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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여수 성심병원에서 한 외국인이 조문을 마치고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 광주드림 안현주

나는 지난 삼년 동안, 여수외국인보호소에 매주 한 차례씩 드나들며 예배와 상담을 진행해왔다. 예배시간에는 보호 외국인들과 한 사람씩 긴한 대화를 나누기 곤란하다. 그래서 직접 면회 요청을 해오거나 상담이 필요하다 싶은 사람을 대상으로 예배를 마친 후에 약 20~30분 가량 보통 두 사람씩 면회하곤 했다.

이렇게 상담을 하는 동안, 단속에 적발돼 강제퇴거를 앞둔 보호외국인들의 체불임금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략 거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임금 체불로 인해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기약도 없이 보호소에 구금돼 있는 실정이었다.

현재 외국인 보호소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 체불임금, 여권 미소지, 소송관계, 난민신청 등의 이유로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다른 문제들은 놔두고라도 체불임금은 마땅히 주무담당 부서인 노동부의 노동사무소가 맡아서 속히 처리해야할 사항이다. 강제퇴거를 앞두고 신체가 구금되어 있는 보호외국인의 건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내국인이라면 가족이나 친지 등의 협력을 얻어 임금을 받아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과 경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은 일단 보호소에 갇히고 나면 체불임금을 받아낼 길이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

밀린 임금 기다리며 고향에도 못 가는 사람들

▲ 12일 오후 여수시 성심병원 중환자실에 법무부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로 부상을 당한 한 외국인이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다.
ⓒ 광주드림 안현주
물론 보호소 측에서도 고충처리 부서를 두어 체불임금 상담을 하고는 있다. 그러나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사주를 처벌할 실질적 권한이 거의 없다. 기껏해야 불법체류자를 고용하여 일을 시켰다는 이유로 소액의 벌금을 매기는 것이 전부다.

따라서 보호외국인의 체불임금을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노동사무소와의 긴밀한 협조가 절실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두 기관의 협조는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양측 직원들의 입을 통해서나, 임금체불로 수개월에서 무려 2년까지 보호소에 남아있는 외국인들의 사례를 통해서나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2월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대규모 화재참사가 일어나자 노동부는 서둘러 사상자들 중 체불임금이 있는 사람들의 문제해결에 나섰다. 그 결과 사상자 가운데 체불임금이 있던 4명의 임금 전액이 지급됐다고 엊그제 국정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그렇게 빨리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왜 사고가 나고서야 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또 노동부는 강제퇴거 대상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체불임금이 있는 경우 신속히 돌려받고 나갈 수 있도록 지원활동을 강화했다는 내용도 발표했다.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적극 나서겠다니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 브리핑 내용 가운데 구구한 변명이 섞여있어 볼썽 사납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노동부는 '선조치 후통보' 원칙에 따라 불법체류외국인의 노동관계법 고충사건을 조사할 때는 체불임금청산 등 처리가 끝난 뒤 출입국사무소에 출입국관리법 위반사실을 통보하고 있다."

거짓말이다. 이번 여수보호소 화재참사로 사망한 사망자 가운데 고 김성남씨의 사례를 보면 대번 알 수 있다.

그는 양식장에서 일하다가 1020만원에 달하는 임금을 체불당하자 여수 지방노동사무소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그런데 아직 "체불임금청산 등 처리가 끝난 뒤"가 아닌데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그는 양식장 주인에게 체불임금의 일부인 300만원을 겨우 받았을 뿐이었다.

결국 지방노동사무소는 체불관계가 아직 제대로 청산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김성남 씨의 사업장 이탈 사실을 출입국 측에 통보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이 있음에도 '선조치 후통보' 원칙을 운운하며, 그동안 매우 인도주의적인 조치를 취해온 것처럼 선전하면서 진실을 가리려하다니 그 발상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다.

"외국임 체불임금까지 신경쓸 겨를 없다"던 근로감독관

▲ 지난 2월 11일 화재로 외국인 사상자가 발생한 여수시 화장동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한 유가족이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고 있다.
ⓒ 광주드림 안현주
노동부의 뻔뻔함은 계속된다.

"아울러 장기 보호외국인이 많은 화성·청주보호소와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에 근로감독관이 정기적으로 방문해 임금체불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과연 이게 사실일까? 화성과 청주는 확인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여수보호소는 근로감독관의 정기적 방문이 이루어졌을지 의문이다.

예전에 나는 두어 차례 지방노동사무소에 도움을 호소하는 전화를 한 바 있다. 여수외국보호소에 구금돼 오도가도 못하는 임금체불 보호외국인들의 실정이 딱하니 나와서 상담을 좀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당시 전화를 받은 어느 근로감독관은 "우리도 일이 바쁘다, 국내 근로자들의 체불임금 해결해주기도 어려운 형편에 거기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하여 어처구니없게 만들었다.

그 후로도 노동사무소를 채근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간부들과 더불어 지방노동사무소에 찾아가 청장을 면담하면서 외국인보호소의 사정을 토로했다. 당시 지청장은 "근로감독관이 정기적으로 찾아가 상담하도록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최근 화재참사 이후 노동사무소에 가서 확인해본 결과, 그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여수외국인보호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체불임금 상담을 해온 기록을 보여달라'는 우리 요구에 대해 자료를 선뜻 보여주지 못하고 얼버무렸기 때문이다. 만일 자신 있다면 왜 보여주지 못했겠는가?

일단 사과하라, 그리고 보호소에 근로감독관을 상주시켜라

분명한 건 외국인보호소에 대형 화재참사가 일어났고, 사상자들 가운데는 체불임금으로 인해 출국하지 못하고 이런 참변을 당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만 관리소홀 책임이 있고 노동부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일까?

앞서의 국정 브리핑 내용을 보노라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잘 해왔고 앞으로도 더욱 잘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는 식의 홍보만 보일 뿐, 그 어떤 사과나 반성의 문구 한 줄도 찾을 수 없다.

이런 노동부에 제발 부탁하고 싶다. 우선 이번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에 대해 책임이 막중함을 통감하고 고개숙여 깊이 반성하길 바란다.

그리고, 전국의 대규모 보호소 시설이라 해봐야 화성·청주·여수 세군데 밖에 없다. 그렇다면 차제에 법무부의 협조를 얻어 세 곳의 보호소에 특별근로감독관을 배치하여 아예 상주시키는 것이 어떠한가? 상시적인 체불임금 상담과 진정이 가능하도록 말이다.

잘 알다시피 보호외국인들은 수시로 들고나기 때문에 정기적인 몇 차례의 방문으로는 한계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근로감독관이 상주하여 체불임금 상담을 성실히 진행한다면, 상당수의 보호외국인들이 장기 보호되는 일을 막으면서 비용도 절감되고, 이들이 끝내 임금을 떼이고 돌아가면서 한국에 대해 악감정을 품는 것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지난 2월 11일 새벽 화재가 일어난 여수시 화장동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전경.
ⓒ 광주드림 안현주

덧붙이는 글 | 정병진 기자는 현재 여수에서 솔샘교회 담임 교역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여수, #외국인보호소, #이주노동자, #솔샘교회, #출입국관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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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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