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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호걸, 복부 및 하지 총상
ⓒ 노순택

1980년 10월 서울

한 장의 사진이 있다. 1980년 10월 27일에 찍은 이 사진은 제5공화국 헌법을 공포하는 국가적 행사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얼굴에 밝은 웃음을 띠고, 대중들을 향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는 한 남자다.

그리고 이 사진은 다음 날 조간신문을 시각적으로 장식하였다. 이쯤 되면 짐작하겠지만, 이 사진의 주인공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1979년 10월과 1980년 10월 사이 우리 현대사에서 일어났던 굵직하고 비극적인 사건의 중심에 서 있던 그는 그 사회정치적 중요성과 함께 시각적 재현의 중심 대상이 되었다.

바로 1년하고 하루 전날 청와대 소유의 궁정동 안전가옥에서 일어났던 살인사건의 의미는 사법적 성격을 넘어 시각적 재현 시스템의 작동방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살인사건과 국가적 행사 사이의 1년은 피를 말리는 권력 암투의 시간이었는데, 이것은 사진의 사회적 재현 대상을 재정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전의 중심적 재현대상은 자신의 장례식 사진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져 갔다. 공석이 된 이 자리를 헌법적 승계자가 차지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이것이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갑작스러운 살인사건으로 인해 시각적 재현의 핵심 대상은 아주 폭력적인 방법으로 빠르게 교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각적 재현 구성체의 완성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많은 것을 요구했다. 그것은 총과 탱크를 요구했고, 해직기자와 해직교사를 요구했고, 삼청교육대를 요구했고, 조작간첩을 요구했고, 국가적 망신을 요구했으며, 무고한 사람들의 많은 피를 요구했다.

이처럼 우리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정치권력과 마찬가지로 사진의 사회적 재현 구성체도 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를 먹고 자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사진적 재현의 중심 대상이 확정되던 날, 그것의 대상으로 간택된 저 사내는 밝고 당당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등장한 것이다. 마치 그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말이다.

이 날 이후 행정관서의 사무실에서, 정부 홍보물의 표지에서, 저녁 9시 텔레비전 땡전 뉴스에서, 세상의 이치를 배워가는 교실 안에서 그의 시선은 언제나 우리를 향해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그를 외면한다 할지라도 그의 시선은 언제나 우리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가 곧 우리의 일상적 시각 체계의 중심이 되었다.

사진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점령한 순간 그는 세상의 지배자로 완성된 것이다. 그로부터 7년 후 6월항쟁이 있기까지 우리는 그가 구축해 놓은 일상의 공식적인 시선체계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역사가 바로 저 밝게 웃는 사진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 류영선, 안면부 두부관통 총상
ⓒ 노순택

1980년 5월 광주

여기 또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밝게 웃고 있는 전두환의 사진과 같은 해에 찍은 이 사진도 사람을 찍은 인물사진이다. 하지만 사람의 얼굴만 클로즈업해서 찍은 이 사진에서 얼굴의 형태를 알아보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사진은 죽은 사람의 얼굴을 찍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이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온통 붉은 색뿐이다. 그렇다. 그 붉은 색은 사람의 피다. 사진에 찍혀 있는 사람의 얼굴에서 흘러내린 피가 그 붉은 색의 정체였다. 이제 눈치 챘겠지만 이 사진의 주인공은 5.18광주민중항쟁의 희생자다.

이 사진은 아마도 전두환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가리고 싶었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 사진은 제5공화국 헌법을 선포하는 행사장에서 찍은 전두환의 밝게 웃는 사진 바로 뒷면에 밀착되어 존재해 왔다. 사회적 시각 재현 구성체 내부에 존재하는 사진과 그 구성체가 배제해 버린 사진은 서로 다른 사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동전의 양면 마냥 서로 등을 대고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두 사진을 빛을 향해 비춰보면 서로의 모습이 투영되어 겹쳐 보인다. 그건 어느 쪽을 빛에 투과시켜 보나 마찬가지다.

특히나 역사 사진은 그 사진의 배경과 원인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전두환 사진이 사회적 공식 사진이 되어 행정망을 타고 우리의 일상적인 공간으로 침투되어 들어올 때, 5.18광주 희생자의 사진은 사람들의 손을 타고 우리들의 심장으로 삼투되어 들어 왔다.

