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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21일 구로디지털단지의 벤처기업협회를 방문해 벤처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이 이중전선을 형성했다. '보따리장수' 견제 투쟁과 '거짓말 정치' 비판 투쟁이다. 전자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 후자는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겨냥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탈당을 민주주의 원칙을 파괴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한미FTA 협상을 타결하려면 "나를 밟고 가라"고 한 김근태 전 의장을 향해 "정직하지 않다"고 했다.

벅차 보인다.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손학규 전 지사는 그 어떤 대선주자보다 한미FTA에 대해 전향적이다. 가급적 빨리 체결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런 그를 노무현 대통령이 비판했다.

김근태 전 의장은 그나마 정치 원칙을 지키려는 사람이다. 동료 의원들의 탈당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에 남아있다. 그런 그를 노무현 대통령이 공격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피아를 가리지 않고 사사건건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전략적으로 힘을 집중해도 버거울 판에 왜 온갖 문제에 대해 각을 세우나"라는 의구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

청와대도 아는 모양이다. 이런 의구심이 들지 모른다고 스스로 제기한 다음에 스스로 답을 내놨다. 그게 전략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어제 "참여정부의 유일한 전략은 원칙"이라고 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원칙대로 가는 게 참여정부의 전략이라고 했다.

탐구대상이 잡혔다. 청와대가 설정한 원칙이다. 그게 뭘까?

청와대가 강조한 건 "선거용"이다. 참여정부가 지켜온 원칙과 정책을 "선거용으로" 흔들거나 왜곡하는 행태에 대해 할 말을 분명히 하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손학규 전 지사와 김근태 전 의장 모두 선거논리에 매몰돼 원칙 없고, 정직하지 않은 행태를 보이고 있는 사람들이 된다.

사방팔방 날 세우기, 청와대 원칙 뭐기에

난해하다. 팔베개 하고 누워 관전하기에는 사안이 너무 복잡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야 단순하게 치부할 수 있다. 이미 당적을 정리한 대통령이다. 여야, 피아 구분없이 할 말을 다할 수 있다. 국정을 원만히 마무리하려는 의지의 발로로 해석할 수 있다. 그냥 '원칙적인' 얘기로 넘길 수도 있다.

물론 반론이 있다. 이미 당적을 정리한 대통령이 손학규 전 지사의 탈당, 즉 정치행위에 대해 시시콜콜 평할 이유가 뭐냐는 반론이다.

이에 대해서도 청와대가 대답을 내놨다. 손학규 전 지사의 탈당 그 자체가 아니라 탈당 명분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무능한 진보"로 몬 행태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김근태 전 의장도 한 마디 했다. 지난 16일 정부의 한미FTA 추진방식에 대해 "낡은 방식이며, 국민을 협박하고 있고, 오만하다"고 했다.

시간의 선후관계가 잡힌다. 노무현 대통령이 "보따리장수"를 비판한 건 손학규 전 지사의 "무능한 진보" 공격 이후이고, "정직하지 않은 진보적 정치인"을 공격한 건 김근태 전 의장이 "낡은 방식"을 비판한 이후다. 선제공격이 아니라 방어에 나선 셈이다.

'꿈보다 해몽'인가? 너무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걸까?

그럼 이렇게 말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기우는 달'이다. 그가 뭐라 하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된다. 하지만 손학규·김근태 두 사람은 다르다. '떠오르는 해'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미래에 대한 영향력에서 보면 두 사람에 무게감이 더 실리는 게 사실이다. 한미FTA만 해도 그렇다. 정부가 한미FTA 협상을 타결 짓더라도 국회에서 비준을 안 해주면 그만이다. 열쇠는 이들이 쥐고 있다.

김근태의 '뉴딜정책'은 새로운 방식?

▲ 9일 오전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경제 5단체장 간담회`에 참석한 인사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봉균 정책위의장, 강신호 전경련회장, 김근태 의장, 손경식 상공회의소 회장, 이수영 경총 회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래서 묻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화두를 던졌으니까 이왕이면 이걸 빌리자.

먼저 손학규 전 지사. 무엇 때문에 "무능한 진보"라고 평하는가?

굵직한 정책에 대한 손학규 전 지사의 노선은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와 다르지 않다.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한미FTA는 적극 찬성하고, '집부자'를 위한 부동산 정책에 반대한다. 큰 기조만 놓고 보면 '도진개진'이다.

그럼 손학규 전 지사는 어떤 정책과 노선이 달라 "새로운 정치질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가?

다음 김근태 전 의장. 무엇을 기준으로 "낡은 방식"을 운위하는가?

김근태 전 의장이 한미FTA에 대해 "나를 밟고 가라"고까지 말하는 취지는 민생이다. 한미FTA가 섣불리 체결되면 민생이 파탄난다는 논리다.

어리둥절케 하는 면이 있다. 김근태 전 의장이 심혈을 기울였고, 그래서 미련이 남아 책으로 펴낼 계획이라는 '뉴딜정책'은 얼마나 새로운 건가? 재벌개혁을 양보할 테니 일자리를 달라는 '거래 방식'이 한미FTA의 '낡은 방식'과 어떻게 다른 건가?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은 채 경제단체를 찾아가 '뉴딜'을 제안한 처사는 한미FTA를 추진하는 참여정부의 "오만"과 얼마나 질적으로 다른 건가?

이렇게 묻는 이유를 부연하자. 청와대가 제기한 의혹, 즉 "선거용"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아니 의혹 해소 차원이 아니다. "선거용"이라고 꼭 나쁜 건 아니다. "선거용" 정책과 노선에 민심이 담겨있다면 굳이 내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진정성이고 일관성이고, 정교함이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 제기한다. 손학규·김근태 두 사람의 '노무현 공격'은 시원하다. 하지만 허전하다. 논리와 주장에서 모순이 발견된다.

이걸 해소해야 한다. 그래야 '가'든 '부'든 입장을 정할 것 아니겠는가.

태그:#노무현, #보따리장수, #거짓말 정치, #이중전선, #손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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