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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7월 1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G8(선진7개국+러시아) 정상회의의 일환으로 양자회담을 가진 조지 부시 미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중국·대만) 세 나라 모두 군사적 충돌로 인해 잃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전쟁을 피해야 할 충분한 이유들이 있다…(중략)…그러나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곧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저명한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리처드 부시와 마이클 오핸런의 공동 저서 <전혀 다른 전쟁(A War Like No Other)>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과 재부상하는 강대국인 중국 사이의 전쟁 가능성을 다뤘다.

이 연구소 동북아정책연구실의 소장을 맡고 있는 부시는 1990년대 중반 국방정보국의 동아시아 담당관을 지낸 미국 내 대표적인 양안관계 전문가이고, 국내 언론에도 많이 소개된 오핸런은 군사안보 분야의 최고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저자의 면면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시와 오핸론은 미중간의 군사 충돌이 발생할 경우의 수를 크게 세 가지로 봤다. 첫째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영토 문제 등으로 무력 충돌이 발생하고 미국이 개입하는 것이고, 둘째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다른 매개 변수 없이 '패권 전쟁'과 같은 직접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저자는 중일-미중 관계가 상호의존적이고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의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고 본다.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세 번째 경우, 즉 양안간에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미국이 개입하는 경우이다. 이 시나리오 역시 상대적으로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지금부터 잘 관리하지 않으면 막대한 비용을 치르는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양안 분쟁과 미중 전쟁 위험은 '실존'

부시와 오핸런은 양안간의 분쟁이 현상유지를 타파하려는 어느 일방의 고의적인 행위에서 비롯되기보다는 오판과 오산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오판과 오산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대만이 분리독립보다는 자신의 주권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중국은 독립을 시도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미 중국은 2005년 3월 반분리법(Anti-secession law)을 제정해 대만이 '금지선'을 넘어섰다고 판단할 경우, 무력 사용이 가능한 법적 기초를 만들어 놓았다.

다른 하나는 대만은 미국의 지원을 확신하고 있으나, 중국은 미국이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양측의 동상이몽은 양측의 행동 양태에도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미국의 지원을 확신하는 대만은 양안관계의 불안을 가져올 수 있는 주권 강화 노력을 할 수 있고, 미국이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중국은 대만의 행태를 분리독립을 위한 것으로 간주하고 무력 사용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오핸런은 중국이 대만에 대해 취할 수 있는 군사적 조치로 크게 세 가지의 시나리오를 상정한다.

첫째는 대규모 상륙작전을 비롯한 압도적인 무력을 통해 대만 점령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정찰 능력 및 대만의 군사력을 감안할 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둘째는 1995~1996년 때처럼 미사일 시위를 벌이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 대만을 겨냥해 중단거리 미사일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셋째는 대만 해협을 부분적으로 봉쇄하고 다른 국가들에게 대만과의 교역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만 점령보다는 질식 위협을 가해 대만을 굴복시킨다는 것이다.

오핸론은 둘째와 셋째 시나리오가 높다고 본다. 양안간의 충돌이 발생하면 미국의 개입 역시 불가피하다는 것이 이들의 진단이다. 민주주의의 수호와 확산을 대외정책의 핵심으로 삼아온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인 대만이 비민주국가인 중국의 무력 공격을 좌시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대만을 포기할 경우, 다른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안보공약 신뢰도에 치명상을 가져와 미국의 세계전략 전반에 엄청난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중 억제' 전략을 구사해왔다. 대만에게는 양안관계의 안정을 해칠 수 있는 정치적 행위를 자제할 것을, 중국에게는 미국의 대만 방어 공약을 간과하지 말 것을 경고해온 것이다.

이러한 이중 억제 전략은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이 전략이 중국과 대만의 행위를 억제하는 효과도 갖고 있지만, 해석상의 모호성을 동반하면서 오판과 오산의 근거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그린 "전략적 유연성은 양안사태 개입 위한 것"

▲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미 간 합의로 평택기지가 한반도 방위를 위한 기지가 아니라 미군의 '세계 전략기지'로 바뀔 수 있게 됐다. 사진은 지난 2005년 오후 경기도 평택역앞에서 지역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5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와 한반도 평화실현을 위한 2차 평화대행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어떠한 이유로든 미중간의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한국에게도 이는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바로 '옆집의 불'이 될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일 뿐만 아니라, 미국 군사력의 일부인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이 대중국 군사 작전에 나서는 것은 물론이고, 그 가능성의 존재만으로도 한국은 엄청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오랜 논란거리가 되어왔다. 2006년 1월 19일, 한미간의 첫 전략대화에서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국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전적으로 존중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은 한국이 원하지 않는 분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노무현 정부는 한국의 동의 없이 주한미군이 동북아 분쟁에 투입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해왔으나, 비판론자들은 정부가 사실상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해준 것이라고 반박해왔다.

