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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말세라고 하지만 젊은 아가씨가 백발의 할머니에게 주먹질을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 임윤수
'어! 저게 뭐야? 젊디젊은 게 할머니한테 주먹질을 해?'

젊다기보다는 아직 새파랗다고 할 수 있는 젊은 아가씨가 백발의 할머니에게 주먹질을 해대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천인공노할 사회적 패륜이며 노인학대지만 그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만감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할머니와 손녀가 함께 하는 아름다운 동행

토요일(7일) 오후, 짜랑짜랑한 햇살 아래 파파할머니와 아가씨가 충북 진천의 보탑사 경내로 들어섭니다. 검은색 머리카락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백발, 연세에 비해 조금 좋아 보이는 체격, 불편해 보이는 걸음걸이로 구부정한 허리를 한 할머니를 모시고 앳돼 보이는 아가씨가 경내로 들어옵니다.

또래의 나이쯤이라면 그런 할머니와 함께 한다는 자체를 창피해 하거나 부끄럽게 생각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멀찌감치 떨어져 걷거나, 할 말이 있어도 타인인 듯 지나가는 말처럼 할 듯한데 이들의 동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어쩔 수 없이 굼떠 질 수밖에 없는 행동,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늙은 모습,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냄새를 노인 냄새로 치부하며 역겨워하는 게 요즘 세태며 나를 포함한 요즘 사람들인데, 아가씨의 모습에는 어떤 주저함이나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꾸밈없는 동행, 할머니와 함께 하는 동행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보여 아름다운 마음이 절로 느껴지는 그런 모습입니다.

효도 한 번 하겠다고 큰맘 먹고 할머니를 모시고 나왔거나, 어쩔 수 없이 동행을 해야 했다면 그의 행동에서 왠지 모를 어색함이나 쭈뼛거림이 보였을 텐데 그의 행동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음 편한 친구와 산책을 하듯, 일상생활이 그러할 거라 낌이 드는 행동으로 할머니와 동행을 합니다.

▲ 젊은 아가씨가 할머니에게 해대는 ‘주먹질’은 언뜻 보기에는 천인공노할 사회적 패륜이며 노인학대지만 그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만감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 임윤수
팔짱을 낀 듯 할머니에게 바짝 달라붙어 이것저것을 설명하며 느릿한 할머니의 발걸음에 맞춰 경내를 돌아봅니다. 할머니의 발걸음은 연세와 건강상태를 말해 주듯 답답하다고 느낄 만큼 굼떴습니다. 그러나 빠릿빠릿해 보이는 아가씨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할머니에게 발걸음을 맞춰 걷습니다.

또렷하고 당당하게, 연세 드신 할머니의 청력을 우선 생각하는 듯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보디가드처럼 할머니를 모시는 아가씨의 동행은 계속됩니다.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본 두 사람은 영산전 뒤쪽에 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고, 느릿느릿 한 보행이었지만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에겐 힘이 드는가 봅니다. 할머니가 벤치에 앉자 젊은 아가씨는 할머니에게 주먹질 아닌 주먹질을 시작합니다.

젊은 아가씨가 할머니에게 해대는 '아름다운 주먹질'

'토닥토닥, 탁. 탁.' 할머니 어깨를 두드리는 안마의 손길이 계속됩니다. 지금껏 경내를 거닐던 두 사람의 모습이 꽃망울이었다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이어지는 아가씨의 주먹질은 활짝 핀 꽃송이만큼이나 아름답고 커보였습니다.

한참을 바라봤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에 경탄하고, 진혼곡에 빠져들듯이 그렇게 바라보고 느꼈습니다. 얼른 카메라를 꺼내 할머니에게 주먹질 아닌 주먹질 하는 모습을 찍고, 두 사람이 앉아 있는 벤치로 다가갔습니다. 슬그머니 장난기가 도졌습니다.

▲ 손녀의 품에 안긴 할머니는 끔벅거리는 눈짓으로 행복감을 나타냅니다.
ⓒ 임윤수
"젊은 사람이 할머니를 그렇게 때리면 안 되지. 아가씨도 '개똥녀' 되고 싶어?" 하고 장난기가 분명한 말투로 말을 건넸지만, "어! 때리는 거 아닌데요"하며 아가씨가 정색을 합니다.

