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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부터 시작해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막내아들 '재수'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김흥수가 드라마시티로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돌아온다는 기사를 보았다.

난 드라마작가를 꿈꾸면서도 지상파 3사 중 유일하게 남은 단막극인 드라마시티를 늘상 이러저러한 이유로 못 보곤 했었다. 지난 21일 밤에도 역시나 까먹고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채널을 딱 돌리니까 제목이 사라지면서 막 드라마가 시작했다.

드라마시티 <틈>에서 김흥수는 백수 발명가 '구영구'로 나온다. 어느 날 시장에서 일수를 찍으며 늘 돈, 돈 하던 그의 엄마가 사라진다. 하지만 이 못된 아들 영구는 보름이 지나도록 찾지도 않는다. 못돼서가 아니라 게을러서다.

그런 영구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다름 아닌 영구의 엄마를 유괴한 철수라는 인물. 철수는 영구에게 휴대전화를 선물하며 벨이 울릴 때마다 전화를 꼭 받으라고 한다. 이때부터 철수와 영구의 게임이 시작된다.

타인에 대한 무심함이 가져온 비극

▲ 드라마시티 <틈>
ⓒ kbs
철수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6년 전에 유괴했다가 버린 '예슬'이라는 아이를 찾아달라는 것. 잘 사는 집 아이인 줄 알고 유괴했는데 별 볼일 없는 집이란 것을 알고 버렸던 그 애를 이제야 다시 찾는 이유는 그 아이의 아버지가 로또에 당첨됐기 때문이라는 것.

처음엔 무슨 이런 미친놈이 있나, 하던 영구였지만 천식을 앓고 있는 엄마의 건강 아니, 그보다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누나의 안전 아니, 그보다 일이 잘 되면 엄마의 통장의 돈 10억을 20억으로 불려준다는 말에 혹해 게임을 시작하기로 한다.

철수가 예슬이를 버렸다는 군산 고아원에 찾아간 영구는 말을 못하던 예슬이가 두 번이나 파양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강아지는 6년째 키우면서 입양한 예슬이는 6개월만에 파양한 두 번째 집 앞에 영구는 계란을 던진다. 역 근처를 배회하던 영구는 예슬이가 3년 전,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나가 중환자실에 있단 소식을 듣고 서울로 온 영구에게 철수의 전화가 온다. 너 때문에 그 불쌍한 애가 죽었다고 울부짖는 영구에게 철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를 해준다. 사랑했던 두 사람은 결혼했고 아이도 낳았다. 그 부부에게 시련이 찾아온 건 6년 전 어느 날, 딸아이가 유괴되어 사라지고부터다. 백방으로 간절하게 찾아 다녀도 아무도 아이를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게으른 발명가는 자신의 발명품에 애를 납치한 승용차 번호까지 적어 놓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제야 영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 한 토막. 그랬다. 영구는 애를 납치한 승용차 번호를 적어 놓고, 경찰서에 전화까지 해놓고, 자신의 급한 일 때문에 나중에 전화한다고 하고는 끊어버렸다. 그리고 곧 잊어버렸다. 애타는 부모의 심정은 전혀 헤아리지도 못한 채, 무심한 채 말이다.

여자의 뱃속엔 예슬이의 동생이 들어 있었지만 태어나지도 못한 채 여자와 함께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남자는 가족을 한꺼번에 잃어야 했던 슬픔을 겪어야 했다. 영구가 게으르지 않았다면, 무심하지 않았다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슬픔.

그리하여 철수는, 예슬이 아빠 철수는, 영구에게 한 번 겪어보라고 이런 복수를 계획한 것이다. 복수는 언제나 그렇듯 통쾌하다기보다 마음을 더 무겁게 하는 것 같다. 복수를 하는 사람이 결코 통쾌함을 느낄 수 없으리라는 걸 알기에.

남에게 조금만 더 신경 써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세상에 무심하다. 나 외에는 모두가 타인이고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그것이 당연하게 느껴지고 친절한 호의조차 불순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가 '영구'다. 착하지만, 조금 게을러 남들의 일에 무관심한 '영구'다. 그리하여 우리는 또한 '영구'다. 그 무심함 때문에 절망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게 되는 '영구'다.

물론 남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나 자신을 위해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이 세상을 발전시키는 길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아픔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떨까. 나와 상관없다고, 귀찮다고 외면하지 말고 조금만 더 신경을 써 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그 사람에겐 절망을 막을 수 있는 큰 도움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김흥수(영구 역)와 장현성(철수 역)의 멋진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70분은 아깝지 않았다. 탄탄한 스토리와 반전, 그리고 무심한 현 세태에 대해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좋은 드라마, 앞으로도 다양한 실험과 다양한 주제로 시청자에게 사랑 받는 드라마시티가 되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김가영 기자는 티뷰 기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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