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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8일 월요일 맑음

오전 7시 산티아고 쿠바 도착. 짐을 꾸리는데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관타나모까지 간다고 하니까 손가락을 관자놀이 위까지 올려서 뱅뱅 원을 그린다. 목적지는 아바나라고 하자 다시 한번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옆에 있던 아저씨가 영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아바나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한 20일 정도요."
"관타나모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죠?"
"나가서 왼쪽으로요."
"네."
"관타나모는 볼 게 없어요…."
"감사합니다."

여행의 시작이 으레 그렇듯이 A4 한 장 크기의 쿠바 지도를 들고 볼 게 없다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터미널 밖으로 나가서 페달을 밝았다. 이제 본격적인 쿠바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심장의 떨림이 느껴진다. 생각보다 길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다만 물과 음식을 살만한 곳이 없다는 게 문제다.

▲ 산티아고 쿠바 도착!
ⓒ 박정규
언덕에 망고장수가 보인다. 회화 책을 꺼내서 "가장 싸게 부르는 가격이 얼마입니까? 더 작은 건 없나요? 할인을 원합니다"라는 부분을 보여주니까 웃으면서 4페소에 5개를 주기로 했다. 그런데 잔돈이 3페소밖에 없다. 그냥 그거만 받고 4개를 덤으로 더 주셨다.

어! 파인애플 파는 곳이 있다. 처음에 1개에 1페소라고 해서 즉석에서 잘라서 다 먹었는데… 먹고 나니 5페소를 요구한다. 몇 번을 실랑이하다 그냥 줘버리고 왔는데 끝까지 따졌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르막을 올라가는데 지나가는 남자 3명이 망고를 그냥 주고 간다.

▲ 망고장수 아저씨
ⓒ 박정규
▲ 파인애플 아저씨
ⓒ 박정규
▲ 길 상태는 아주 양호했다.
ⓒ 박정규
날이 저물어 인근의 집을 찾아가 한국말로 "계십니까"라고 하자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아주머니가 나왔다. 부모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부모님께서는 흔쾌히 나그네를 받아주셨고 거실에 이부자리를 깔아 주셨다. 젊은 아주머니는 고등학교 영어교사였고 희망질문을 스페인어로 번역해주었다. 쿠바는 출산휴가가 1년이란 점이 인상적이었다.

▲ 그림 같은 풍경의 강에서 아이들과 잠시 수영을 즐기기도 했다.
ⓒ 박정규
▲ 쿠바식 즉석피자를 굽는 과정. 싸고 맛있다.
ⓒ 박정규
▲ 쿠바식 즉석피자
ⓒ 박정규
▲ 희망 질문을 스페인어로 번역해준 영어 선생님.
ⓒ 박정규


희망일지 현장수첩-6월 18일

1. 이동경로 SANTIAGO DE CUBA – GUANTANAMO

2. 주행거리 77.4km / 6시간 51분 / 평균속도 11.2km/h

3. 사용경비: 24페소 / 환율 1$=1CUC=24페소
망고 9개: 3페소, 파인애플 1개: 5페소, 음료수 2잔: 2페소, 작은 햄버거 2개: 10페소, 피자 1개: 4페소

4. 음식아침: 음료수 2잔, 작은 햄버거 1개점심: 망고 10개, 파인애플 1개저녁: 스파게티와 밥간식: 피자

5. 신체상태
날이 뜨거워서 전체 피로가 느껴짐. 팔과 얼굴이 조금 화끈거림.


2007년 6월 19일 화요일 맑고 더움

라디오 밑에 몰래 숙박비로 5CUC(쿠바태환화폐, 세우세)를 놓고 나왔다. 이번 여행에는 작은 정성이나마 표시하기로 했다. 어떤 사람이 관타나모에서 다음 목적지인 올긴(HOLGUIN)으로 가는 길이 없다고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가야 한다는 소리를 한다. 다행히 다른 사람에게 더 물어보자 길이 있다고 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은 길이란다.

시가지를 벗어나 농촌 느낌의 길을 달리는데 배가 아프다. 마침 작은 둔덕 위의 옥수수밭이 보인다. 남의 집 앞에 조나단을 눕혀 놓고서 밭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큰일 난다고 내려오란다. 그리고 그 집주인에게 말해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고 조나단도 지켜봐 주었다.

재래식 화장실 안에는 높이 60cm, 폭 20cm 정도 되는 네모난 나무 받침대가 있었다. 아무래도 그 위에 올라가서 일을 보는 것 같다. 조심스레 올라갔는데 우지끈- 하면서 한쪽 중간 부분이 부서졌다. 다행히 빨리 내려와서 큰일은 없었다. 어렵게 일을 보고 나오는데 주인 파란 통 안에 망고를 가득 담아서 먹으란다. 30개는 될 것 같다. 그냥 4개만 먹고 나왔다.

