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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술을 처음으로 배운 건 아주 오래 전의 일입니다. 제 나이 겨우 십대 후반에 술을 배웠으니 벌써 30년도 더 되는 까마득한 세월의 끝자락이죠.

하지만 처음부터 술을 잘못 배웠습니다. 술이란 모름지기 아버지라든가 어르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잘 배워야 하는 법인데 불행히도 그러질 못했지요. 술을 처음으로 먹을 땐 제 처지가 심히 절망의 질곡에 함몰되던 즈음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홀아버지와 어렵게 살았습니다. 근데 아버지께선 허구한 날 술만 드시곤 또한 주사가 심하셨습니다.

소년 가장이 되어 학교도 진학 못하고 사회로 나와 돈을 벌었지만 가난은 항상 고착화된 강력본드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급기야 절망의 심연에 빠진 저는 '대체 술이란 요물의 정체는 무엇일까?'라는 화두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정체를 알아보고자 당시 유행하던 스낵인 '라면 땅'을 안주로 삼아 깡소주를 '나발' 불었지요. 하지만 그 쓰디쓴 소주는 반 병을 마시기도 전에 만취하여 그만 길을 가던 중도의 기찻길 옆 잔디밭에 쓰러져 뒹굴고야 말았지 뭡니까.

술을 잘못 배우면 평생을 간다더니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간에 제가 술로 인한 실수와 웃지 못할 에피소드 역시 책으로 써도 한 권은 너끈히 쓸 정도니까 말입니다. 아무튼 저의 그러한 곡절이 반면교사로 작용한 탓에 저는 아들이 대학생이 되자마자 무릎을 꿇리곤 술부터 가르쳤습니다. "안주로 배부터 채워라" "과음하지 말라" "실수하면 안 된다" 등 깐깐한 시어머니처럼 신신당부를 했음은 물론입니다.

그러한 주법이 주효한 때문인지 아무튼 아들은 지금껏 술로 인한 실수는 전무합니다. 근데 '씨도둑은 못 한다'는 속담은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아들은 부전자전으로서 저를 닮았는지 술을 물 마시듯 하니 말입니다. 그런 걸 보자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건 당연지사라는 생각입니다.

아들은 어제도 지인들과 모임이 있어 술을 먹고 늦을 거라고 집으로 전화를 해 왔습니다. "몸 생각해서 적당히만 마시거라!" "염려 마시고 먼저 주무세요."

올해 나이가 스물 다섯이나 된 성인이라지만 자식이란 어차피 이 아비의 눈에는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일 따름입니다. 하여 한밤중에도 두어 번 아들의 방을 열어 귀가했는지의 여부를 확인했지요. 아들은 오늘 새벽 두 세 시경에 들어온 모양입니다. 아들의 방으로 들어가 새우처럼 웅크리고 자고 있는 아들의 몸을 편히 눕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비즈니스도 좋지만 건강이 우선이니 술은 제발 적당히만 마시거라. 이 아비 닮지 말고!"

덧붙이는 글 | 이경실의 세상을 만나자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술버릇,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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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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