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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북부지역의 한 골프장(항공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2007년 여름을 강타하고 있는 핫이슈는 한나라당의 경선도 아니고, 범여권의 통합신당도 아니다. 국민들의 시선은 탈레반의 인질로 잡혀 있는 한국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기원하며 국민들은 언론보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바로 이 시점에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경작이 어려운 농지를 골프장으로 만들어 '반값 골프장'을 국가정책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황당함 그 자체이다. 실현성이 전혀 없는 정책을 밀어붙이려는 것도 황당하지만, 탈레반 인질 사태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정부가 난데없는 '골프 반값' 운운하며 팔을 걷어붙이는 모습을 보고 기가 막힌다.

정부가 골프장 가격을 반값으로 내리겠다는 것은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한심한 작태이다. 참여정부가 진정으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부라면 오히려 골프장 가격을 두배로 올리는 것이 이치에 맞다.

한국에서 여전히 골프는 상류층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골프가 이미 대중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정부 관료의 눈높이가 의심스럽기만 하다. 수백만에 이르는 골프채와 1회당 보통 30만원에 이르는 골프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국민들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주어야 할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지은 골프장에서 즐기는 골퍼들에게 상응하는 사회적 비용을 지불토록 하는 것이 형평성에도 맞다. 지금도 골프장은 환경에 미치는 피해가 많은데 비해 그 비용을 다 지불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골프 치는 비용은 지금보다 두 배 정도는 더 비싸야 한다.

외화유출? 유학간다고 국내에 외국학교 지을건가

무엇보다 골프는 국토면적이 협소한 우리나라 실정에 전혀 맞지 않는 운동이다. 대중골프장을 지으려면 9홀의 경우에도 15만평이 필요한데, 이것은 축구장 75개와 맞먹는 규모다. 이런 대규모의 땅위에 지어진 골프장에 수용 가능한 하루 내장객수는 18홀 기준으로 300명 내외에 불과하니 굉장히 비효율적인 운동이다.

축구장 150개가 들어 설 수 있는 땅 위에 하루 300명만 놀 수 있는 골프는 토지가 광활한 미국이나 구릉지가 많은 유럽에서나 적합한 운동이다. 이런 골프장 건립을 농지에다 허용하여 골프장 공급을 늘려 가격을 반값으로 내려 보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동의하기 어렵다.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대한민국에서 골프가격을 반값으로 내릴 수 없다. 골프장 반값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골프마니아로 알려진 경제부총리는 온전한 사고를 가진 대한민국의 경제부총리인지 묻고 싶다.

정부는 골프관광으로 연 1조가 넘는 11억8000만 불에 달하는 외화유출을 막기 위해 '반값 골프장' 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동남아 골프장은 국내에 비해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렴한 골프만을 위해 외국으로 골프 치러 나가는 한국인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건전하게 골프여행을 다니는 분들에게는 대단히 죄송스럽지만, 골프여행은 골프 외에도 향락·유흥문화가 따라 붙는다는 것이 보통이라는 사실은 골퍼들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골프장 가격이 반값으로 내려간다고 해서 골프여행을 즐기는 남성들의 동남아행을 막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해외로 골프치러 나간다고 국내에 골프장을 마구 짓겠다면, 외국유학 많이 간다고 외국학교를 마구 짓고, 양주소비가 많다고 양주산업을 육성하고, 외제 자동차를 선호한다고 국내에 외국자동차 공장을 마구 설립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초등학생도 비웃을 노릇이다.

또 반값 골프장이 야기할 골프장의 공급확대로 인한 환경적 재앙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국가적 낭비를 초래할 것이 우려된다. 골프는 다른 운동과는 달리 풀밭 위에서 하는 운동이므로 잔디의 관리가 생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같이 여름에 덥고 비가 많이 오는 곳에서는 풀밭은 되지 않는다. 풀 중에서도 가장 뿌리가 얕은 잔디는 더구나 안 된다.

일년 강우량이 연중 고른 편인 영국 골프장의 잔디는 가만히 놔두어도 잘 자라서 때가 되면 잘 깎아 주기만 하면 되지만, 우리나라 잔디밭은 가만두면 다 죽어 없어지고 만다. 생태학적으로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심었기 때문에 잔디밭을 관리하는 데에는 엄청난 수고와 비용이 필요하다.

환경부가 지난해 전국 222개 골프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ha당 10.76kg의 농약이 사용되었고, 일부 골프장은 고독성 농약인 엔도설판까지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환경부가 98년부터 2004년까지 7년간 조사한 연도별 농약 잔류량 검출 골프장 수는 98년 19개소에서 2004년 91개소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땅에서 잔디관리가 이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그래서 '반값 골프장'은 성공할 수 없고, 전국에 지어질 수백 개의 '반값 골프장'은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지난 2004년 11월 국회의원 '노골프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안민석
골프 대중화는 대한민국 망하는 길

국민들은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값비싼 골프는 점점 대중화되는 추세다. 대한민국 곳곳에 250개의 골프장이 이미 운영중이고 84개의 골프장이 건설 중이다. 이미 공급과잉에 이르고 있다.

또 일본에서만 볼 수 있었던 도심지 골프연습장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에서도 골프강좌는 수강생이 넘쳐나고 주부강좌에서도 골프가 단연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모든 언론에서도 골프 기사가 넘쳐 난다. 이 정도면 골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닌 우리 사회의 트랜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골프대중화를 반대한다. 골프는 대한민국에서 대중화가 되어서는 안 되는 운동이다. 골프가 대중화 되는 날은 대한민국이 망하는 날이다. 골프 없이는 살지 못하는 분들은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치면 된다.

한편 양극화 문제는 국가적 아젠다가 되었다. 계급적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갈수록 높아지고, 상위 20%의 가구 소득이 하위 20%의 가구 소득의 약 7배로 높으니 이 정도면 사회불평등은 구조적으로 심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프는 20:80의 사회로 이행하는 우리 사회에서 상위 20% 이내의 대중화 일뿐 나머지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이 느끼는 사회적 위화감은 불가피하다.

특히 문화관광부장관도 아닌 경제부총리가 특정 체육종목의 활성화에 발벗고 나서야 하는지 의아스럽기 짝이 없다. 아직도 어린 축구선수들은 맨땅에서 온몸에 생채기를 내며 공을 차고 있는 현실은 생각해본 일이 없는가? 민주화 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참여정부라면 동네에 테니스장, 수영장이나 배드민턴장을 더욱 확충하고, 학교에 더 많은 잔디운동장을 확충하여 남녀노소가 함께하는 풀뿌리체육기반을 강화해서 국민건강을 챙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걸맞지 않을까 한다.

경제부총리가 발표한 '반값 대중 골프장'은 2007년 한여름 '복 더위 먹은 헛발질 정책'이다. 덥고 습한 날씨에 짜증나고, 탈레반에 의해 피랍된 우리 젊은이들을 생각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대다수 국민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고급스포츠에 눈이 먼 참여정부 관료에 대해 한심스러움을 넘어 분노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 정책은 당장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덧붙이는 글 | 안민석 기자는 경기 오산 출신의 국회의원으로서 국회 교육위원회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골프장, #권오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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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안민석입니다. 제 꿈은 국민에게는 즐거움이 되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는 삶의 모델이 되는 정치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마이에 글쓰기도 정치를 개혁하고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만드는 지름길 중에 하나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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