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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 오마이뉴스 남소연
'2007 대선'이라는 이름의 경기장. 들어가지도, 돌아서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명박·박근혜는 아닌데…' 싶은, 한나라당 집권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이다. 아직 이들은 입장 티켓을 구입하지 않고 있다.

경기장에선 한나라당 '빅2'의 대결뿐이다. 범여권 선수 열댓 명이 몸을 풀고 있지만 글쎄, 꽂히는 선수가 없다. 게다가 이들이 올라설 무대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대선 5개월 전인데도 여당도 없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외야석이 흥분하면 이긴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한 386 의원의 말이다. 그의 말인즉, "값싼 티켓을 사고 들어와 앉아 있는 외야석 사람들이 흥분하면 경기는 이긴다"는 것. 지금은 대선판도, 후보군도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경기장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얘기다. 곧 사람들이 몰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다.

하지만 아직은 시큰둥하다. 한 친여 성향의 교수(정치학)는 "요즘 언론사에서 누굴 지지하냐는 걸 자주 물어오는데 괴로워 죽겠다, 지지할 사람이 없다, 이러다 기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지지도 멈칫... '왜 안 떠?' vs. '왜 떠야 돼?'

티켓 구매를 망설이는 분들을 위해 흥행요인을 따져보자. 우선 손학규 선수가 가시권에 들어온다. 이명박·박근혜에 이어 격차 큰 3위. 손학규의 지지도는 언론사별 편차는 있지만 대략 7~8% 정도다.

최근 한길리서치 조사에서 9.8%가 나온 뒤 '10% 돌파하나'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섣부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부동층을 줄이기 위해 재질문하는 방식을 썼다"며 "그럴 경우 보통 1~2%는 상승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올랐다"고 판단하기엔 무리라는 것. 쏠림 현상이란 단정은 아직 이르다.

손학규의 상승세는 그야말로 '찔끔찔끔' 수준이다. 경기도지사 임기를 마친 2006년 6월 이후 2~4%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100일 민심대장정을 통해 5% 돌파를 노렸지만 안됐다. 5% 문턱을 넘어선 것은 지난 2월경. 손학규는 당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서 5.6%라는 지지도를 기록했다. 그 뒤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은인자중의 시간을 보내다가 최근 대통합 참여를 선언하는 등 범여권 주자로서 입지를 분명히 하면서 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금 손학규는 2차 민심대장정에 돌입했다. 또다시 땀의 현장을 선택했다. 난항을 겪고 있는 대통합 협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으면서 조직 다지기와 이미지 메이킹에 주력하고 있다.

손학규, 뜰까? 그를 유심히 지켜보는 지지자들은 '왜 안 뜰까?'라며 답답해하지만 '왜 떠야 하는데?'라고 질문을 바꿔보자. 전문가들은 이명박 후보와 지지층이 겹치는 처지에서 지금 같은 호재에도 별다른 반등의 계기를 만들지 못하는 게 "손학규의 한계"라고 냉정하게 평가한다. 부동산 논란으로 각종 부패 이미지가 겹치면서 이명박의 지지도는 수도권·중산층·30~40대에서 내려가고 있다.

"이명박 표가 오지 않고 있다. 이들을 유인할 능력이 딸리는 것 아니냐. 손학규가 지닌 함의(시대정신)가 뭔가. 전달력이 없다. 정체의 원인이다. 상황과 구도에 의해 만들어진 후보다. 현재로선 박근혜에게 못가는 사람들이 할 수 없이 손학규에게 넘어오는 정도다." (김헌태 KSOI 소장)

갈 곳 없는 범여권의 일부 표가 간 것 외에 인물 자체가 지닌 자생요인이 없다는 건 자주 지적되는 바다.

"앞으로 이 사람이 나라를 위해 뭘 할 수 있는 사람일까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게 없다. 민생투어? 기억에 남는 건 그뿐이다.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벤트에 매달리고 있다. 경기도지사 임기를 끝낸 지 벌써 1년이 지나지 않았나. 잡히는 게 없으니 갑갑한 거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 지난해 1차 민심대장정 당시 망가진 비닐하우스를 걷어내는 일을 하는 손 전 지사.
ⓒ 오마이뉴스 이경태

벌써 두 번째... 변신 vs. 변절

손학규의 아킬레스건은 또 있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전력이다. 최근 민주당의 김영환 후보가 "손학규를 후보로 전제한 통합에 동의할 수 없다"며 "어떻게 탈출한 탈영병을 사령관으로 앉힐 수 있겠는가"라고 일갈했다. 꽤 아프게 들릴 말이다. 최후까지 손학규를 따라다닐 낙인이다.

