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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철도회원이 된 것은 기억도 아스라한 1990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실제 한국철도공사는 89년부터 가입회비 2만원을 내면 5% 할인 혜택을 줬고, 2-3% 정도 적립도 해 주었다. 그 덕분에 회원수 255만명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철도를 이용할 일이 많았던 나와 내 아내는 그 당시 거금 2만원씩을 예치금으로 내고 각각 철도카드를 발급 받았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6일 철도공사 카드발급 업무를 담당하는 업체에서 전화를 해와 "기존의 철도카드는 이제 없어지고 KTX패밀리 카드로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철도카드를 KTX패밀리카드로 바꾸래서 바꿨더니

KTX패밀리 카드는 승차권을 예약하면 휴대폰으로 전송되는 SMS티켓도 가능하고, 교통카드로도 사용이 되는 등 여러 혜택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모바일 칩이 들어가는 카드라서 카드발급 비용으로 별도 5000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철도승차권이 휴대폰으로 전송된다는 점이 편리할 것 같아, 당장 결제하라는 발급비용 5000원을 휴대폰결제를 통해 지불하고 신청을 했다. 아내에게도 더 편리한 카드가 나왔다면서, 새 카드로 바꾸도록 권유했다.

▲ 예전에 오래썼던 철도회원카드(위), 새로 발급받은 KTX패밀리카드(그런데 이게 또 KTX맴버십카드로 바뀌었다고 한다)
ⓒ 고태진
그런나 막상 카드를 받아보니 승차권 휴대폰 전송은 우리 가족이 대부분 이용하는 무궁화호에는 사용이 불가능했다. 교통카드도 수도권과 내가 거주하는 지방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이에 대해 철도공사는 올 2월부터는 사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5000원이라는 발급비용을 들여 새로 만든 회원카드가 나에게는 과거 철도회원카드나 다른 점이 없었다. 앞으로 서비스가 점차 확대되면 편리한 점이 많을 것이라며 자위하며 여기까지는 참았다. 그런데 문제는 2만원의 예치금이었다.

KTX패밀리카드로 새로 발급할 것을 권하는 전화를 받을 당시 설명에 따르면 이제는 철도회원으로 가입하려면 가입비를 2만원을 내야 하는데 기존의 예치금이 가입비로 전환된다는 말을 들었다.

오랫동안 넣어놓았던 예치금이 갑자기 없어진다고 하니 뭔가 좀 억울한 감도 있었고, 회원가입비도 과도하게 비싸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지 않으면 철도회원 가입이 안 된다면서 전화상으로 결정을 재촉하니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넘어갔다.

철도공사 유료회원은 예치금 2만원을 납부한 철도회원과 새로 가입비 2만원을 납부하고 회원이 된 KTX패밀리회원, 그리고 기존 예치금 2만원을 가지고 KTX패밀리회원으로 전환한 회원 세 종류로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지난 6월 말 철도공사측은 기존 예치금을 납부한 철도회원, KTX패밀리회원들을 대상으로 KTX멤버십카드를 발행하기 시작해 회원 통합에 나섰다. KTX멤버십카드는 카드 비용 명목으로 1만원을 받고 발급해 주고 있다.

그러나 돈 내고 이용해주는데 회원가입비까지 받는다는 건 지나친 상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드발급비가 1만원이나 된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2만원 예치고객들의 불만이 거세지자 지난 6월 철도공사는 회원들에게 '예약보관금 반환 및 코레일멤버십 무료회원제로 변경'이라는 안내장을 보내기도 했단다. 과거 2만원 예치금을 냈던 철도카드 회원에게 원할 경우 돈을 돌려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난 어떤 통지도 받지 못했고, 철도공사 회원가입방식에 대한 불만을 담은 <한겨레> 7월31일자 독자투고와 같은 신문의 8월11일자 철도공사의 해명 글 내용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철도공사 홈페이지를 통해 철도공사가 돌려준다는 예치금에 관련된 내용을 어렵게 찾아 확인해보니, 고객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지난 수십 년간 고객이 맡겨둔 예치금을 주지 않으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뿐이 아니다. 돌려 받을 수 있는 금액도 2만원이 아니라 1만5000원이었다. 카드발급비용이 1만원이라면서 내가 카드발급비용이라고 미리 낸 5000원에 더해서 철도공사에서 회원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예치금에서 5000원을 임의로 카드발급비용으로 제한 것이다. 이것은 지난 12일 코레일 고객센터(1544-7788)로 전화를 해서 들은 해명내용이다.