밝고 환한 전국의 공공 공간의 벽면을 장식한 전두환의 사진과 함께 이 사진은 외부와 차단되고 빛도 별로 없던 개별적인 공간 속에서 소리 없이 전국으로 퍼져 나간 것이다. 뒷면이 서로 붙어 있는 사진의 한 쪽이 특정한 사회문화적 의미를 쟁취해 가면 다른 쪽도 같은 의미의 구성체 안으로 소리 없이 미끄러져 들어가기 때문이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사진이 앞면에 있는가 아니면 뒷면에 있는가의 사회정치적 위치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사진의 앞면과 뒷면은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두 가지 사진 모두 우리의 일상적 삶의 모습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공유한다.

▲ 최강식, 화염방사기로 인한 전신화상 후 골수암 투병
ⓒ 노순택

다시 5.18광주민중항쟁의 희생자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사진에서 그의 얼굴은 대검에 찔리고 M16 총알에 관통 당해 분해되어 버린 모습을 하고 있다. 그의 이마와 머리칼, 눈동자와 코, 입과 턱은 본래의 위치를 잃어버린 채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사진을 보는 사람은 첫 눈에 희생자의 시선과 마주하기 힘들다.

위치를 잃어버린 희생자의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봐야 하지만 끔찍한 핏빛 사진을 그리 보기란 여간해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은 다름 아니라 웃고 있는 전두환 사진의 힘이었다. 희생자 사진의 뒷면에서 투영되어 보이는 전두환의 미소가 우리를 희생자의 시선과 마주하게 하였다. 사진의 역설이 작동한 것이다.

희생자와 시선을 마주하게 되면 눈동자에선 불이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불이 일어난 눈동자는 왜곡된 우리의 현대사를 다시 보게 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철학에 주목하게 하고, 사회적 민주주의와 행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이렇듯 사람들을 인문학으로 무장시키고 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길로 나아가게 하였다.

87년 6월항쟁은 이 사진을 보고 눈에 불이 들어 온 사람들의 힘이 폭발하듯이 하나로 모여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 이후 전두환 사진의 사회적 의미는 급격히 하향 조정되었고, 그 자리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린 수많은 사람들로 채워졌다. 이런 점에서 사진은 민주주의와 함께 피를 먹으며 성장해 왔다.

▲ 행방불명
ⓒ 노순택

2007년 5월 한국

이제 노순택의 사진을 보자. 이 사진도 사람을 찍은 인물사진이다. 하지만 낡고 헤지고 빛이 발해 버려 흐릿한 형상의 흔적만 남아 버린 이 사진에서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 사진은 작렬하는 햇빛과 몰아치는 비바람을 견디며 묘지 앞을 지키는 영정사진이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5.18광주민중항쟁 희생자들의 가묘 앞에 놓여 있는 영정사진이다.

지금 5.18광주민중항쟁 희생자들의 묘지는 모두 새 망월동의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고, 옛 묘역에는 그 장소의 역사적 상징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의 가묘만 남겨 놓았는데, 노순택은 가묘 앞에 놓여 있는 영정사진을 다시 찍은 것이다. 그러니 저 사진은 사진을 재현한 사진이라 말할 수 있다.

새 망월동의 국립5.18민주묘지는 1980년 격동적인 역사 속에서 새롭게 재편된 사진의 사회적 재현 구성체가 완전히 붕괴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국가적 시설물이다. 이 국가적 시설물이 건립되면서 이제는 더 이상 밝게 웃는 전두환의 사진은 세상에 나타나지 않는다. 동시에 붉은 핏빛의 희생자 사진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사진의 한 쪽 면이 사라지면서 다른 쪽에 붙어있던 사진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새 망월동의 묘지 앞에는 희생자들이 젊었을 때 찍은 사진들이 놓여 있다.

국가에 의해 새로 지어진 묘지가 완공되어 그곳으로 이장되기 전까지 5.18광주민중항쟁 희생자들은 죽어도 죽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희생자들이 슬라보예 지젝이 지적하고 있는 두 번째 죽음, 즉 상징적 죽음에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완전한 죽음에 이르지 못한 희생자들은 붉은 색 사진의 모습으로 세상을 떠돌면서 사람들을 거리와 광장으로 나가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때까지 옛 망월동 묘역에 있던 희생자들의 묘지는 가묘가 아니라 첫 번째 죽음, 즉 육체적 죽음만을 담고 있는 실재적 무덤이었다.

