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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프레드 레베, <음악전시회-전자텔레비전>, 1963, 흑백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독일의 작은 도시인 '부퍼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곳은 백남준을 소개하는 데 있어 부퍼탈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곳이다.

1963년 3월 11일, 부퍼탈의 갤러리 파르나스에서는 동양출신 무명 유학생 백남준의 '음악전시회 - 전자텔레비전' 전시회 개막식이 열렸다.

이날 갤러리 전관에는 TV 12대가 해체되어 있었다. 피아노 4대, 거울, 전축 등도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평소 백남준과 친분이 있던, 플럭서스(Fluxus) 운동의 기수 요제프 보이스가 도끼를 들고 들어와 피아노 한 대를 박살내며 전시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 사건은 당시 언론의 혹평을 받게 되었지만 백남준이 독일 예술계에서 그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훗날 비디오아트의 출발을 알린 전시로 미술사에 기록되게 된다.

그리고 34년 뒤인 지금 백남준의 1주기를 맞은 한국에서는 당시의 작품이 다시 전시된다. 지난 3월 23일부터 오는 5월 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추모전 '부퍼탈의 추억' 전시회가 그것.

34년 전, 그의 쇼가 시작됐다

상식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이 소동을 당시 관객들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새로운 예술 계보의 출범을 감지한 사람이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고 백남준이 당시 전시했던 혁신적인 작품들은 대부분 사라진 상태.

그러나 미술애호가 만프레드 레베는 당시 전시 순간 또한 놓치지 않고 기록물로 남겨 놓았다. 그는 1950년대 중반부터, 플럭서스 운동과 그 주변의 행위예술·해프닝·퍼포먼스 등을 관객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사진으로 찍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레베가 찍은 부퍼탈 전시회 사진 36장과 70여점의 백남준 관련 사진, 백남준을 후원한 또 다른 애호가 로젠크란츠 부부의 컬렉션과 함께 피아노와 텔레비전('쿠바 TV') 등 거장의 초기 활동들을 알 수 있는 몇 안되는 귀중한 기록물들이 공개된다.

[작품① '다다익선'] 작가도 재료도 죽었지만 작품은 다시 산다

▲ 지난해 2월 고 백남준씨 분향소가 마련된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1층 중앙홀 고인의 작품인 '다다익선'앞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피하려고 노력한다 해도 눈에 띄는 조형물이 있다. 바로 백남준의 '다다익선'이란 상설 전시작품인데, 총 1003개의 TV로 구성된 탑 모양의 거대 비디오아트다. 지난 1988년도의 서울올림픽 때 세계인에게 보여줄 예술작품을 목표로 백남준에게 의뢰해 만들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질문. 텔레비전의 수명은 보통 15년 전후인데 이 작품은 왜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2003년도에 삼성전자의 지원으로 텔레비전을 교체했기 때문이다. 다시 질문, 재료가 바뀌고도 이 작품은 '다다익선' 진품이 맞을까?

실제로 '다다익선'을 비롯한 백남준의 작품은 상당수가 전기·전자와 관련된 작품들이다. 이런 제품들은 다른 예술재료에 비해 수명이 짧다. 이 때문에 작품의 수명이 단기간에 끝나버리게 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점에 대해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많은 고민을 하다가 직접 백남준을 찾아가 교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소프트웨어는 놔둔 채 TV를 교체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뜻은 그대로 남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화하는 작품. 의미는 그대로이되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작품이다. 백남준의 작품은 그렇게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이다. (근데 2010년이 넘어가면 LCD TV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참고로 '다다익선'과 재미있는 사실 몇 가지 더!

① 일부 사람들(특히 초등학생들)이 장난으로 TV를 꺼 놓아서 중간중간에 꺼진 것도 있다. ② 이 작품을 유지하기 위한 한 달 전기료는 무려 1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한단다. ③ 이 많은 TV를 유지하고자 탑 중앙에는 냉각기가 3개가 있어 TV에서 나오는 열을 식혀주기도 한단다.

[작품② 24시간] 샤롯 무어만과 2인조, 온갖 해프닝으로 퍼포먼스

전세계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만한 사건으로 '24시간(24 Stunden)' 퍼포먼스가 있다.

이 퍼포먼스 홍보 포스터에서 제일 위에 나오는 이름 조셉 보이스(Joseph Beuys)는 중절모를 쓰고 죽은 토끼를 들고 나와 그림을 가르치겠다는 하는 퍼포먼스로 유명하다. 치즈 위에서 취침을 취하는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샤롯 무어만(Charlotte Moorman)과 백남준은 2인조로 갖가지 해프닝을 벌였는데, 특히 무어맨은 혼자서 반나체로 첼로를 연주하기도 하고 텔레비전으로 만든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퍼포먼스를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 외에 바젠 브록(Bazon Brock)은 1시간에 1줄의 시를 쓰는 퍼포먼스를 펼쳤으며, 토마스 슈미트(Tomas Schmit)는 물 떨어지는 소리로 볼프 포스텔은 쇠고기에 칼을 찔렀다 빼는 퍼포먼스로 공연을 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이 행위예술들은 가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자부심이 강했던 백남준은 '부퍼탈-카드 7번' 등으로 부퍼탈이 자신을 통해 유명해졌다고 강조하는 작품도 많이 만들었다.

