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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리모델링 환영.’ 요즘 아파트를 지나다 보면 이런 문구가 걸린 현수막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아파트마다 앞다퉈 리모델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 것, 넓은 평수가 곧 아파트의 가치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더 크고, 더 넓고, 더 세련된 것을 선호하는 시대에 옛 것으로 치부되어 점점 잊히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 대형마트, 상점 등의 영향으로 주말에도 한산한 재래시장의 모습
ⓒ 김미정

29일 경기도 부천 중동시장. 주말임에도 시장은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조금 있는 한적한 분위기였다.

“나는 괜찮지만 젊은 사람들은 어찌 사나 싶지”

중동시장에서 10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소예남(62)씨. 소씨는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재래시장은 없어질 것”이라며 입을 열었다.

근처에 아파트는 계속 생겨나지만 그만큼 마트나 큰 상가가 들어서 재래시장은 점점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며 “요즘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차 타고 시원한 마트에 가거나 인터넷 주문을 하는 걸 보며 세상이 변했다고 느낀다”며 달라진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소씨는 여러 개의 점포들을 “여기도, 저기도”라고 가리키며 모두 가게를 내놓은 곳이라고 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떨어지면서 수익이 줄어들자 그나마 가게를 빌려 장사하는 사람들은 한 달에 대개 80만~100만원가량 세를 내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이 시장에서 90%는 가게를 내놓은 상태”라고 본다는 소씨는 “더 손해를 볼 수 없어 권리금을 포기하고 나가는 사람도 있다, 자주 점포 주인이 바뀌니 예전처럼 가족같이 지내는 것도 없다”면서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소씨는 “나이 많은 나는 괜찮지만 이렇게 시장을 떠나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뭘
먹고 살 지 걱정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좋은 품질과 오고가는 정 때문에... 덥다고 짜증내는 손님도 있어

▲ 한적한 건어물 가게를 지키고 있던 김정식 씨. 그는 좋은 품질을 공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 김미정

▲ 우렁찬 목소리로 손님의 주의를 끌고 있던 정육점 직원 이정기 씨.
ⓒ 김미정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김정식(52)씨. 김씨는 마트에 다니는 사람, 시장에 오는 사람 모두 각자의 성향에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같이 아는 사람은 백화점이나 마트의 물건은 품질보다는 포장으로 가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재래시장은 포장이 없고 물건 그대로를 보여주기 때문에 품질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게의 물건을 보여주었다.

김씨는 “마트에 비해 열악한 환경이라 일부 손님들은 덥다고 짜증내기도 한다”며 그렇지만 자신이 직접 발로 뛰어 마련한 물건들에 만족을 느낀 손님들이 와서 “이게 참 맛있었다, 다 떨어져서 다시 사러 왔다”고 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웃었다.

정육점에서 근무하는 이정기(29)씨. 이씨는 근처 한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매출의 3분의 1이 급감했다고 말했다. 재래시장의 장점이라면 “가격대가 저렴하고 고기를 직접 작업하기 때문에 신선한 것”이라고 마트와 차별성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트에서 장을 보는 와중에도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야채가게에서 가지를 고르고 있던 주부 유명옥씨는 “마트가 편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살 물건만 묵묵히 고르는 것보다는 서로 이야기하면서 오고 가는 정이 좋은 것 아니겠냐”며 “다양한 물건을 구경하고, 흥정하는 맛에 자주 온다”고 했다.

사람들로 붐비는 마트... 차를 가지고 온 사람들로 교통정체 심해

▲ 대형마트, 쇼핑몰이 밀접해 복잡한 거리
ⓒ 김미정

재래시장을 뒤로하고 인근의 한 마트로 가봤다. 걸어서 10분 거리인 곳도 차를 가지고 가면 정체된 도로 때문에 20~30분이 걸리기도 한다. 힘들게 마트에 도착하면 다시 주차장으로 가야 한다. 2층, 3층, 4층까지 올라가면 겨우 주차할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마트에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 재래시장과 달리 대형마트에는 많은 사람들이 장을 보고 있었다.
ⓒ 김미정
상동에 살고 있는 임차순(52)씨는 “아무래도 시원하고 원하는 물건이 종류별로 많이 있으니까 편해서 자주 온다”며 “특히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시장보다는 마트가 더 편하지 않겠느냐”며 마트에 오는 이유를 설명했다.

옛 것보다 크고 새로운 것이 각광 받는 곳은 마트만이 아니다. 올 8월 부천시에는 쇼핑몰과 고속, 시외터미널이 결합된 ‘종합터미널-소풍’이 열린다. 이곳의 개장을 앞두고 곧 구터미널이 될 ‘부천시외버스터미널’에 가보았다.

기존 터미널은 좁고 불편... 지나치게 큰 새 터미널 규모에 대한 지적도

▲ 많은 이용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부천시외버스터미널. 8월에 새로 개장되는 종합터미널-소풍이 이제 새로운 터미널이 된다.
ⓒ 김미정

오후 5시. 아쉬운 주말을 뒤로하고 다시 직장으로, 학교로 떠나야 하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터미널 이용승객 수에 비해 부족한 시설로 많은 불편함을 호소했던 사람들은 새 터미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 터미널을 이용했던 한 고속버스 기사는 “이곳은 공간이 협소해 많이 불편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승객들을 먼저 하차하게 한 후 주차하러 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했다”면서 더 넓은 새 터미널의 개장을 환영했다.

그러나 무조건 새 것, 큰 것을 추구하는 세태를 우려하는 시민도 있다. 근처 중앙공원에서 아이들과 산책 나온 최모씨는 “기존의 터미널이 불편하고 낙후한 시설인 것은 사실이지만 새 터미널은 너무 규모가 크다고 생각한다”며 “이미 새 터미널이 생길 곳 바로 옆에는 대형마트가 있고 인근에 두 곳의 백화점, 많은 쇼핑몰이 밀접한데다 지하철 공사까지 이루어져 매우 혼잡한 곳이다”라고 우려했다.

▲ 거대 쇼핑몰과 고속, 시외버스터미널의 기능을 할 종합터미널-소풍에는 여러 직원들이 개장을 앞두고 공사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 김미정

그러나 새 것, 큰 것은 요즘의 대세인 듯 하다.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승환(25, 학생)씨는 새 터미널에 대해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에게는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아지니 좋다"며 지하철 공사도 함께 이루어져 불편하지만 "어른들은 집값이 올라가니 좋다고 말한다"고도 했다.

재래시장과 대형마트, 구터미널과 거대한 쇼핑몰이 된 신터미널. 더 크고, 더 넓고, 더 세련된 것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기존에 사용했던 곳들은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 밀려 점점 그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태그:#재래시장, #소풍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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