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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 소재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에서 16일 32명이 숨지는 사상 최악의 교내 총격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전쟁 기념관앞에서 학생들이 모여 사망한 학생들을 추모 하고 있다.
ⓒ AP 연합뉴스
16·17일, 미국 사회는 버지니아텍(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으로 온통 '블랙아웃' 되었다. 충격과 경악, 침울한 분위기가 드넓은 미국 천지를 뒤덮는 듯했다.

관공서도 상점도 겉으론 별일이 없다는 듯 느슨하고 평온해 보였지만, 속은 온통 부글부글 끓고 있는 듯했다. 미국인들과 직접 얘기 나눌 시간이 주어지는 곳에선 어김없이 총기난사사건 얘기가 튀어 나왔다.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새 소식이 없는지 물었다.

한인사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한인들은 대형 사고만 터졌다 하만 '혹시나 코리안이…'하고 귀를 쫑긋 세우는 버릇이 생겼다. 어지간한 도시라면 한인들이 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한인들이 곳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90년대 LA폭동 때 생긴 버릇인 듯하다.

총격사건이 벌어진 16일, 처음 범인이 아시아계인 것 같다는 소식에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던 한인들은 시간이 지나며 중국계 같다는 소식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경찰은 범인이 누구인지, 범행원인이 무엇인지, 사망자가 누구인지 조차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불안한 하룻밤을 지낸 17일 오전, 한인사회도 결국 '블랙아웃' 되고 말았다. 그냥 '충격'이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낙심'이라고 표현해야 옳을지 모른다. 만나는 한인들이 보여준 당황스러움과 한숨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결국 '블랙아웃' 되고 만 한인사회

특히 자녀를 둔 한인들은 총질을 한 조승희라는 한국학생이 버지니아 패어팩스의 조아무개씨 부부의 아들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의 아들과도 같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 듯했다. 조씨처럼 본국에서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물 건너 온 이민자들, 보이지 않는 인종적 편견이 남아있는 미국땅에서 2세만은 괄시받지 않게 하겠다며 험한 일을 마다 않고 뒷바라지를 해 온 이민자들에게 이번 사건은 일대 충격이요, 낙심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흔히 보통 부모들은 어떤 사건에 자신들의 자녀가 관련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우리 애가 그럴 리가 없다'고 하는데, 아마도 조승희 학생의 부모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분명 총격을 당한 미국학생이 말한 것처럼 조승희 학생은 정말 평범해 보였고 일견 순박해 보이는 '우리 애'였다. 그런데 '우리 애'가 2시간 간격으로 그 같은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렇다면 조승희 학생이 그 같은 대 학살극을 저지른 연유는 무엇일까.

보도된 대로라면 조승희 학생은 늘 외톨박이로 지냈다. 함께 살던 룸메이트는 조승희 학생과 인사말 외에는 거의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는 기숙사 식당에서도 혼자 밥을 먹곤 했다고 한다. 첫 수업에서 흔히 하는 자기소개를 거절할 만큼 스스로 폐쇄된 생활을 해 왔다고 전해진다. 한인학생들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친구가 없어 학교측이 조승희 학생의 대학생활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데 애를 먹었을 정도라고 한다.

조승희 학생을 가르쳤던 교수들 가운데 '창의적 작문' 과목을 가르친 교수는 조승희 학생이 '문제(troubled)' 학생이었다고 말했으나, 학교 규정을 이유로 그 '문제'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교수는 조승희 학생에게 상담 치료를 받도록 권유했으며, 조승희 학생이 우울증 관련 약을 복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언론은 경찰이 조승희 학생의 방에서 캠퍼스의 "부자집 아이들(rich kids)", "방탕(debauchery)", "기만적인 허풍쟁이들(deceitful charlatans)" 등 다른 학생들을 질시하는 심리와 부정적인 내용이 적혀 있는 메모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여기까지의 언론보도 내용을 정리하면, 조승희 학생이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패쇄적이고 반 사회적 성향을 가진 학생이라는 그림이 그려진다. 만약 이 분석대로라면 조승희 학생은 소위 말하는 '대량 살인'의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던 사람이다.

범죄 심리학자들은 대량 살인 범죄자들은 폐쇄적 성향이 강하고,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반사회적 경향이 있으며, 어느 순간 이를 대량살인이라는 수단으로 폭발시킨다고 주장한다.

