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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12주년과 노동자 투쟁 20주년을 맞아 '일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로 기획된 독자를 위한 대중강좌가 서울 합정동 '약손엄마 강의실'에서 진행되고 있다(5월 8일부터 25일까지 매주 화·금 총 6회).

▲ 약손약국 강의실에서 열강을 하고 있는 홍세화씨
ⓒ 작은책
지난 15일 강의를 진행한 사람은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홍세화씨였다. 사적인 자리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지만 그의 강의를 정식으로 들은 것은 처음이다.

홍세화씨는 프랑스 교육과 한국 교육의 현실을 비교하면서 공교육이 어떻게 민중의 의식을 지배하고 통제하는지 민중들이 어떻게 자신의 존재에 반하는 의식으로부터 탈의식화를 시작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고 열띤 강의를 펼쳤다.

홍씨는 만 3세부터 대학까지 무상교육이 이루어지는 프랑스의 교육 제도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관료화되지 않고 서로를 건강하게 견제하면서 지적 자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연대를 이루어 가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1957년에 전면 무상교육이 이루어졌고 1968에는 대학의 평준화를 이루었다. 교육 열풍과 치맛바람에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대한민국에서 왜 대학의 평준화와 무상교육이 이루어 질 수 없는지에 대해 홍씨는 "대한민국이 공공의 가치와 공공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배세력은 교육의 통제를 통해 다수의 의식을 통제하고 지배 한다"고 역설한다. 다수의 민중은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공교육에서 교육받은 대로 체제에 복종하면서 체제에 동화되어 간다.

▲ 스스로 선택한 가난이라면 가난하지만 비굴하지는 않을 것이다.
ⓒ 이명옥
70년대 독재정권이 민중에게 던진 먹이는 '가난으로부터의 탈출'과 '교육을 통한 신분의 수직 상승을 통해 누구나 귀족이나 관료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이었다.

마을마다 '잘살아 보세'와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라는 새마을 건설을 위한 노동을 고무하는 노래가 울려 퍼졌으며, 악착같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한두 끼씩 먹으면서도 대학에 보내 자식만큼은 손에 물 안 묻히고 흙 안 밟고 살게 만들고자 애썼던 것이다. 그것이 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지배 세력의 이념과 체제를 합리화하며 민중을 통제하는 방식이었음을 그때는 깨닫지 못했었다.

강의 중반쯤 들어섰을 때 홍씨가 "지금 당신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고 있다, 아니 사실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히고 있다"고 이야기 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훌쩍이며 울고 있었다. 내 안에서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와 도저히 절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강의를 들으며 나는 몽둥이로 머리를 세차게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그랬다. 나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에서 스스로 자신을 속이며 살았다. 핑계는 있었다. '아이만은 나처럼 살면 안돼! 아이만은 가난과 무지,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는 변방인의 삶에서 벗어났으면'하는 헛된 희망, '내일은 오늘과는 다른 세상이 오겠지'하는 부질없는 바람으로 끝없이 오늘을 저당 잡히며 살았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체제에 순응하며 살도록 제도권에서 교육받은 내 자신의 존재에 반하는 반의식이 가져다 준 속임수에 다름이 아니었던 것이다.

홍세화씨는 조용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나와 같은 다수의 민중이 왜 자신의 처지와 다른 의식을 지니고 사는지를 명징하게 짚어 주었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 강의 중인 홍세화님
ⓒ 이명옥
그러면 어떻게 개인의 존재를 거스르는 반의식으로부터 탈출해야 할까? 홍씨는 "의식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아니라, 자기를 배반하는 의식으로부터 탈의식화 작업을 하라"고 제안했다.

미국의 지배자들이 무기와 자본, 그들의 나팔수로 전락한 절대 다수 글쟁이들이 글로 다수의 의식을 지배했지만, 의식 있는 소수가 글과 말로 줄기차게 저항을 했다고 한다. 그가 끊임없이 교육의 공공성을 부르짖는 것, <한겨레>, 민주노동당, 민주노총과 전교조에 민중의 목소리를 담은 <작은책> 같은 것에 귀를 기울이라고 주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진정한 탈의식화를 이루기 위해, 시대를 휘몰아가는 광신을 이겨내기 위해선 성실, 집요, 겸손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의식의 통제를 받는 나와 같은 절대 다수의 민중들에게는 끊임없이 자기를 배반하는 삶을 성찰하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연대하고 의식 있는 소수의 목소리와 책자에 귀를 세우라고 주문한다.

그는 우리에게 약속했다. "탈의식은 반드시 동기가 주어져야 시작된다. 그것이 책일 수도 있고 선배일 수도 있다. 당신이 진정으로 탈의식을 하고자 한다면 선배로서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이제 나는 거짓 희망이나, 불확실한 미래에 오늘의 소중한 내 삶을 저당 잡히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내 존재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반의식적인 삶임을 알기에... 다시는 나의 소중한 오늘을 저당 잡히지 않기 위해서 탈의식의 길이 멀고 험하겠지만 한걸음씩 또박 또박 그 길을 걸어가 보고자 한다.

어느새 한 주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의 나지막하지만 신념에 가득한 목소리가 내 귀에 울린다.

"아름다운 삶의 지향을 위해 성실하게! 집요하게! 그러나 지극히 겸손하게..."

태그:#홍세화, #작은책, #약손엄마 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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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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