범여권 주자로서 입지가 커질수록 '기회주의자 검증론' 역시 확산될 터. 벌써 조짐은 보인다. 열린우리당 핵심지지층에게 어필하고 있는 이해찬 후보가 가장 적극적이다. 정동영·한명숙·천정배도 저마다 '정통성' '적자론'을 내세워 손학규에게 잽을 날리고 있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한나라당 후보를 마주 대할 본선에서 그 치명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공사판에서나 필요한 벽돌"이라고 논평했다. 작년 민심대장정 직후 범여권 합류 가능성에 대해 "내가 벽돌이냐, 어떻게 빼서 넣느냐"라고 강력 부인했던 손학규의 말을 되돌려준 셈이다.

손학규의 '변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한 직후 치러진 첫 보궐선거에서 'YS(김영삼) 승, DJ(김대중) 패'를 안겨준 장본인이었다. 당시 대학 교수이던 손학규는 YS의 재야인사 영입 케이스로 전격 발탁됐다.

당시 경기 광명에 출마한 손학규의 구호는 간명했다. "대통령이 불렀다. 개혁 위해 나섰다." 손학규의 승리는 '야합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YS의 콤플렉스 탈출에 기여했고, 반면 승리를 낙관했던 야성(野性)의 도시에서 야당을 누르면서 3당 합당을 비판한 민주세력의 기를 꺾는 데 일조했다.

손학규의 민자당 행은 논란이 많았다. '시대가 만든 변신인가, 출세주의 변절인가'(<시사저널> 181호)로 요약된다. 공교롭게도 당시 손 교수(서강대)가 마지막 수업 시간에 제자들에게 던진 말("내가 무엇이 되는지를 보지 말고,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를 지켜봐 달라")은 14년이 지난 뒤, 한나라당 탈당의 변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었다.

또 민자당 대변인을 지내면서 강삼재 사무총장과 함께 DJ 공격수 노릇을 했던 전력 역시 곤혹스럽다. "간첩 서경원에게 김일성의 돈을 받았다"는 등 색깔론을 제기해 YS의 소총수 역할을 자임했다. 최근 손학규가 DJ를 찾아가 과거를 사과했지만 난타전이 될 본선에서 상당 부분 주도권을 잃을 수 있는 대목이다.

▲ 범여권내 예비대선주자인 손학규ㆍ김혁규ㆍ이해찬ㆍ한명숙ㆍ정동영ㆍ천정배 후보 6인은 7월 4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김근태 전 의장 주선으로 열린 대선예비주자 6인 연석회의에서 만나 대선체제 정비와 국민경선을 통한 후보선출문제를 논의했다. 손학규ㆍ김혁규ㆍ이해찬ㆍ한명숙ㆍ정동영ㆍ천정배 후보가 함께 손을 잡고 웃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생각을 뒤집어!... 경계인의 가능성?

모든 상황은 동전의 양면이라지만 손학규의 경우는 정확히 그러하다. 정체성의 애매모호함은 그만큼 너른 지지층을 포괄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기회주의성은 시대에 부합한 유연성과 역동성으로, 한나라당 탈당은 한나라당의 표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는 역발상으로 순치된다. 사실 그런 기대감이 손학규의 자산이다.

손학규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보수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쪽과 진보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쪽이 팽팽하다. 경계인이다. 그 자신이 천명한 노선은 중도다. 수도권의 중도층에게 '중도 이념에 가장 가까운 후보'를 물은 결과 이명박과 간발의 차이로 2위로 나타났다(디오피니언 조사). 이명박이 중도보수라면 손학규는 중도개혁으로 분류된다.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이 무너질 경우 '중도 표'를 가져올 후보라는 논리의 근거다.

이명박에 '의지한' 차별화 전략은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명박이 지닌 경제회생 이미지를 겨냥해 "이명박은 짝퉁, 손학규는 진품"이라고 대비하는 식이다. 손학규 캠프의 정봉주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여유와 자신감을 보였다.

