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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과학대 여성해고자가 7일 오전 관리직 사원들의 농성장 침탈에 맞서 알몸으로 대치하는 일이 벌어졌다.
ⓒ 민주노총 울산본부

정몽준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정몽준 의원님께서 이사장으로 계시는 울산과학대학에 3월 7일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을 지켜보면서 저 뿐만 아니라 국내외 많은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곳 노르웨이에서도 현대의 제품을 널리 쓰는데

정 의원님께서 상징하는 것처럼 돼있는 현대의 제품-자동차부터 선박까지-은 제가 살고 있는 노르웨이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오슬로대학교만 해도 현대 자동차들을 타고 다니는 교직원과 학생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 의원님께서 이사장으로 계시는 울산과학대학에서 비정규직 중년·노년 여성들이 5~7년의 성실한 근무에 대한 '보상(?)'으로 해고를 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대우를 당해 알몸 상태로 끌려나왔습니다.

이같은 상황을 안다면,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과연 현대 제품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이용할 수 있겠습니까?

세계 소식에 밝으신 정 의원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노조 불허·탄압 등으로 악명높은 월마트·맥도널드 등의 업체들은 수많은 나라의 소비자·시민들에게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도덕한 자본' '악덕 기업'의 상징적인 존재로 낙인찍혀 있습니다.

정 의원님께서는, 세계인들이 현대 제품들을 바라보면서 알몸으로 저항하는 50대 여성 노동자를 떠올리는 상황을 바라십니까?

'소탐대실'이라는 말을 잘 아실 터인데, 70만원도 안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 월급을 아끼기 위해 그 가치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것을 잃고 있다는 것을 어찌 모르십니까?

▲ 울산과학대 설립자 고 정주영 회장이 쓴 '창학정신'.
ⓒ 오마이뉴스 윤성효
교육자인 나, 울산과학대의 학생들이 슬픕니다

아마도 정 의원님께서 이번 사태가 현대 산하의 기업체도 아닌 학교에서 일어났다고, 본인과 현대 재벌의 책임이 없다고 하실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사태가 정 의원님이 이사장으로 계시는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더욱더 경악스럽고 더욱더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학생들에게는 '가르침'이 되고 '경험'이 됩니다. 어머니같은 여성들이 알몸 상태로 지하에서 끌려나오는 상황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입니까? 이 사회에서 정의는 멀고 주먹이 가까우며, 힘센 이에겐 대들 수 없지만 약한 이는 짓밟아도 된다는 진리 아닌 '진리'를 배우고 익히는 것을 바라십니까?

이번 일을 계기로 소수의 학생들이라도 약자에 동감하는 마음을 키워 폭력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소외당한 자와 함께 하는 자세를 익히는 것을, 저는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이 폭력의 만능을 가르쳐 학생들이 '힘이 곧 정의'라고 믿게 돼버리면 심히 통탄스러운 일입니다.

힘만 숭배되는 사회는 평화스럽고 조화롭게 꾸려가는 법이 없으며 늘 사기·범죄·배임·불성실의 온산이 됩니다. 의원님의 자손들이 살 나라에서 홉스가 이야기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학생들의 배움터에서 약자 노동자들을 폭력이 아닌 이성과 법, 화해의 정신으로 대해주십시오. '노조 가입'이 근로자의 기본 인권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주십시오.

몇 명의 울산과학대학의 학생들이 이미 폭력을 당한 여성 노동자들에게 "수업을 방해한다"고 항의했다는 소식을 며칠 전에 들었을 때, 저는 교육자로서 심한 허탈감을 느꼈습니다. 10대 후반~20대 초반에 이 정도로 측은지심을 잃고 남이 사형선고와 같은 해고 통지를 받아 마지막 남은 힘으로 저항해도 이를 '방해'로만 본다면, 과연 다 커서 명실상부한 사회인이 되고나서는 어떤 인간이 될 것입니까?

정 의원님께서 '나'만 알고 '남'을 모르는 부류들이 미래 대한민국의 '주류'로 군림할 것을 행복한 미래로 보시는 것입니까?

오늘 희생자는 울산과학대 여성노동자, 내일은 내 차례

▲ 울산과학대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의 농성장.
ⓒ 오마이뉴스 윤성효
정 의원님, 한 가지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외의 노동자, 시민의 대다수는 알몸으로 끌려나오는 나이드신 여성의 절규를 무시하고 지나갈 정도로 인간의 마음을 잃은 이들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 내지 자비심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공동 이해관계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 여성들이 비정규직이 되어서 희생되지만 내일은 같은 노동자인 내가 희생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번의 울산과학대학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농성은 수많은 이들이 열심히 동참하고 연대할 것이며, 노동자들의 요구가 관철되기 전까지는 정 의원님을 비난하는 소리도 잠잠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과연 정 의원님께서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나아가서는 역사책에서 '가해자'로 남고 싶어 하십니까? 그것이 40~50대의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승리(?)' 또는 영광이라고 보십니까? 부디 노동자, 시민사회, 그리고 역사의 심판에 눈떠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모두들이 다 그렇지만, 정 의원님께서도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시고 다른 세상으로 가시게 돼 있습니다. 그 순간 사람은 인생의 모든 사건들을 '영화처럼' 다시 떠올린다고 합니다. 정 의원님의 귀에 지금 울산과학대학에서 고생하는 여성들의 신음이 안 들리시리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남에게 악이 아닌 선을 행하는 자만이 평화롭게 살고 평화롭게 갑니다. 부디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인간이 결국 스스로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을 기억해주십시오.

덧붙이는 글 | 박노자(Vladimir Tikhonov) 기자는 노르웨이 오슬로대 인문대학 동방언어 및 문화연구학과(한국학) 교수입니다.


태그:#울산과학대, #청소용역, #현대, #정몽준,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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