[왼쪽] 백남준, <24시간>, 1965/1987, 포스터와 스케치 콜라주, 종이에 분필, 55.5×70.5. [오른쪽] 백남준, <부퍼탈-카드(7번)>, 1987, 크레용, 판화에 노란색과 빨간색 잉크, 24.5×33.5
ⓒ 로젠크란츠부부 소장
그는 시대를 앞서간 삼류 예술가

자신을 항상 삼류예술가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시대를 앞서 살았던 백남준.

미술의 새로운 형태를 창시한 그가 작품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들이 워낙 독특했던지라 일부 사람들은 '편집증 심한 살짝 정신이 이상한 할아버지'라는 인식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진 속에서 보이는 젊은 시절의 백남준은 마치 이웃집 형마냥 평범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의 외모를 지녔으며 세련되지 못하고 어딘가 촌스러워보이지만 착하고 순박한 한 청년이었다.

백남준은 '태창방직'을 운영하는 사업가였던 부친으로 인해 매우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60년대에 유학을 갔을 정도면 쉽게 이해가리라 본다.) 하지만 부친의 사망과 5·16 등 혼란스러운 정세로 인해 독일에 유학간 뒤 송금은 끊겼다. 마지막 송금된 돈으로 산 것이 TV 12대이다.

다들 요즘 모 이동통신사의 '쇼를 하라~'하고 나오는 광고에 익숙할 것이다. 그 광고처럼 '쇼하고 있네~'하는 비웃음, 당시 백남준이 가장 많이 들었을 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계속 쇼를 했고 결국 TV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는 비디오아트의 창시자가 됐다.

▲ 만프레드 레베, <음악전시회-전자텔레비전>,1963, 흑백사진, 24×30
ⓒ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백남준과 관련해 또 하나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바로 작년 그의 장례식. 조문객들은 가위로 서로의 넥타이를 잘라 고인의 시신 위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그의 작품 '다다익선' 앞에서 49재와 같은 기념식을 했는데 그 때 진행자가 구경하는 사람들의 넥타이를 뺏어 자른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당황하고 난감해 했으며, 이는 비디오로 고스란히 담겨 미술관에서 상영중이다.

"넥타이는 맬 뿐만 아니라 자를 수도 있으며, 피아노는 연주뿐만 아니라 두들겨 부술 수도 있다."

백남준이 한 말이다.

그의 작품도 파격적이지만 인간 자체도 파격적이었던 백남준. 그가 사후에도 세상에 쇼를 펼쳐보일 수 있을지, 얼마나 더 유명해질지는 세월을 두고 더 지켜볼 일이다.

시대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하고 죽어서도 대중들과 같이 소통하며 즐거움을 주는 그는 언제까지나 대한민국을 너머 세계 예술의 상석에 남아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메시지를 던질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백남준을 만나러 가자

국립현대미술관을 올 때면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다. (더군다나 자가용으로만이 아니라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도 올 수 있다는 사실에!)

과천선(서울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에서 내린 후 4번 출구로 나오면 국립현대미술관 셔틀버스를 탈 수 있다. 개관시간에 맞춰 20분(토·일요일 야간개장시 30분)에 한 대 꼴로 다니는 이 셔틀버스는 미술관으로 갈 때는 무료이지만 미술관에서 대공원역 방향으로 탈 때는 국립현대미술관 입장권이 필요하다.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일 때 좋은 전시회가 있으면 책 두세 권과 노트 두세 권 정도 들고 와서 전시를 온몸으로 느낀 후 라운지나 미술관 앞의 벤치와 정원으로 가보자.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관람은 물론 책을 읽고 산책을 하는 등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여유를 즐기기 참 좋은 공간이다.

너무나도 예쁘게 색칠된 하늘을 쳐다보며 한국의 성곽과 봉화대의 전통양식을 투영한 디자인의 아름다운 건물을 뒤로 하며 서둘러 떠나는 관람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미술관에서는 매일 오후 1시·3시에 한국어 전시설명을, 오후 2시에 영어 전시설명을 하고 있으며 토요일과 일요일은 위의 시각대에 더해 오후 6시 30분과 저녁 7시 30분에 한국어 전시설명을 하고 있다. 교대로 전시설명을 진행하는데 언제 가도 좋은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이는 비단 고미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미술에도 적용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겠는게 많아지고, 그래서 더 많이 알고 싶어지는 것이 예술을 보는 재미인 것 같다.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다면 되도록 전시설명 시간을 맞춰 찾아가 보자! 진정으로 전시를 깊이 이해하며 아티스트에게 경의를 표하는 좋은 관람습관이 아닐까 싶다.

▲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 1주기 추모전.
ⓒ 이준혁
ⓒ 이준혁

덧붙이는 글 | * 본 전시관람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국립현대미술관 홍보마케팅팀의 박세은님께 감사드립니다

*  이 기사는 20대를 위한 지식정보 포털사이트 영삼성닷컴(www.youngsamsung.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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