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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특히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길거리를 다니다 휘황찬란한 간판이나 네온사인에 미간을 찌푸려 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빽빽한 건물을 오색빛깔로 물들인 간판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여기저기 달려 있다. 이들은 때로는 시민들의 눈을 어지럽히고 가슴을 턱턱 막히게 한다. 게다가 그 간판에 쓰여진 글자에는 사람들에게 불쾌한 감정을 주는 내용이 적혀있기도 하고, 청소년들에게 교육상 좋지 않는 문구도 더러있다.

쉽게 말해, 한국 대도시는 간판 지옥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명예는 나라의 경제력이나 대외 신인도에 걸맞지 않는 모습이다. 그런 시민들의 마음이 이제야 전해 졌는지,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공공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에 공공 디자인 총괄본부가 신설되고, 모 신문에서는 공공 디자인에 관련한 글이 연재되고, 서울의 특정 구에서는 간판에 대한 규제를 하고 있는 것이 그 한 예다. 실효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뒤늦게나마 도시의 미관과 환경을 생각하는 움직임이 생긴 것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획기적인 일이 일어났다.

지난 달 23일 여러 매체에서 보도 된 바와 같이 경기도 과천시는 도시 환경 개선의 일환으로 지난 달부터 시 전 지역에 네온사인이나 여성을 상품화 하는 문구 그림 등을 표시하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

시내 모든 지역에서 이 같은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 있는 일이다. 이로 인해 복잡했던 건물외관이나 도시 환경이 더 깔끔하게 바뀔 것이라는 평가다.

간판 하나 바꿨을 뿐인데...

▲ 벽산빌딩 교체전(왼쪽)과 교체후
ⓒ 과천시청 건축과

이미 과천시는 지난 2005년 2월부터 2006년 5월까지 경기도의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 사업 추진계획에 따라 시 중앙로 일대 9개 건물에 입주해 있는 319개 업소 629개 간판을 대상으로 간판 교체작업을 실시했다.

현재 8개 건물에 300개 업소 590개 간판 교체작업이 진행된 상태다. 교체된 간판 수는 목표치의 94%에 달한다. 이 정도만 되도, 서울 도심 한 복판에서 보는 간판과는 질이 다르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과천 시민들은 의외로 눈높이가 더 높았다.

이오구씨는 "깔끔하니 예전보다는 훨씬 보기 좋죠, 근데 뭔가 좀 아쉽기는 해요"라고 말했다.

과천시 중앙동 벽산빌딩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아주머니는 "간판을 통일하니 장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기 집이 특별하게 보이지 않으니 아쉽기도 하다"면서 "그래도 보기에는 훨씬 좋다"고 말했다.

과천시와 경기도가 예산을 반반씩 총 7억6000여만원을 들인 이 사업에 대해 과천시의 자체 평가는 냉정했다. 기대했던 만큼 시의 미관 수준을 높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 과천시 중앙동 외환은행 앞 간판 모습.
ⓒ 김주헌
▲ 과천시 중앙동 벽산빌딩 앞 간판모습.
ⓒ 김주헌

그러나 과천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단순한 간판 교체 작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정책을 만든 것이다. 과천시는 옥외광고물을 규제하기 위해 지정구역을 시전체로 확대하고, 표시 제한의 범위를 강화하는 내용의 자체적인 수정안을 마련해 지난 15일 발표했다.

기존의 다른 지자체에서는 특정 거리나 좁은 지역에 한해 옥외광고물을 제한할 수 있었지만, 과천시의 사례처럼 시 전체가 그 대상이 된 적은 지자체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과천시 옥외 광고물 특정구역 지정 및 표시 제한 고시'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2005년 12월 이미 지정된 중앙로 변 0.5㎞를 포함한 과천시전지역 35.813㎢(도시지역 3.69㎢, GB지역 32.123㎢) 특정구역 지정 ▲네온사인 표시 설치 금지 ▲여성을 상품화하거나 청소년을 자극시키는 문구·사진·그림 표시 전면 금지 등이 포함돼 있다.

덧붙여 건물에 부착할 수 있는 광고물의 총수량을 2개 이하로 제한하고, 광고물의 바탕색도 건물 및 주변과 조화되도록 가급적 계통 색으로 사용을 유도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네온사인, 청소년 유해간판도 금지

변경된 법은 논란이 되어왔던 네온사인 및 여성 상품화를 조장하고 청소년에게 유해한 간판 설치 등을 금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위경관과 광고물의 어울림, 친환경 간판재료 사용 등 기존의 논의에서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과천시의 이번 조치와 관련된 외국의 사례로는 지난 4월 10층 이하 건물 옥상에 광고판 설치 금지, 네온사인 간판 전면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교토시 조망 경관 조례'를 제정한 일본 교토시의 사례가 있다.

16일 과천시청에서 만난 최병식 과천시청 건축과행정팀장도 "수정안을 기획하는 데 일본 교토시의 사례가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최 팀장은 "이제 간판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때"라며 "간판을 호객행위나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공공의 성격을 띤 것으로 여겨 시민의 몫으로 돌려 줄 때가 왔다”고 말했다.

과천시청은 앞으로 간판실명제 도입, 아름다운 간판제작 업소 시장표창, 표준모델 개발, 친환경소재사용 간판 일부지원 등의 향후 추진 사업들을 계획하고 있다.

'2006 지방자치단체 복지 종합평가' 종합 최우수상, 부동산 가격 급등 지역 등 수많은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과천시. 그 인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천시의 노력이 여러 도시에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미치기를 기대한다. 간판을 비롯한 수많은 광고물들은 도시의 얼굴과도 같다. 여러 지자체의 노력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관심이 어우러져 깨끗하고 단정한 도시를 만드는 노력이 탄력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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