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2002년 8월 13일 촬영한 북한 영변 핵시설 위성사진.
ⓒ 연합뉴스

2·13 합의 이후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에 꽉 막혀있었던 북핵 해결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프로세스에 다시 속도가 붙고 있다.

6월 하순부터 BDA 문제 종결,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방북, 한국의 중유 제공 개시,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쇄·봉인 및 이를 감시·검증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방북 등이 잇따라 이뤄지면서 2·13 합의의 1단계 이행조치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이처럼 석달여의 지체 끝에 관련국들이 1단계 이행조치에 들어가면서 관심의 초점은 '그 이후'로 모아지고 있다. 9·19 공동성명 및 2·13 합의에 따라 북한은 모든 핵 프로그램을 협의·신고하고 불능화 조치를 취하며, 핵무기 및 플루토늄을 포함한 모든 핵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폐기해야 한다.

이에 발맞춰 미국 등 관련국들은 중유 95만톤 상당의 대북지원에 들어가고, 테러지원국 해제 및 적성국 교역법 종료, 북미·북일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상응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18일부터 베이징에서 재개될 6자회담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앞으로 넘을 산이 진짜다

이와 관련해 많은 전문가들은 영변 핵시설의 폐쇄 및 봉인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었다면,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와 불능화, 그리고 핵무기의 폐기는 대단히 까다롭고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핵시설의 폐쇄 및 봉인과는 달리 2·13 합의에서는 불능화의 구체적인 시점과 정확한 개념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의 정확성과 완전성을 검증하는 절차도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핵프로그램의 신고는 1~2개월 내에, 불능화 조치는 연내에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우선 북한의 신고 대상과 관련해 2차 북핵 문제의 발단 원인이 되었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의 포함 여부가 주목된다. "있다"는 부시 행정부와 "없다"는 김정일 정권 사이의 갈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미국은 6자회담이 재개되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한다는 방침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 북핵 6자회담이 지난 2월 13일 6개국의 합의로 타결된 가운데, 이날 오후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폐막 회의에 앞서 참가국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황광모
이와 관련해 북미 양측이 2·13 합의 이후 HEU를 둘러싼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 상호 만족할 수 있는 방식으로의 해법을 모색하기로 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접점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미국은 2·13 합의 이후 북한의 HEU 보유에 대한 정보평가를 '높은 수준'에서 '중간 수준'으로 낮춰 놓은 상태이다.

이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가지고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이 문제를 털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강력히 암시한다. 더구나 미국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 장비를 '구매'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HEU 논란이 해소된다고 해서 북핵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깔끔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갈등의 요인은 북한이 이미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핵무기와 플루토늄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프로그램' 신고... '1착 핵위기'의 악몽

일단 2·13 합의에서는 신고 대상으로 "모든 핵프로그램"이라고 명시된 만큼, 북한은 핵무기와 플루토늄을 포함한 모든 핵 프로그램의 정확한 내역을 신고해야 한다.

문제는 북한이 신고한 내역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강도높은 사찰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이는 합의하기도 힘들 뿐더러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는 데 있다. 특히 미국이 추정하는 양과 북한이 신고하는 양 사이에 '불일치'가 커질수록 이 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크기 역시 커지게 될 것이다.

1990년대 초반 1차 핵위기도 불일치 문제에서 비롯된 바 있다. 당시 북한은 1990년을 전후해 실험적으로 추출한 플루토늄 양이 90g이라고 신고한 반면에 미국과 IAEA는 6~8㎏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특별사찰을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북한은 IAEA의 공정성과 특별사찰의 주권 침해 요소, 그리고 미국의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에 반발하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탈퇴함으로써 1차 핵위기가 터진 것이다. 그런데 당시 한반도 위기의 뇌관이었던 되었던 불일치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다.

더구나 북한이 2003년부터 5MWe 원자로를 재가동하고 제네바 합의에 따라 수조에 보관해두었던 8000여개의 사용후 연료봉도 재처리한 상태이기 때문에,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플루토늄의 양은 수십㎏에 달한다. '수십㎏'이라는 것은 정확한 양을 둘러싸고 얼마든지 추정치의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북한이 핵실험에서 사용한 플루토늄의 양,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만들었는지의 여부 및 여기에 사용된 양 등도 중요한 검증 대상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의 양과 사용처를 완전히 검증하는 데에는 1~2년은 족히 걸리고, 1차 핵위기 때처럼 사찰 과정에서 갈등이 폭발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시화'냐, '영구화'냐

▲ 지난 6월 22일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방북 일정을 마치고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불능화를 둘러싼 갈등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불능화와 관련해 핵심적인 문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 대상이고, 다른 하나는 불가역성의 여부이다.

2·13 합의에서는 "모든 현존하는 핵시설"을 불능화의 대상으로 명시했다. 이에 따라 불능화 대상에는 5MWe 원자로, 이 원자로에 핵연료를 제공해온 핵연료제조공장, 재처리 시설인 방사화학실험실 등이 핵심적인 대상이 된다. 이들 시설은 재가동되어왔고, 또한 플루토늄 추출을 위한 핵심 시설이라는 점에서 명확한 불능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50MWe 원자로와 200MWe 원자로는 건설 중인 시설이라는 점에서 공사 중단을 넘어 불능화 대상에 포함될 것인지의 여부가 중요한 관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원칙적으로 이들 공사 중인 시설 역시 공사 재개 불능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불능화를 향후 핵시설이 재가동되지 못하도록 불가역적인, 즉 영구적인 불능화 조치에 합의할 것인가의 문제도 핵심적인 관건이다. 미국은 불가역적인 방식을 요구할 것이고, 북한은 명확한 상응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조건에서 이를 수용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불가역적인 불능화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원자로의 노심이나 제어봉 등 핵심 장비를 고장시키거나 폐기해야 한다.

이는 개념적으로 핵시설의 구조물과 건축물의 해체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완전한 폐기는 아니지만, 북한이 핵시설을 재가동하기 위해서는 핵심부품을 다시 조달해야 한다는 점에서 핵시설 폐기 과정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상' 핵시설의 폐기로 해석될 수 있어 북한이 수용하려고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이 문제 역시 단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잠정적인 불능화 조치로 핵시설에서 제거된 핵심부품을 IAEA 사찰단의 감시하에 두고 핵시설의 전력 공급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고, 영구 불능화 단계에 해당하는 핵심부품의 고장 및 폐기 조치는 '행동 대 행동' 차원에서 테러지원국 해제 완료와 적성국 교역법의 종료, 그리고 경수로 공사 재개 등 북한의 핵심적인 요구 사항을 상응조치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