애초에 KTX패밀리 카드를 전환할 때 분명히 카드발급비용은 5000원이라고 했다. 그래서 당시에 5000원을 별도로 지불한 것이다. 그런데 철도공사에서는 멋대로 KTX멤버십카드로 통합하면서 카드발급비용을 1만원으로 정한 뒤 고객 예치금에서 마음대로 빼간 것이다. 고객 예치금은 철도공사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아니지 않은가? 내 예치금에서 제한 5000원은 부정인출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카드비용을 예치금에서 멋대로 제하고...

두 번째로 예치금의 반환 방식이다. 이 1만5000원의 예치금도 현금으로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할인쿠폰의 형식으로 지급했다. 그것도 2008년 12월31일까지 사용하지 않으면 그냥 없어진다. 나도 이 내용에 대해 통보 받은 바가 없으니, 아마도 이 내용도 모르고 있는 회원이 많을 것이다. 내 돈도 내가 기한 안에 찾지 못하면 철도공사의 소유가 된다.

▲ 예치금 2만원이 할인쿠폰 1만5천원으로 바뀌어져 있는 코레일 홈페이지의 설명. 오른쪽에 유효 종료일 '2008년 12월 31일'이라고 돼 있다.
ⓒ 코레일 홈페이지 캡쳐
또한 이 1만5000원의 할인쿠폰도 구입금액이 그에 모자라더라도 한번밖에는 사용하지 못한다. 관련 내용은 "정액할인 쿠폰은 1회에 한하여 사용가능하며, 현금 반환 불가합니다. 예) 13000원의 승차권을 15000원 정액할인쿠폰으로 구입 시 차액 2000원은 돌려드리지 않습니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철도공사는 뭔가를 대단히 착각하고 있다. 고객들이 맡겨놓은 돈을 자신들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 2만원을 20년 가까이 철도공사에 맡겨두고 철도를 무척이나 많이 이용해 온 고객이다. 아마 철도회원들이 그 오랜 기간 동안 맡겨놓은 예치금의 이자수익만 해도 적지 않은 금액일 것이다. 그런데 철도공사는 어떡하든 고객의 예치금을 돌려주기보다 적자를 메울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고, 화가 난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KTX멤버십카드 회원의 경우 2만원의 예치금이 종신회비로 전환되는 과정을 설명했고, 5000원의 카드 제작 실비를 제한다는 내용을 고지했지만 소비자들이 이를 잘 인식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면서 "철도회원제도가 무료로 변경되고, 기존 회원 통합 과정에서 불만이 있는 고객이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할인쿠폰의 경우 2008월 12월 31일이면 기간 자체도 그렇게 촉박하지 않고,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는 만큼 소비자 입장에서 크게 손해라고 판단되지 않아 그런 결정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철도를 오랫동안 이용한 소비자 입장에서 이런 내용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카드발급비용 1만원도 은행의 신용카드와 비교하면 발급비용이 비싼 편이다. 또한 승차권 예약도 바로 결제를 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만들어놓아 예약도 용이하지 않다. 소비자 위주가 아니라 모든 제도가 철도공사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철도공사는 멤버십카드의 발급비용을 없애고, 길게는 십수 년 간이나 맡겨둔 고객의 소중한 예치금을 현금으로 간편하게 반환하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다. 거창한 고객 서비스 헌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고객 대우부터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태그:#코레일, #철도회원카드, #KTX패밀리카드, #할인쿠폰, #카드발급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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