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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 순찰대에 돌을 던지고 있는 이라크 어린이들.
ⓒ AP=연합뉴스
4월 21일 AP통신은 미군이 이라크 바그다드의 아하미야 지역에 콘크리트 담장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4월 10일에 시작돼 곧 끝날 예정인 이 담장은 길이가 5km에 이르며 가장 높은 곳의 높이는 3.5m에 이른다고 한다.

수니파 주민들이 사는 곳인 이 지역은 시아파 주민 거주지역으로 둘러싸여 있고 이 근처에서 그동안 수많은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미군 당국은 이는 수니파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수니파와 시아파 주민들의 접촉을 차단함으로 원천적으로 폭탄테러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수니파 주민들은 이는 자신들을 감옥에 가두는 것과도 같으며 수니파 무장세력의 테러공격을 빌미로 자신들을 벌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동안 미군이 테러 공격이 잦은 시장이나 부대 주변에 콘크리트 담장을 설치한 적은 있지만 아하미야 담장은 그 길이로 보나 목적으로 보나 이전의 것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발상이다.

미궁 속으로 빠져버린 이라크 상황

이라크 상황은 이제 그 정의조차 모호해졌다. 흔히들 이라크 전쟁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라크 침략 전쟁은 부시 대통령이 종전을 선언한 2003년 5월 1일에 공식적으로 끝났다. 그 후의 과정은 이라크 재건인데 예측하지 못했던 미군에 대한 치열한 공격과 종족 사이의 충돌이 격화되면서 미궁 속으로 빠져버렸다. 이제 이라크는 내전 상황에 처해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내전이란 용어를 부인하고 있지만 이미 이 용어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서도 미국의 이라크 재건 계획은 계속돼 왔다. 미국에게 있어 이라크 재건은 독재자 후세인을 제거하고 이라크에 자유민주주의를 수립한다는 이라크 침략의 명분을 현실화시키는 것이므로 중요하다.

이에 따라 2005년 1월에는 이라크 재건의 상징적 정점인 민주선거가 치러졌고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때만 해도 대부분의 이라크 국민들은 비록 미국의 부당한 침략이 가져온 것이지만 이라크의 정치적 변화를 환영했다.

그러나 그 후 세워진 종족연정은 투표에서 명백히 드러난 인종 사이의 반목을 누그러뜨릴 대책을 세우거나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국민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일을 외면하고 있다. 이는 이라크 정부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정부와 통치체계를 세우고 이라크에서 발을 빼기를 원하는 미국의 요구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미국 시계에 맞춰 움직이는 '이라크 정부'

▲ 지난 1월 21일 아랍에미레이트의 구호단체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기위해 아부다비에 도착한 이라크 어린이. 그는 다른 이라크 어린이 50여명과 함께 이날 아부다비에 도착했다.
ⓒ AFP=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최근 이라크 재건을 위한 정치 과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건들이 일어났다. 지난 4월 12일 이라크 의사당 내에서는 자살폭탄 테러가 일어나 8명이 숨졌다. 그 중 3명은 국회의원이었다. 테러 용의자는 한 수니파 의원의 경호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살 테러로 인해 숨진 3명의 의원 중 2명은 수니파 의원이었으므로 이 사건은 인종 대립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하기에 무리가 있다.

한편 4월 16일에는 반미 시아파 성직자인 목타다 알-사드르를 따르는 6명의 장관이 누리 알-말리키 총리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사표를 제출했다. 이들의 집단행동은 정확한 미군 철수 시한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알-말리키 총리에게 압력을 넣기 위한 것이었다. 의회 내에서 32석을 차지하고 있는 알-사드르 추종 세력은 알-말리키를 총리로 지명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첫 번째 사건에 대한 대체적인 보도는 바그다드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 중 하나인 의사당이 공격을 받았다는 것에 집중됐다. 물론 민주주의 상징인 의사당이 공격을 받았다는 것에도 초점이 맞춰졌다. 이런 맥락에서 부시 대통령도 '민주주의의 상징'에 대한 공격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두 번째 사건에 대한 초점은 알-사드르 세력의 저항이 향후 이라크 정치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맞춰졌다. 일부 보도는 알-사드르 추종 세력의 집단 내각 사퇴가 오히려 알-말리키 총리에게는 전문관료를 기용할 수 있게 하고 인종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위의 두 사건은 보다 큰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현재 이라크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거의 70~80%에 이르고, 폭탄테러와 수많은 인명 손실은 일상이 됐고, 이라크 재건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지식인들과 중산층은 이라크를 떠나고 있다.

미국의 침략전쟁이 후세인 독재 정권의 몰락을 가져오고 민주정부 수립을 낳긴 했지만 이런 일련의 변화는 이라크 국민들을 극한 곤경으로 몰아넣었을 뿐이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이라크 시계가 아닌 미국의 시계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이에 대한 폭력적 대응은 국민들의 요구는 무시하고 미국의 구미와 계획에 맞춰 진행되는 이라크 재건과 정부의 대응에 대한 불신의 표시인 것이다.

담장으로 종족간 평화로운 공존 강제하는 미국

미국은 아직도 '이라크 안정화 작전'을 실행하고 있다. 이 작전의 궁극적 목적은 이라크에서 폭력상황을 종식시키고 이라크 정부에 권력을 완전 이양시키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은 이라크 재건을 주도할 수 있는 정부 기능 강화, 불안한 치안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군대 또는 경찰 건설, 폭력과 범죄를 다스릴 수 있는 법치주의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은 이런 갑작스런 정치적 변화가 이라크의 현실에 맞는지, 이라크 국민들이 이를 수용할 준비는 되어 있는지, 이런 허울뿐인 민주주의가 이라크 국민들이 현재 직면한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지 등에는 관심이 없다. 자신들이 촉발시킨 인종간 폭력 대립의 근본적 해결책 모색에도 무관심하다.

수니파와 시아파를 강제로 분리시키기 위한 아하미야 담장 건설은 미국의 안정화 작전이 실패하고 있음을 단정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미국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세우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담장을 설치하면서까지 이라크 국민들에게 종족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을 강제하고 있다. 그래야 자신들의 계획대로 이라크 재건이 진행되고 미군을 이라크에서 철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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