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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행을 실은 배가 예인선의 도움을 받아 자루비노에 입항하고 있다. 저 멀리 항구의 모습이 보인다.
ⓒ 서부원
두 시간을 손해(?)보다보니 아침에 눈을 뜨기가 쉽지 않습니다. 졸린 눈을 부비며 갑판에 올라 기지개를 켜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니 흡사 우리나라의 가을 하늘 같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칠 무렵 시끄러운 안내 방송과 함께 예인선의 도움을 받으며 자루비노항에 닿았습니다.

빌딩의 스카이라운지 같은 높다란 갑판에서 항구의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완만한 능선이 드러난 벌거벗은 산들과 성냥갑 모양으로 듬성듬성 세워놓은 멋대가리 하나 없는 건물들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국제 무역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시설과 한가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의 걸음이 퍽 낯설게 느껴집니다. 아무튼 러시아와의 첫 대면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 자루비노항 여객선 터미널의 모습. 잡풀 우거진 철로와 갈라진 벽과 지붕 등 국제 무역항이라고 하기에는 시설이 너무나 초라하다.
ⓒ 서부원
아니나 다를까 세관의 컴퓨터 고장으로 입국 수속이 세 시간이나 지연되었습니다. 별로 놀랄 것 없다는 듯, 승객이든 승무원이든 그저 무덤덤합니다. 연신 시계를 쳐다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은 오직 저뿐인 듯싶었습니다.

명색이 국경 세관인데 에어컨은커녕 너덜거리는 선풍기 한두 대가 전부인 낡은 그곳에서 어렵사리 통관을 마치고 나와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주변엔 앉아 쉴 수 있는 변변한 벤치 하나 없고, 지금도 화물 열차가 다니는 철로지만 웬만한 어린 아이의 키 높이의 잡풀이 무성합니다.

게다가 포장되지 않은 흙길에서 풀풀 날리는 먼지에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연신 피워대는 담배의 탁한 연기는 서 있기조차 힘들게 합니다. 낯선 이국적 정취라는 것, 생뚱맞게도 이런 데에서 먼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 크라스키노 시내 전경. 중국으로 이어진 도로변의 소담한 마을로 건널목 표지판의 그림이 퍽 재미있다.
ⓒ 서부원
터미널 밖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는 대부분 국경을 넘어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중국 훈춘(琿春)으로 향하는 것들입니다. 한달음에 갈 수 있는 북한의 길을 빌지 못하는 지금, 백두산엘 가려면 중국 셴양(瀋陽)과 옌지(延吉)를 경유하는 방법과 이처럼 동해 바다를 건너고 중국 국경을 넘어 가는 것뿐입니다.

관광객들을 실은 대형 버스들을 다 보낸 후 우리 일행은 안중근의 단지동맹(斷指同盟) 유지가 있는 크라스키노(Kraskino)로 향했습니다. 중국 훈춘과 이어지는 도로변에 자리한 이곳은 십여 년 전 옛 발해의 성터 유적이 발굴되어 역사학계의 관심을 모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 중국 자본의 연해주 점령(?). 새뜻한 카지노 호텔이 크라스키노 한복판에 우뚝 서 있다.
ⓒ 서부원
우리의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를 것 없는 조용한 이곳에 울긋불긋한 현대식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위통호텔(宇通大酒店)이라는 간판을 단 그곳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의 막대한 자본이 투자처를 찾아 러시아 연해주에 흘러들어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장입니다. 카지노와 숙박업을 통한 이윤 창출의 극대화라는 '투자 공식'이 이곳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연해주의 경제권이 중국 상인들의 손에 좌지우지되었는데, 이에 러시아 정부는 중국인 자체적인 기업 운영을 규제하고 러시아인의 관리 아래에서만 상행위를 할 수 있도록 조처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연해주에서 팔리는 공산품 대부분이 중국산이고, 외려 국경을 은밀히 오가는 밀무역만 부추기고 있어 정책이 대세를 막지는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연해주라는 변방(?)을 챙기기에는 러시아 정부의 힘이 아직은 미약한 듯 보입니다.

이름마저 생소한 이곳은 꼭 100년 전 안중근과 동지들이 구국의 뜻을 모아 단지동맹을 맺은 현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수리스크(Usurisk)를 거쳐 동만(東滿) 철도를 타고 할빈(哈爾濱)에 먼저 가서 조선 침략의 원흉으로 지목한 이토오 히로부미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단지동맹비는 원래 서 있던 자리에서 한참 떨어진 곳으로 지난해 옮겨졌다고 합니다. 관리가 되지 않은 까닭에 훼손이 심해져 비교적 안전한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는데, 현재 이곳에서 연해주 정부로부터 토지를 임대해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한 국내 기업에서 행한 '선행'입니다.

▲ 안중근의 단지동맹비. 훼손이 심한 까닭에 한 한국기업이 운영하는 농장 곁에 옮겨졌다.
ⓒ 서부원
그들의 따뜻한 배려와 역사 인식에는 분명 박수를 보낼 일이지만, 정작 이곳 주변에 사는 고려인(러시아에서는 이들을 '까레이스키'라고 부른다)들조차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안중근과 단지동맹의 존재를 무척 생소해 합니다.

러시아는 물론, 제국주의 시대 직접적 연관성이 있는 중국에서조차 역사 교과서에 안중근의 존재를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서 고려인 2세, 3세인 그들의 역사 인식 부족을 꼬집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우리와 같은 '핏줄'임을 외쳐대는 것은 그들의 '범(汎)민족적' 정체성을 여전히 '단일 민족'의 이름으로 강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안중근과 단지동맹이 당시 조선의 현실을 넘어 서양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을 폭력적 저항으로써 맞서려는 위대한 행위였다고 본다면, 그가 우리 민족의 일원이었다는 울타리를 넘어 사유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황량한 연해주 벌판에 찾는 이 없이 덩그러니 선 단지동맹비는 요즘 들어 외롭지 않아 보입니다. 주변에 굴지의 한국 기업이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선점해버린 이곳에 늦게나마 출사표를 던진 셈입니다. '역사'와 '민족'이라는 과거의 흔적을 뒤로 하고 여러 나라 '자본'의 힘겨루기가 막 시작되려는 참입니다.

▲ 크라스키노에서 블라디보스톡 가는 길. 푸른 초원의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한폭의 그림 같은 풍광을 자랑한다.
ⓒ 서부원
이제 답사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이 될 연해주의 주도(州都)인 블라디보스톡(Vladivostok)으로 가야합니다. 배가 닿은 자루비노(Zarubino)와 이곳 소담스런 크라스키노와는 사뭇 다른 풍광과 사연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길이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은 까닭입니다.

덧붙이는 글 | (사)동북아평화연대에서 주관하는 연해주-동북3성 답사 중 이틀째(7월 23일) 일정입니다. 안중근 단지동맹 유지가 있는 크라스키노의 외곽에 옛 발해성터가 발굴되었습니다. 성터 곳곳에 구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고구려성의 특징인 치성과 옹성 흔적이 발견되어 발해가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었습니다. 다만 이곳에 관해 주민들이 아는 바가 없고 변변한 안내판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아 단순 여행객이 찾아가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태그:#안중근, #러시아, #자루비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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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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