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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에 볼펜을 물고 사인을 하고 있는 최종진 시인.
ⓒ 김연옥
이슬꽃 시인 최종진의 시집 출판기념회를 겸한 음악회 <별밤 꽃피는 밤>이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던 지난 23일 저녁 7시 경남 양산시 평산교회에서 열렸다. 최종진(50)씨는 1989년 출근길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덤프트럭에 부딪히는 사고로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된 장애인 시인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장애인 문학지인 <솟대문학> 본상을 1997년에 수상한 그는 2001년 5월에 첫 시집 <그리움 돌돌 말아 피는 이슬꽃>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버려야 하는 시들은 버리고 보태야 할 시들을 더해서 시 100편을 엮은 개정판을 2003년에 냈다. 올 3월 스물여덟 편의 시를 새로 바꿔 역시 100편으로 이루어진 재개정판 시집을 선보이게 되었다.

▲ 최종진 시인이 입으로 쓴 글씨.
ⓒ 김연옥
그의 시집은 언제나 <그리움 돌돌 말아 피는 이슬꽃>으로 우리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그것은 삶이 한 번이듯 시집도 한 권만 가지겠다고 자신에게 했던 약속 때문이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도공이 애써 만든 도자기를 깨어 버리듯 그동안 써 왔던 시들을 계속 버리는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한다.

<별밤 꽃피는 밤> 행사는 동요를 부르는 '철부지'의 고승하 선생이 중심이 되어 마련된 자리이다. 작곡가이기도 한 고승하 선생이 최종진의 시에 곡을 붙여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날은 최종진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시를 낭송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애써 걸어온 그의 삶에 따뜻한 박수를 보내는 시간이 되었다.

그의 신앙 고백이라 할 수 있는 시 '나의 왼손'을 이현주 목사가 낭송하고 생태유아교사들이 노래하면서 출판기념 노래난장이 시작되었다. 세상 사람들을 이어 주는 끈이 되었던 그의 왼손, 그나마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조금이라도 남겨진 왼손은 그의 말대로 신의 선물이었다. 여전히 착한 눈빛으로 그가 바깥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의 왼손 덕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그 왼손마저 힘에 부쳐 입에 볼펜을 물고 글을 써야만 한다.

▲ 최종진의 시 '고맙습니다'가 노래를 만나 더욱 아름다운 밤이 되었다.
ⓒ 김연옥
▲ '한반도(불신시대)'를 낭송하는 조광호 목사와 카조라는 악기를 불며 노래하는 이종일씨.
ⓒ 김연옥

그날 행사에는 짱뚱이 오진희, 톱 연주가 진효근, 하모니카를 부르는 할머니 모임인 '모니카', 동요를 부르는 '여고시절', 어린이 예술단 '아름나라', 이영자 시인, 조광호 목사, 민중 가수 김산 등 멀고 가까운 곳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악기로 변신한 톱과 해금, 카조, 오카리나, 풍금, 색소폰, 콘트라베이스 등 다양한 악기들도 눈길을 끌었다.

최종진 시인은 1993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소식지 <징검다리(cafe.daum.net/dewflowers)>를 손수 펴내어 그를 돕는 사람들에게 꾸준히 보내고 있는데 올 6월에 153호를 냈다. 그런데 요즘 부쩍 하늘과 죽음을 노래한 시들이 많아 그의 건강을 염려하는 소리도 들린다.

고승하 선생은 "최종진 시인은 따뜻한 가슴을 가진 분이다. 그 스스로 애써서 이렇게 소중한 자리를 만들게 되었고 그를 위해 우리도 무엇인가 보여 주며 축하하고 싶다"며 사람들의 따뜻한 가슴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되었다고 말했다.

"오늘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 사람이 꼭 흡족했으면 좋겠다"고 운을 뗀 고승하 선생이 무대 위에서 "최종진씨, 오늘 기분이 좋습니까?"하고 묻자 최종진 시인은 "예, 좋습니다"라고 대답을 하기도 했다.

▲ 최종진 시인의 손발이 되어 주었던 어머니.
ⓒ 김연옥
사실 오늘의 그가 있기까지는 늘 그의 곁을 지키며 손발이 되어 준 어머니가 계셨다. 여든이 훨씬 넘은 어머니의 휜 허리만큼이나 최종진씨의 힘들었던 삶이 처연하게 느껴졌다. 그의 가슴에 그리움의 까만 씨를 맺히게 했던 아내 강나루씨가 그에게로 돌아와 함께 서 있는 모습도 그동안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이 내게 전해져 마음이 아팠다.

나는 친필 사인을 부탁해도 되는지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입에 볼펜을 물었다. 그의 아내가 손으로 받쳐 든 시집에 그는 '고맙습니다 2007 최종진 드림'이라고 써 내려갔다.

▲ <별밤 꽃피는 밤> 행사 내내 그의 곁에 있은 아내가 참 예쁘다.
ⓒ 김연옥
▲ 고승하 선생의 지휘로 모두 함께 '하나이어라'를 부르면서 최종진의 출판기념 노래난장은 막을 내렸다.
ⓒ 김연옥
언젠가 나와 가까이 지내는 분에게서 '무엇이든 하나가 된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 되기를 그렇게 갈망하는지도 모르겠다. 최종진의 시 '하나이어라'에 고승하 선생이 곡을 붙인 멋진 노래를 끝으로 최종진을 위한 노래난장은 막을 내렸다.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그의 모습 그대로 우리가 따뜻하게 지켜봐 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사랑의 이름으로 그에게 지나친 욕심을 부려서도 안될 것이다. 그저 따뜻한 가슴으로 그에게 박수를 보내면 된다.

태그:#최종진시인, #이슬꽃시인, #노래난장, #별밤 꽃피는 밤,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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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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