론 자유를 위해 분연히 일어선 기자들의 행동은. 기자들의 양심과 기개가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기에. 언론 사주에 휘둘리고 어려운 언론사 살림 때문에 주눅 들고, 과중한 업무와 소모적인 경쟁에 파김치가 돼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싶었다. 언론계의 금도가 깨진 지 오래여서, 선후배간의 치열한 논의와 다툼이 사라진 지 오래여서 이런 문제로 다시 모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정부가 도발한 측면이 컸다. 기자실에 모여 앉아 담합이나 한다면서 기자실을 없애겠다고 나섰으니, 처음부터 취재 지원을 위한 선진화 방안이라는 말이 먹혀들기 어려웠다. 한미FTA 추진 과정에서 보여준 일사불란한 여론 동원 체제의 가동, 언론의 비판에 대한 좌충우돌식 공격적 대응 또한 정서적 반감부터 불렀다. 가뜩이나 각박한 취재환경에 시달리고 있던 기자들의 체감 지수는 더 컸다. 대통령과 언론과의 대화 이후 나름대로 접점을 찾아가던 정부와 언론계의 논의가 기자들의 반발로 좌초된 것이 그 단적인 사례다.

여기에 경찰청이 다시 불을 질렀다. 국정홍보처의 지침을 방패 삼아 기자들의 일선 경찰서 취재를 아예 봉쇄하겠다고 나선 것이 도화선이 됐다. 기자 사회의 공분을 자아냈다. 외교통상부 기자들이 그 선봉에 섰다. 정부의 취재지원 방안의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폐쇄될 기자실 '점거 농성'이라는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기자들의 분연한 봉기에 언론사들 또한 보조를 같이하고 있다. 기자들의 집단행동에 어지간해선 움직이지 않던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사까지 한 몸으로 움직이고 있다. 적극 앞장서고 있다.

이것은 또 얼마 만인가? 기자와 언론사들이 일심동체로 언론자유를 위한 투쟁의 대열에 함께한 것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로서는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일 수 있겠다. 1975년 엄혹했던 유신 독재 정권의 언론 탄압에 분연히 맞서 일어난 기자들을 대거 강제 해직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이들 두 신문이야말로 그 오욕의 역사를 털어버릴 수 있는 역사적인 전기를 맞은 셈이다. 기자들과 함께 언론자유의 한 길에 분연히 나섰으니까.

어지럽다. 바로 그런 점이. <동아일보>나 <조선일보>가 언론탄압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 그런 게 아니다.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니까. 취재 현장의 대다수 기자들이나 <동아일보>나 <조선일보>가 같은 대열에 서 있는 것이.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고집불통인 정부 탓인가. 그런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언론탄압'이라는 구호를 기자들이 <동아일보>나 <조선일보>와 같은 대열에서 서서 외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어색하다. 정부의 방침에 대한 비판이나 지적에서는 같은 목소리일 수 있다.

하지만 정부와 기자들의 전선은 <동아일보>나 <조선일보>가 펼치는 전선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이들 신문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이런 점은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 당장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기자들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대통령 선거를 몇 달 앞두고 과연 언론은, 기자들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당연히 해야 할 대선 주자들에 대한 검증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기자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으며, 어떤 실천적인 노력들을 하고 있는가.

'아프간 취재금지'에는 왜 침묵하나

또 이런 의문도 든다. 정부의 취재지원 방안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외교부의 브리핑을 '거부'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그것이 과연 아프간에서 탈레반에 붙잡혀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는 한국인 인질들에 대한 취재보다 더 중요한 일인가. 외교부 기자들이나 한국 언론의 기자들은 외교부 청사 출입 제한에 대해서는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정작 아프간 현지 취재를 원천 봉쇄하고 있는 정부의 방침에 대해서는 왜 성명 한 장 내지 않고 있는가? 무엇이 진정 '국민의 알권리'에 봉사하는 길인가.

구체적으로는 이런 점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앞으로 엠바고는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지금도 각 부처별로 '출입기자 명단'이 엄존하는데 '기자등록'은 5공 때와 같은 언론 통제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지금도 기자들은 '출입증'을 발급받아 정부 부처를 무상출입하고 있는데, 왜 이번엔 '출입증'을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점도 궁금하다. 정부가 지난 8일 발표한 취재지원방안에서 기자들의 취재에 대한 공무원들의 신속 응대 의무 등을 명문화한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인가. 공무원들을 직접 만나 취재하거나 전화 취재를 하려 할 경우 원칙적으로 정책홍보담당부서를 거쳐야 하지만, 기자가 직접 전화 취재를 하더라도 공무원이 부당하게 이를 기피해서는 안되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침' 같은 것은 전혀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일까. 만약 기자의 취재 요청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할 경우 그 사유를 즉각 설명해야 한다는 '지침'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지난 5월 28일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국회 문광위에 출석해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대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에 대한 평가는 전적으로 기자들의 몫이다. 또 정부의 방안이 옳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그 의도나 수순이 잘못됐을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언론이라면, 또 기자라면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그 시시비비를 따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동안의 사정과 맥락을 생략한 채 정부의 모든 방안이 '언론통제'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합당한 태도가 아니다.

정부 또한 보다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무엇보다 언론의 문제 제기에 대한 분명한 '답변'이 필요하다. 정부와 공무원에 대한 언론의 취재를 통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에 대해 그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공무원들이 기자의 취재에 응할 때는 사전 사후를 막론하고, 이를 보고토록 돼 있는데 지금과 같은 공무원 체질과 그 문화에서 과연 공무원들이 기자들의 취재에 제대로 응할 수 있을까, 그 확답이 필요하다.

브리핑 룸 복원되면 취재 더 잘할 수 있나

이제 이 문제는 대선 국면의 주요 정치 쟁점이 되고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적극 나선 탓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22일 나경원 대변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브리핑 룸을 복원하지 않으면, 차기 정권에서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더욱 고무되고 있는 언론사와 기자들이 있다면 이 점은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브리핑 룸 복원되면 취재 더 잘 될 수 있을까? 언론의 역할 잘할 수 있을까?"

그때 가서 브리핑 룸이 복원돼 봤자 지금 이 상태이다. 정부의 취재지원 방안이 더 '개악적'이라고 해서 반발하고 있지만, 현재의 상태 또한 결코 이상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실 문제의 핵심은, 본질은 다른 데 있다. 1987년 이후 언론계에서 20년간 논의되고, 고민해왔던 문제다.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다. 언론이, 기자들이 먼저 알아서 해야 할 일들이다. 그것을 이 자리에서 다 펼쳐보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찌됐든 그 길고 힘들었던 논의와 고민의 종합판이 지금 이 모양새로 정돈되고 있다는 게 여간 씁쓸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묻게 된다.

기자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태그:#백병규, #미디어워치, #기자실, #이명박, #언론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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