"배신자? 계속 공격하라고 해라. 그렇게 몰리다가 뒤집으면 10%는 그냥 먹는다. 범여권이 하나로 뭉쳐봐야 한나라당 못 이긴다. 그쪽 표를 가져와야 한다. 손학규가 아니면 누가 하겠나.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비판은 파괴력이 없다."

이명박·박근혜는 물론 한나라당 당원들이 가장 위협적인 상대 후보로 손학규를 꼽는 이유다.

손학규 캠프에선 자신을 '보따리장수'라 비판한 노 대통령과 친노 그룹을 향해서도 모종의 복안을 준비 중이다. 아직 노출 단계는 아니라지만 부정을 긍정의 자산으로 뒤집겠다는 접근이다. 비노 전선을 대통합으로 확장하는 감동의 연출자가 되겠다는 것일까?

손학규는 정동영에 비해 범여권 핵심지지층(호남·친노·열린우리당)의 결합력이 약하다. 이들을 향해 승부를 걸어야 한다.

아직 호남에서도 눈에 띄는 지지도 변화는 없다. 하지만 광주전남을 중심으로 저변은 움직이고 있다는 판단이다. 박광태 광주시장 쪽에서 물밑 지원을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캠프에선 조직정비가 얼추 완료되고, 이달 말 출마선언을 하게 되면 호남에서 의미 있는 수치상의 변화도 기대해 볼만하다고 전망한다. 더욱이 '햇볕정책 계승'이라는 대북관과 최근 'DJ 지원설'이 흘러나오면서 손학규에 대한 호남의 거부감은 높지 않다.

▲ 5월 20일 김대중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한 손학규 전 지사.
ⓒ 손학규 전 지사 측 제공
손학규의 자생요인 그리고 가치

민주화 운동 진영의 지지·지원을 기대하고 있는 손학규에게 386 세대 역시 중요한 원군이다. 정치인 중에는 신계륜·우상호·오영식·임종석 등이 거명되고 있다. 한 변호사(81학번)는 "정치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다"고 전제한 뒤, 손학규 캠프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찍었다고 한다.

"손학규는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시대정신에 가장 맞다. 80년대를 영국 유학생활로 보내고 한나라당에 14년 동안 있으면서 '누릴 것 다 누리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있지만 바로 그것이 내가 지지하는 이유다. 나도 학생운동하고 노동운동했지만 변호사가 됐다. 그럼 나도 기회주의자인가. 지금은 혁명을 논하는 시대가 아니다. 이념 대결은 노무현 시대로 끝났다. 민주화 운동세력은 이제 생활인으로 살고 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좌표를 제시할 인물이 필요하다. 손학규가 외국에서 공부한 경험,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에서도 있어본 경험, 경기도지사를 했던 경험 모두 소중하다. 인맥도 넓고 노무현보다 영어실력도 낫지 않나. 군사독재 시절에도 호의호식했던 경기고 엘리트들을, 역시 경기고 출신이지만 운동을 해봤던 손학규가 제압할 수 있다고 본다. 내 태생은 민주노동당·열린우리당이지만 이들에겐 사실 화가 난다."

강준만 교수는 '손학규 현상'에 대해 10가지를 꼽았다. '아웃사이더' '대결주의'로 표상되는 '노무현주의'에 질린 사람들에게 손학규의 엘리트, 비빔밥 이미지는 안정감으로 작용한다는 것. 또 손학규의 낮은 지지도 역시 신선함으로 포장될 잠재력을 지녔고, 강력하지 않은 지역 기반은 영호남 대결주의와 거리를 유지시켜 준다는 역설적 이유를 꼽았다. 가장 눈에 띄는 지적은 파란만장한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기회주의는 관대하게 처리되어 왔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원칙은 인물에 밀려왔다.

범여권 단일 후보 추대를 위한 국민경선추진협의회의 이목희 총괄본부장(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손학규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지적은 타당하다"면서도 ▲한나라당을 이길 후보가 누구인가 ▲김대중-노무현의 지난 10년 '민주정권'의 가치를 지켜낼 후보가 누구인가에 따라 지지 여부를 결정될 것이라 말했다. 그 두 가지를 해명하고 설득해 내는 일은 손학규 자신의 몫이라는 얘기다.

태그:#손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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