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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이 미용실에서 '옥동자' 머리를 만들어줬다.
ⓒ 한나영
"엄마, 그 머리…."
"그만 좀 해. 벌써 몇 번째니?"


미국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왔더니 큰딸의 구박(?)이 심하다. 머리를 보는 순간부터 입을 다물지 못하더니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해댄다.

"아니, 머리가 그 모양이 될 때까지 뭐 하고 있었어? 눈감고 있었어?" "어떻게 앞머리를 그렇게 센스없이 일자로 잘라 옥동자를 만들어 놓냐? (없는 인물 더 망쳐놨다는 듯이)" "머리 배상해 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러고도 팁을 줬어?" "그러게, 다시는 미국 미용실 가지 말랬잖아."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큰딸의 잔소리. 아마도 소크라테스에게 퍼부었다던 크산티페의 잔소리도 이보다는 덜 했을 것이다.

"이 머리, 손해배상해야 하는 거 아냐?"

어쩌겠는가. 나도 내 머리가 마음에 안 들지만 이미 잘려나간 머리를 어쩌라고. 속상해 한들 그 머리가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닐 테니 그저 시간이 약일 수 밖에….

"엄마, 나 보면 아는 체 하지 마!"
"제발 좀 그만 해. 네 머리 망친 것도 아닌데 왜 그래? 어차피 머리는 길기 마련인데 그냥 좀 내버려 둬."
"쳇, 마음씨도 곱기도 하지."
"나도 뭐라고 안 하는데 왜 네가 나서서 그래? 그만 해!"


이리저리 머리를 뜯어보며 구시렁대는 큰딸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그 불똥이 애꿎게도 작은딸에게 튀었다.

"야, 너도 같이 갔다면서 왜 저 지경이 되도록 가만 있었어? 완전히 옥동자 머리잖아. 넌 미용실에서 뭐하고 있었어?"
"소파에 앉아서 책 읽었어. 엄마는 안으로 들어가서 안 보였어."


이렇게, 나의 '옥동자 머리' 때문에 그날 우리 집은 하루 종일 시끄러웠다.

이 곳 해리슨버그에는 한국 미용실이 없다. 아마도 한국 사람이 많지 않아서일 게다. 처음 이 곳에 와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두 시간을 운전하고 가서 '노던 버지니아'의 한국 미용실을 찾는다고 했다.

'무슨 정성이 뻗쳤다고 머리 하나 자르러 두 시간씩이나 달려가나?'

물론 머리만 자르러 가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 마켓에 장을 보면서 머리도 자르고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수고를 하면서까지 한국 미용실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미국 미용실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던 나는 그냥 이곳에서 머리를 해결하기로 했다.

"네 머리가 꼭 그렇게 나오는 건 아냐"

▲ 미국 미용실 내부인데 우리와 비슷하다. 그런데 솜씨는 천양지차?
ⓒ 한나영
처음 미국 미용실에 갔을 때 미국인 미용사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자르고 싶냐고. 미용사는 잡지를 건네며 마음에 드는 머리형을 골라보라고 했다. 한국 미용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잡지를 넘겨가며 층층이 자른 커트머리 아가씨를 가리키며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미용사가 날 똑바로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자르도록 하겠지만 네 머리가 꼭 그 아가씨처럼 나오는 건 아니니 그리 알도록."

미용사의 말은 마치 '그 모델은 예뻐서 머리도 그렇게 예쁘게 보이지만 너는 그 아가씨와는 많이 다르니 큰 기대는 말도록'하는 말처럼 들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애들이 볼 때는 '한국에 있는 미용사 언니'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어설픈 솜씨였지만 미국 미용실에서의 첫 경험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같은 미용실에 간 것이었는데 그만 낭패를 본 것이었다.

인상좋은 금발 미용사는 내 머리를 자르면서 머리칼이 '비단결(silky)'같다고 칭찬을 해줬다. 무슨 샴푸와 린스를 쓰느냐고 묻기도 했다. 적당히 수다스럽지 않으면서 손님을 편하게 해주는 대화를 했다. 물론 이런 호의와는 별도로 완전히 옥동자 머리를 만들어줘서 기분은 나빴지만 말이다.

커트값 따로, 드라이값 따로, 팁 따로

그나저나 미국에서 머리 한 번 자르려면 얼마를 내야 하는가. 전에 갔던 노던 버지니아의 한국 미용실은 짧은 머리는 20달러, 긴 머리는 30달러였다.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좀 비싼 편이다. 왜냐하면 커트 비용 외에도 드라이 비용을 따로 받는 곳이 있고, 또 팁은 별도로 줘야 하니까.

처음 갔던 미국 미용실에서의 재미있는 경험이다. 머리를 자른다고 하니 미용사가 머리를 감겠느냐고 물었다. 공짜라고 했다. 그래서 머리를 감았는데 머리를 자르고 난 뒤에 드라이 값은 따로 받는다고 했다. 아니, 머리를 안 말려주면 물에 젖은 생쥐 모습으로 그냥 나가라고?

"뭐라고요? 5달러라고요? 내버려두세요. 집에 가는 길이니 그냥 집에 가서 할게요."

결국 한푼이라도 절약하려는 짠돌이 한국 아줌마는 그냥 축축한 머리로 미용실을 나섰다. 미용실 바로 앞에서 차를 타고 왔기에 망정이지 누구라도 만났으면 우스운 꼴이 될 뻔 했다.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다. 미용실에서 머리 커트해주고 드라이값 따로 받지 않으니까. 우리나라 서비스에 대해 다시금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옥동자는 미국 스타일? 믿어, 말어?

그나저나 머리를 자르고 오면 기분이 좋아질 줄 알았는데 손 무딘 미용사 때문에 '옥동자' 머리로 몇 주를 보낼 생각을 하니 우울해진다.

"미용실 기사를 쓰려고? 설마 사진까지?"
"응. 사진도 찍었어. 매니저에게 말했더니 흔쾌히 찍으라고 하더라."
"아니, 엄마 사진 말이야. 엄마 머리 사진!"
"(미쳤니) 그걸 어떻게 올리니?"


한 미국 친구는 맘에 안 들어 자꾸 머리에 손이 가는 나를 보고 그럴 듯한 해석을 내려줬다. "그렇게 나쁘지 않아. 그건 좀 더 '미국 스타일'이야." 이 말을 믿어야 해, 말아야 해? '옥동자'가 미국 스타일이라고? ^^

태그:#옥동자, #미용실, #미국, #손해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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