상당수 교민자녀, 우울증세 겪어

▲ 부시 미국 대통령 부인 로라 부시가 17일(현지시각) 버지니아텍 총기난사사건 희생자들을 위해 추모 헌화를 하고 있다. 뒤쪽에 부시 대통령과 팀 케인 버지니아 주지사 부부가 서있다.
ⓒ AP·연합뉴스
그런데 미국에서 대학원생으로 상당기간 유학 경험을 한 나는 이 같은 반사회적이고 폐쇄적 성향이 조승희 학생에게만 있는 것인지, 또 이 같은 성향이 어디로부터 연유된 것인지에 대해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만난 교민 자녀들 가운데 이 같은 증상 때문에 고통을 호소해 오는 이들이 상당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증상은 한인 이민사회가 만들어낸 '강박관념' 때문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한인 이민자들의 경우 그 어느 종족보다도 자녀들에 대한 열망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자타가 인정한다. 이로 인해 생기는 강박관념이 이민 1.5세대나 2세들을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의 교육학 교과서에도 한국 부모들의 유난한 교육열과 이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 내지는 반작용의 사례들이 에피소드식으로 소개되곤 한다. 가령 과거 못 먹고 못 배워 서러움을 겪은 이민자들 뿐 아니라, 최근에 여유를 갖고 물 건너온 이민자들까지도 한결 같이 자녀만은 '의사', '교수', '법관' 등 전문직 종사자가 되라며 다그친다는 것이다.

나에게 고통을 호소해 온 교민 대학생들 가운데 "적성도 맞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데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하고는 있으나 미칠 것 같다"며 부모님을 설득시켜 달라는 학생도 있었고, 부모 몰래 다른 전공으로 바꾸었는데 들킬까봐 애를 태우고 있다는 학생도 있었다. 어떤 학생은 의학 공부가 하기 싫어 몰래 전공을 바꾸었다가 들키는 바람에 아예 집을 뛰쳐나오기도 했다.

뉴욕이나 LA 등 한인들이 대거 몰려 사는 대도시에 한인 학생들을 위한 학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연유도 바로 이 같은 '교육열' 때문이다. 상당수의 학원들이 '아이비리그' 대학 입학허가서 받는 노하우를 선전하며 학생들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그 '성과'를 자랑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노하우'를 익혀서 아이비리그 대학이나 그에 준하는 유명 대학에 입학한 많은 한인학생들이 토론과 창의력을 내세우는 과목들을 만나게 되면 하나같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결국 학생들이 졸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학교를 옮기는 경우가 많고, 겨우 겨우 졸업한다 하더라도 막상 원하는 직장에 취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한인 학생들 가운데서도 인간관계와 창의력이 중시되는 미국 회사의 직장에 들어가서 그다지 빛을 보지 못하고 불과 몇 년 만에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이비리그 다닌 누구 누구의 자녀가 약간 이상해져 집에 돌아와 있다더라'는 얘기가 들려온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상당수 교민자녀 학생들이 본인의 희망이나 계획과는 다른 전공을 택해 공부하거나, 한국식으로 공부하여 대학에 들어간 경우 '적응'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이로 인해 어떤 형태로든 우울증세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자세한 조사결과는 나오지 않았으나 조승희 학생의 경우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된다는 주변의 분위기에 밀려 입학은 했으나 미국 대학의 분위기에 '적응'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승희, 대화 상대 없는 천상천하 '외톨이'

또 하나, 이민자 자녀들이 어려움을 겪는 데는 부모와의 대화의 단절도 한 몫 한다. 미국땅에 발을 디딘 후 최소한 10여년 정도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해야 안정된 기반을 닦을 수 있는 이민자들의 경우, 자녀와 대화할 시간이 태부족하다. 설령 시간적 여유가 있다하더라도 부모들이 영어에 능숙한 아이들과 속 시원하게 터놓고 이야기 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화된 자녀들은 '변함없는' 부모들과 속 깊은 대화를 더욱 꺼리게 되고, 이 과정에서 부모와 자녀는 더욱 큰 '괴리'를 경험하게 된다. 결국 아직 미성숙한 자녀가 큰 문제가 생겼을 때 부모는 상담 대상에서 우선적으로 제외된다. 이런 경우 기댈 대상으로 미국 친구나 어떤 '멘토'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천상 천하에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

조승희 학생의 경우 여자문제든 학업문제든 '문제'를 놓고 대화할 상대가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 이번과 같은 불행을 불러온 요인이라고 봐도 크게 무리 없을 것이다. 미국의 교육 시스템은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반드시 상담실이 구비되어 있는데 조승희 학생의 경우 가장 어려운 시기에 이 같은 혜택을 받을 기회를 놓친 것으로 보인다. 영문과 교수가 지난해 조승희 학생에게 상담을 받도록 권유한 이후, 실제 상담이 이루어졌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현재 이민사회는 한국인 조승희 학생이 저지른 일로 인해 엄청난 충격과 낙심에 빠져 있다. 근무하던 회사에 결근한 한인도 있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가게 문을 일찍 닫고 귀가한 한인도 있다. 어떤 한인 교수도 주변의 미국인 교수들의 눈총이 부담스러워 일찍 연구실을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민역사 100년을 넘겨 성숙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자칭하는 한인사회는 이번 사건에 대해 변명하고 회피하기 보다는 일대 반성을 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미국사회가 설령 조승희 학생이 가한 총격을 잘못된 사회 시스템에서 태생된 '개인적'인 사건으로 여긴다 하더라도, 한인사회는 암암리에 이를 '우리'가 벌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조승희는 미국사회뿐 아니라 한인사회가 만들어 낸 '우리 애'이기 때문이다.

태그:#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조승희, #이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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