이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한 목적이다. 노 정부는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이 핵심적인 동기라고 강조해왔으나, 미국 측 설명은 다르다. 이와 관련해 전략적 유연성 협의와 관련해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던 마이클 그린의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5년 초까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으로 근무했던 그린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대만과 관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26일 위에서 소개한 <전혀 다른 전쟁> 출판 기념 토론회에서 나온 발언이다. 내가 2005년 5월 초에 만난 미국 국방부의 고위 관계자들 역시 이와 거의 같은 설명을 한 바 있다.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합의 내용의 정확성과 더불어 중요한 문제는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간의 무력충돌이 발생했을 때, 실제로 미국이 주한미군을 투입시킬 것인가에 있다. 미국으로서는 한국이 영토·영해·영공의 이용을 허용한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한국으로서는 미국에 대중국 작전 기지를 제공하는 것이 국가의 존망이 걸릴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오핸런은 절충안으로 미국이 주한 미공군을 빼내 다른 지역으로 배치해 작전을 수행하는 것을 한국이 동의할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예를 들어 군산에 있는 미 공군이 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로 재배치되어 대중국 작전을 수행하는 경우이다.

이는 양국 사이의 '주권의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 필자가 만난 펜타곤 관리는 "주한미군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미국의 주권사항"이라고 말한 바 있고, 오핸런 역시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이 미국에게 기지를 제공하느냐의 여부는 한국의 주권 사항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양국의 조약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는 군사력의 발동 요건을 양국의 어느 일방이 제3국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로 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이나 미국이 중국의 공격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주한미군을 투입하는 것은 상호방위조약 위반에 해당한다.

정부의 '안보불감증'

▲ 지난 2005년 6월 1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이후 발표에 의하면 이 자리의 핵심 의제는 북핵문제와 한미동맹이었으나, 그뿐 아니라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우발계획' 및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었다.
ⓒ 연합뉴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가능성이 높고 낮음을 떠나 미중간의 무력 충돌 가능성은 '존재'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 이 가능성에 대비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대응과 해명은 안일하기 그지없었다. 주한미군 재배치가 미국의 해외주둔미군 재배치(GPR) 전략 및 이에 따른 전략적 유연성 확보를 위한 것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이와 무관하다며 이전비용까지 대부분 부담하면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했다.

그리고 전략적 유연성 합의 직후 미중간의 군사충돌에 주한미군이 개입할 위험성에 대해 "있지도 않을 일을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사안이 발생하면 그 때 가서 논의하면 된다고 말했다. 특히 청와대는 진보진영의 문제제기를 "패배주의"라고 일축하면서, "조항의 해석에 매달려 문제제기를 하기보다는 앞으로 우리의 교섭력과 협상력을 높이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진보진영을 향해 각을 세웠다.

이러한 정부의 행태는 안일함과 무책임함 그 자체이다. 우선 부시 행정부는 양안분쟁 개입 등 미국의 대중국 군사행동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해왔는데, 노무현 정부는 양안분쟁 등 미중간의 무력 충돌 가능성이 없다며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했다.

막연히 주변국의 위협을 부각시키면서 엄청난 규모로 전력증강을 해온 정부가 정작 동북아의 최대 불안 요소인 양안분쟁 및 미중간의 충돌 위험성에는 눈을 감아버린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노무현 정부가 무용론을 강조한 사전협의제이다. 정부는 사전협의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미일동맹의 예를 들면서 이 제도가 불필요하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한미간의 협상 과정을 돌이켜보면, 정부는 사전협의제를 추진했다가 미국의 반대에 막혀 이를 철회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사전협의제가 있는 미일동맹에서도 주일미군의 이동을 통제하기 힘든데, 이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주한미군의 이동을 통제할 수 있느냐에 있다. 정부는 사안이 발생하면 그 때 가서 협의하면 된다고 하지만,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미국이 이에 응할지도 불확실하고, 또한 한국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을지는 더욱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이는 대단히 무책임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중차대한 문제의 해결은 차기 정부의 몫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을 듯 하다. 차기 정부의 과제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미중관계를 '주어진 변수'로 볼 것이 아니라, 미중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국도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실제로 충돌이 발생했을 때, 한국이 그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 출발점은 미국과의 재협상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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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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