▲ 박인배, 좌경부 총상
ⓒ 노순택

사실 거리와 광장에서 벌인 독재자와의 한판 싸움은 희생자들을 완전한 죽음에 이르게 하기 위한 전쟁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거리에서 최루탄과 깨진 보도블럭이 날아다녔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을 권자에서 끌어내리고, 그들의 옷을 수의로 갈아입히고, 부정하게 모은 돈을 환수하고, 그들의 역사를 폐기 처분 하기 위해,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희생되어 왔기 때문이다.

쿠데타 세력이 시민들을 향해 시작한 전쟁이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이어지다가 시민들의 승리로 끝이 난 것이다. 그래서 이 전쟁은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는 사진의 사회적 재현 구성체 안에서 웃고 있는 독재자의 사진과 피 범벅이 된 희생자 사진이 벌인 대리전쟁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 전쟁이 끝나는 날 새 망월동의 국립5.18민주묘지는 완성되었고, 비로소 희생자들도 완전한 죽음에 이를 수 있었다. 그래서 국립5.18민주묘지는 희생자들의 완전한 죽음을 증명하는 장소처럼 산뜻하고 깨끗한 모습을 띠고 있다. 이제 더 이상 5.18광주민중항쟁 희생자들은 끔찍한 모습으로 재현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망월동 묘역에 역사적 상징으로 남아 있는 가묘는 국립5.18민주묘지에 붙어 있는 얼룩처럼 존재한다. 왜냐하면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전쟁의 얼룩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29만원짜리 통장으로 해외여행과 골프를 즐기며 사는 늙은이가 전쟁이 남긴 사회적 얼룩이다. 사라져야 할 독재자의 얼룩이 남아 있으면 그 대립점에 위치한 역사적 상징도 얼룩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다.

옛 망월동 가묘의 영정사진이 얼룩 없는 역사적 상징이 되려면 세상에 남아 있는 찌꺼기 같은 얼룩은 깨끗이 지워져야 한다. 하지만 자꾸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건 가묘의 영정사진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조금씩 지워져 가고 있는데, 그 반대편의 그들은 아직도 건장해 보인다는 점이다.

사회적 얼룩이 지워지기 전에 영정사진의 형상이 먼저 사라진다면, 어쩌면 또 다른 독재자의 밝게 웃는 사진이 세상을 다시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 노순택의 사진을 볼 때 섬뜩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이다. 노순택의 사진은 아직도 이 땅에서 사진의 투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전.쟁.표.면.]展
2007년 5월 2일부터 31일까지 인사동 SPACE*PEACE

성남훈, 이상엽, 노순택, 이성은 등 사진가 4인이 전쟁의 표면을 담은 <전. 쟁. 표. 면> 展이 5월 2일부터 5월 31일까지 종로구 인사동 평화공간 SPACE*PEACE에서 열린다.

이번 <전. 쟁. 표. 면> 사진전에는 ▲성남훈 _ Made in Man, ▲이상엽 _ 고대 전쟁의 흔적, 생태 혹은 문명 사이에서, ▲이성은 _ 경산 코발트 폐광 대원골 유해 발굴 현장, 2005, ▲노순택 _ 망각 기계 등 4인의 사진가가 각각의 주제로 함께 결합하게 된다. 각기 상이한 방식으로 역사의 결에 스며있는 폭력의 상처를 드러내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사진만이 아니라 사진과 글이 짝을 이뤄 <표면> 속의 이야기들을 이해하고 상상하는 매개자 역할을 하게 된다. 성공회대 교수 한홍구와 사진비평가 박평종은 사진전 전체를 조망하는 글을 쓰고, ▲전성원(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성남훈 사진글, ▲문건영(변호사, 법무법인 한결)-이상엽 사진글, ▲노용석(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관, 문화인류학 박사)-이성은 사진글, ▲김태현(사진평론)-노순택 사진글 등이 함께 한다. / 평화박물관

덧붙이는 글 | [전.쟁.표.면.]展에서 작가 노순택은 광주 옛망월동에 남아 있는 5.18광주희생자 가묘의 영정사진을 다시 찍어 [망각기계]라는 제목으로 전시하고 있다. 이 글은 노순택의 사진과 함께 5.18광주민중항쟁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사진과 글을 직접 보려면 전시장을 방문하면 된다. (전시 문의 : 평화박물관 02_735_5811~2)


태그:#5.18, #광주, #민주화, #노순택,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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