더는 장난을 치다간 아가씨가 당황할 것 같아 얼른 "너무 아름다워서, 할머니와 함께하는 아가씨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 좀 찍었어요" 하고 사진을 찍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학생이냐고 물으니 대학을 졸업해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취업준비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열풍이 불고 있는 공무원을 준비하느냐고 물으니 '승무원'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두 사람 관계는 짐작하였던 대로 조손(할머니와 손녀) 관계로 진천에서 1시간쯤 떨어진 일죽에서 왔다고 하였습니다. 서울에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아가씨는 이따금 집(일죽)에 들릴 때마다 집에만 계시는 할머니(87)를 위해 바람도 쐴 겸 나들이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아가씨는 맑았습니다. 할머니를 모시는 행동에서 이미 느꼈었지만 몇 마디 짧은 대화에서 구김살 없는 마음, 외면이나 거침없이 할머니를 생각하는 갸륵함을 느꼈습니다.

아가씨는 "몸이 아프셔서 매일 집에만 계시는 할머니가 답답해하셔서 집에 내려갈 때마다 드라이브를 시켜드린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야 여행 다닐 시간도 많고, 맛있는 것을 실컷 먹을 시간도 많지만 "할머니께선 이제 사실 날도 별로 남지 않으셨을 것 같고, 할아버지가 작년에 돌아가신 후 더 적적해 하셔서…" 하며 말끝을 흐립니다.

보행이 불편한 할머니, 관절이 좋지 않아서 바깥나들이가 녹록지않은 할머니에게 기꺼운 마음으로 다리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효녀'의 이름은 김효정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하니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하며 이메일주소와 이름을 적어줍니다. 종이에 적어주는 아가씨의 이름, '김효정'이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이름과 사는 모습(행동)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짧고, 일부분이겠지만 효의 결정체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주먹질(?)하는 사진만을 보내주기가 뭣해 할머니와 함께 하는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니 효정씨는 덥석 할머니를 끌어안았습니다. 의도한 몸동작이 아닌 평소의 행동, 평소에도 할머니를 그렇게 대해왔음이 증명될 만큼 자연스런 모습으로 할머니를 끌어안으며 환하게 웃어줍니다.

손녀의 품에 안긴 할머니는 끔벅거리는 눈짓으로 행복감을 나타내며 "애가 나한테 얼마나 잘하는데" 하며 손녀를 자랑합니다. 햇살에 앉아 있기가 버거운 듯 삭정이 지팡이를 들어 보이며, 절 입구에서 주웠다고 자랑인지 변명인지를 하며 할머니가 벤치에서 일어납니다. 할머니 옆에 놓아두었던 물병과 간식봉투인 듯한 이것저것을 챙기며 효정씨도 할머니를 따라 일어납니다.

▲ 효정씨처럼 가식적이지 않은 마음으로 노인을 공경하는 승무원이 탑승하는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늙어가는 노후가 서럽지 많은 않을 듯합니다.
ⓒ 임윤수
두 사람은 집으로 가기 위해 발길을 옮겼습니다. 굼떠 보이지만 아름다운 뒷모습으로 느릿느릿 비탈길을 내려갑니다. 도란도란 나누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는 쉽사리 맡을 수 없는 향기, 할머니를 공경하는 손녀의 아름다운 마음과 그런 손녀를 대견하게 생각하는 할머니의 지극한 마음이 어울려 삶의 향기로 오로라처럼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직업정신이 아닌 본심으로 노인을 공경하는 승무원 되길

효정씨가 어떤 승무원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본 효정씨의 모습은 노인을 공경할 줄 아는 '효녀'였고 맑았습니다. 가식적이지 않은 마음으로 굼뜰 수밖에 없는 노인들을 친절하게 안내할 것 같은 승무원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좀 더 나이를 먹어 나 역시 굼뜰 수밖에 없는 늙은이가 되었을 때 효정씨 같은 승무원, 직업정신이 아닌 본심으로 노인을 공경하는 승무원이 탑승하는 비행기를 탈 기회가 주어지면 늙어가는 노후가 서럽지 많은 않을 거라는 생각에 피식 웃어봅니다.

더 이상 시대의 보석처럼 아름답게만 보이던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두 사람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가슴에는 그들이 남긴 아름다운 모습이 반짝거리는 여운으로 잔잔한 물결처럼 남아돕니다.

물결치던 여운 끝에 반문이 이어집니다. '비슷한 또래의 두 딸, 아니 나 자신은 저 할머니와 동갑인 87세의 어머니와 저렇게 아름다운 동행을 할 수 있을까?'를 몇 번이고 되뇌어 반문해 보았습니다.

세상에는 '개똥녀'나 '된장녀'만 있는 게 아니라 얼마 전 보도 되었던 '천사녀'나 효정씨처럼 '효녀'도 있어 행복합니다.

태그:#동행, #효녀, #김효정, #된장녀, #개똥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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