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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빛이 작열하는 어느 오후, 지난여름 들렸던 만휴정이 갑자기 생각났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이미 만휴정을 향해 35번 국도를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다. 학교를 출발해 30분쯤 달렸을까? 어느덧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다리를 건너다보니 다리 아래에선 마을 아주머니들이 골부리를 한창 줍고 있었다. 그랬었다, 이곳 경북 안동시 길안면은 골부리국이 유명했었다.

▲ 마을 입구 다리 밑에선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을 주민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골부리를 줍고 있었다.
ⓒ 유승호

마을을 지나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너면 만휴정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이 보인다. 뜨거운 태양 때문인지 입구에는 산머루가 떨어져 있어서 올라가면서 나의 입을 덜 심심케 했다. 언덕길 중간 중간에는 민들레처럼 생긴 꽃들이 그 향을 자랑하듯 한껏 피어있었다. 나중에 안건데 쑥부쟁이꽃이라는 야생화라고 한다. 좀 더 자세히 볼걸 그랬다.

▲ 만휴정으로 올라가는 진입로에는 벌써 산머루가 떨어져 있었다.
ⓒ 유승호
▲ 쑥부쟁이라는 야생화. 마치 민들레와 흡사하게 생겼다.
ⓒ 유승호

만휴정은 조선시대 선비인 보백당 김계행(寶白堂 金係行, 1431∼1517) 선생이 말년에 이곳 길안에 내려와 독서와 사색을 하기위해 건립한 정면 3칸, 측면 2칸 구조의 정자이다. 정면을 누마루 형식으로 개방하여 바로 앞의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고, 양쪽에는 한 개씩 방을 두어 학문의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 만휴정으로 들어가는 다리위에서 찍은 정면사진; 다리를 건너기가 조금 무섭기도 했다.
ⓒ 유승호

▲ 만휴정 안에서 찍은 옆모습; 나름대로 날카로운 지붕을 가지고 있었다.
ⓒ 유승호

만휴정, ‘늦게야 쉰다’ 는 뜻이 말해주듯, 보백당 김계행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세운 만휴정은 주변 경치가 빼어나다. 당시 조선 선비들은 계곡에서 정자를 지어 거주하는 계거(溪居)를 최고로 여겼다고 한다. 계곡은 시냇물과 바위 그리고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조선 산수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계곡의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 잡념을 버리고 명상에 잠기기 안성맞춤인 것이다.

또한 만휴정을 감싸 안은 계명산(鷄鳴山)은 마치 철모를 엎어놓은 것 같은 형태의 금체형(金體形)이다. 이런 모습의 산은 예로부터 봉황 또는 금계로 표현된다고 한다. 그래서 만휴정의 터는 금계포란(金鷄抱卵)의 형국으로 불리운다.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형국에서 놓고 볼 때 만휴정이 자리잡은 터는 바로 그 ‘알’에 해당하는 자리이다.

만휴정 아래에 호(湖)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마치 만휴정이 품은 내가 ‘알’이 된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 보다 높은 곳에서 만휴정을 찍어 보았다. 만휴정은 찍는 장소에 따라 그 느낌도 달랐다.
ⓒ 유승호
▲ 보백당만휴정천석(寶白堂晩休亭泉石)이란 글귀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 유승호

만휴정 누마루에 앉아 경관을 감상하면 밖에서 만휴정을 보는 광경과는 또 다른 경관이 보는 이의 눈길을 머물게 한다. 그 중 정면에 보이는 큰 바위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 있었다. 보백당만휴정천석(寶白堂晩休亭泉石). 보백당이란 김계행 선생의 호이고, 만휴정은 그가 말년을 보내기 위해 건립한 정자요, 천석은 계곡과 바위를 뜻하니 이곳 만휴정의 의의를 나타내는 듯 하다.

▲ 만휴정 사진이 가장 잘 찍힌다고 하여 만휴정 포토라인으로 통하는 곳에서 찍은사진; 이름모를 야생화가 사진에 같이 잡혔다.
ⓒ 유승호

조선 초 청백리로도 손꼽힐 정도로 청렴하셨던 선생은 만휴정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집에 보물이 있다면 오직 맑고 깨끗함 뿐이다.”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 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

▲ <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 만휴정 처마밑에 다른 글귀들과 함께 지긋이 자리하고 있다.
ⓒ 유승호

▲ 물이 차서 그런지 때늦은 올챙이들이 카메라에 잡혔다. 벌써 여름인데 아직 봄인줄 아는가 보다.
ⓒ 유승호

보물유청백이라는 청백과 강직의 정신은 이곳 만휴정에서 정신을 다듬으며 완성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고급 산수화에서나 나올법한 아름다운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만휴정은 보백당 선생의 인격을 엿볼 수 있는 장치이자, 조선시대 선비정신을 함축하고 있는 최고의 정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곳에 앉아 있다보니 역시나 그러했다.

보물은 재물이 아니라 맑고 깨끗함, 그것뿐이었다.

덧붙이는 글 | 본격적인 더위에 들어가기전 안동지방에서 가볼만한 피서지로 가장 좋을듯하여 본 장소를 기사화하게 되었습니다. 관심이 있으신분들은 한번쯤 들려 보세요.


태그:#만휴정, #안동, #피서, #김계행, #묵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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