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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와 일본 안보협력에 관한 공동선언'에 서명하기 위해서 지난 11일부터 일본을 방문 중인 존 하워드 호주 총리가 뜻밖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거론해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하워드 총리는 미국 다음으로 중요한 무역파트너인 일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조심스런 행보를 보여 왔는데, 다른 일도 아닌 안보조약 서약을 위한 공식방문의 자리에서 일본의 아킬레스건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거론한 것은 아주 획기적인 변화이다.

더 이상 둘러댈 수 없는 엄정한 사실

▲ 하워드 호주 총리
ⓒ TWT
이 사안과 관련해서 12일자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존 하워드 총리가 13일 열릴 예정인 아베 신조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성 노예(sex slaves)를 강요당한 수많은 여성들의 문제를 거론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채널9 TV 뉴스프로그램 <나이트라인>도 "아베 총리는 불과 얼마 전에, 피해자가 대부분 아시아여성들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관한 증거가 없다고 비인도적인 발언을 한 바 있다"고 보도했다.

도쿄에서 기자들과 만난 하워드 총리는 "지난달 미국 하원에서 증언한 바 있는 호주 국적의 얀 오헤른 할머니(84)가 강요에 의해서 피해를 당한 게 확실하다"면서 "내일 아베 총리와의 회담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이 문제를 거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바로 전날까지 하워드 총리는 위안부 문제를 거론할 것인지 여부를 확실하게 밝히지 않으면서 "아베 총리가 지난 1993년에 행해진 일본정부의 사과를 재확인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언급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그의 소극적인 속내를 내비친 바 있다.

그러나 하워드 총리는 12일의 기자회견을 통해서 "그건 비극적인 시대에 벌어진 소름끼치는 사안이었다. 비록 수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당한 다른 나라들이 있지만 그 중에 호주 여성도 포함됐다는 건 더 이상 둘러댈 수 없는 엄정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엄청난 압박을 당하는 아베 총리

한편 호주의 유일한 전국일간지 <디 오스트레일리안>은 3월 13일자 '성노예 문제를 도쿄 아젠다로 삼은 하워드 총리(Sex slaves on PM's Tokyo agenda)'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하워드 총리가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일본군에 의해서 강제로 성적학대를 당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정상회담의 아젠다로 삼겠다는 선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신문은 이어서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요리저리 둘러대 왔던 아베 총리가 엄청난 압박(mounting pressure)을 받게 됐다"면서 "아베 총리는 한국의 지원 아래 성사된 미국 하원 위안부 문제 청문회 이후 더욱 강한 사과요구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도쿄에서 기사를 쓴 데니스 사나한 기자는 이어서 "아베 총리가 최근 설령 미국의회에서 결의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더 이상의 사과는 없다고 발언해서 새로운 물의를 일으켰다"고 밝히면서 "아베 총리는 지금 그동안 주로 아시아권에서만 거론되어 왔던 위안부 문제로 미국, 호주, 한국 등에서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도쿄 발 <디 오스트레일리안> 기사는 이어서 "1944년에 일본군에 의해서 끌려가서(captured) 3개월 동안 위안소에서 강간을 당한(raped) 호주국적의 오헤른씨가 대표적인 증인"이라면서 "강제연행을 증명할 증거(testimony)가 없다는 아베 총리의 발언은 거짓"이라고 공박했다.

<디 오스트레일리안>은 기사의 끝부분에 "어제(3월12일)는 공식적으로 신문이 휴간하는 날이었다"면서 "하워드의 언급이 아베 총리를 공격한 것 같지는 않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 일본을 방문중인 존 하워드 총리가 12일 아소 다로 일본 외상을 만나고 있다.
ⓒ <디 오스트레일리안>
호주국적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감격

한편 이 소식을 접한 오헤른 할머니는 호주국영 ABC라디오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감격스런 목소리로 "두 나라 간의 안보조약 서명을 위해서 일본을 방문 중인 하워드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아주 시의적절하다"고 말했다.

오헤른 할머니는 이어서 "일본정부는 아직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 정의롭지 못했는데 호주와 일본 두 나라의 안보관계 설정에 이 문제도 포함된다"면서 "하워드 총리가 정말 이 문제를 정상회담에서 거론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헤른 할머니는 <디 오스트레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도 "일본은 역사적 책임을 져야하고 젊은 세대들에게 진실을 가르쳐야 한다(They should take historical responsibility and teach the true to younger generations)"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헤른 할머니는 이어서 "양국 정상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아주 희망적"이라면서도 "좀 더 강한 압박을 가해야 한다(It has to put even more pressure on the Japanese Government)"고 공격의 수위를 높였다.

▲ 오헤른 할머니
그동안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고이즈미 전 총리 포함)와 찰떡궁합의 밀착관계를 유지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하워드 총리가 자청해서 이 문제를 거론한 것은 큰 변화의 조짐으로 평가된다.

한편 하워드 총리의 12일자 발언이 지난 3월 7일 시드니에서 개최된 751번째 수요집회의 성과물로 보여서 오헤른 할머니를 포함한 행사관계자들을 크게 고무시키고 있다.

더욱이 한국의 이용수, 김군자 할머니와 호주의 오헤른 할머니가 지난 2월 15일 미국 의회 하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청문회'에 나가서 증언한 후에,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하워드 총리의 발언이 나와서 더욱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호주의회, 일본정부 사과촉구 결의안 통과 가능성 높아져

한편 3월 7일 시드니 수요집회에 참석해서 연설한 캐리 네틀 연방 상원의원(녹색당 소속)은 12일 오후 기자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서 "이번 일을 계기로 호주의회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미 호주 상원에서는 미국 하원보다 먼저 일본정부 사과촉구 결의안이 두 번이나 상정되어 모두 부결된 적이 있다. 민주당 소속 나타샤 데스포야 의원과 녹색당 소속의 캐리 네틀 의원이 발의했던 것. 그러나 민주당과 녹색당은 두 당을 합해도 10석이 안 되는 미니 정당들이다.

결국 두 의원은 다수당인 노동당을 끌어들여서 결의안 채택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자유-국민 연립당의 하워드 총리가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관심을 보이자 케리 네틀 의원이 크게 고무된 것이다.

내일(13일) 하워드-아베 총리의 회담결과에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더욱 뜨거운 국제적 이슈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동안 꿈쩍도 하지 않는 일본정부를 상대로 힘들게 투쟁해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불굴의 정신'이 과연 승리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태그:#위안부, #하워드, #오헤른, #아베,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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