▲ 쿠바식 재래식 화장실
ⓒ 박정규
▲ 쿠바식 재래식 화장실 내부 모습
ⓒ 박정규
▲ 망고를 이만큼이나 주셨다.
ⓒ 박정규

1.5리터 물통을 6번이나 채우고 비우고를 반복하며 해질 무렵에 올긴 경계지점을 통과해버렸다. 때마침 멀리 민가가 보인다. 한국 대학생이고 자전거 여행 중인데 오늘 밤에 자고 갈 수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1분의 망설임도 없이 그냥 들어오란다.

6명의 가족이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새신랑인 욜라바르란 친구를 따라서 달빛 아래 개울가에서 샤워도 하고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도로 바닥에 손을 대고 2초를 버티기 힘든 날이었지만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면 이쯤이야 문제될 것 없다.

▲ 산 길
ⓒ 박정규
▲ 욜라바르의 집 내부 모습. 커튼 안 쪽에 방이 있었다.
ⓒ 박정규
▲ 새 신랑 욜라바르는 아주 유머감각이 많은 친구였다. 오른쪽 그의 아내.
ⓒ 박정규
▲ 푸짐한 저녁 식사
ⓒ 박정규


희망일지 현장수첩-6월 19일

1. 이동경로 GUANTANAMO‐HOLGUIN

2. 주행거리 61.7km / 6시간 4분 / 평균속도 10.1km/h

3. 사용경비: 150페소 / 환율 1$=1CUC=24 페소과일 10개: 10페소, 어제 숙박료: 5CUC

4. 음식
점심: 과일 여러 개
저녁: 밥, 닭고기 요리 등
물 9리터

5. 신체상태
전체 피로.


2007년 6월 20일 수요일. 맑고 덥다가 오후 한차례 소나기 후 갬

오늘도 부지런한 닭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오전 7시다. 산을 내려와 민가에서 물을 얻고 잠시 쉬어가는데 노부부가 하나밖에 없는 흔들의자를 양보해주신다. 그냥 바닥에 앉아서 잠시 쉬다가 다시 출발했다.

▲ 흔들의자를 양보해주신 노부부
ⓒ 박정규
▲ 거리 음식점에서 사 먹은 빵
ⓒ 박정규
우르르, 쾅쾅! 나무 아래서 낮잠을 자다가 천둥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먹구름을 피해 달려보지만 곧 비가 왔다. 나무 아래서 잠시 비를 피하는데 도로의 열기가 식으면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10분 정도 비가 내렸는데도 아직 도로바닥은 따뜻하다.

▲ 도로의 열기가 느껴졌다.
ⓒ 박정규
비를 조금 맞고 가다가 파인애플 파는 집에서 5페소짜리를 2페소에 먹으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식물의 잎을 엮어서 만든 부채꼴 모양의 지붕으로 비가 하나도 새지 않는 게 신기했다.

▲ 식물로 엮은 지붕. 비가 하나도 새지 않았다
ⓒ 박정규
▲ 식물로 엮은 지붕
ⓒ 박정규
▲ 동네 음식점에서 사 먹은 쿠바식 밥
ⓒ 박정규
저녁 7시가 되면 처음으로 나오는 민가에 숙박 문의를 하려는데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조금 더 달리다가 동네 진입 200m 전에 집 한 채가 보인다. 아주머니가 나왔다. 호텔로 가라고 했지만 비싸다고 좀 재워달라고 했다. 수분의 침묵과 '하하-' 웃음소리가 지나간 후에 집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밥과 스파게티에 샤워에 빨래까지 했다.

잠시 앉아서 숨을 돌리고 있는데 주인아저씨와 경찰이 나타났다. 경찰은 어디론가 전화를 했고 잠시 후 그냥 갔다. 주인아저씨가 친구 집을 소개시켜 준다면서 자전거를 타고 앞장섰다. 10분 정도 달려서 동네 시가지로 진입했고 초인종이 있는 집 앞에 도착했다.

주인에게 소개시켜준 후 아저씨는 돌아갔다. 무스로 머리를 손질한 집주인은 영어로 여러 가지 설명을 한 후 하룻밤에 20CUC란다. 헉! 여기는 '까사(쿠바 민박집)'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푹 쉬기로 했다. 10CUC로 할인을 받고 에어컨을 켜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졌다.

▲ 비교적 좋은 시설의 까사(쿠바 민박집)
ⓒ 박정규


희망일지 현장수첩-6월 20일

1. 이동경로 HOLGUIN시 경계-HOLGUIN Mayari

2. 주행거리 70.6km / 5시간 35분 / 평균속도 12.1km/h

3. 사용경비: 134페소 / 환율 1$=1CUC=24페소 어제 숙박료: 5CUC, 빵 2개: 4페소, 음료수 3잔: 4페소, 파인애플 1개: 3페소, 밥과 음료수 2잔: 3페소

4. 음식
점심: 빵 2개, 음료수 2잔
저녁: 스파게티와 밥
간식: 음료수 3잔, 파인애플 1개
물 6리터

5. 신체상태
전체 피로.

태그:#자전거여행, #산티아고, #쿠바, #관타나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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