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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삼성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 오마이뉴스 권우성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아파트에 사는 국민과 아파트에 살지 않는 국민들이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아파트에 사는 국민들에게 있다."


대한민국 헌법을 이렇게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이왕 하는 개헌이라면 이런 조항도 하나 더 덧붙여도 좋을 듯하다. 오늘(9일) 대다수 신문들에 보도된 서울시의 다세대 주택 일조권 규제 완화 소식을 접하면서 드는 단상이다.

서울시는 다세대 주택의 대표적 건축 규제인 일조권 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다세대 주택의 채광 방향 일조 기준(채광창이 있는 벽면에서 인접대지 경계선까지의 거리)을 종전 건축물 높이의 4분의 1에서 높이와 관계없이 '1m이상'으로 낮추기로 했다. 앞뒤나 옆 건물, 대지 경계와 1m 정도만 떨어지면 된다는 이야기다(진북방향의 일조권 거리규정은 현행 그대로 유지된다).

보통 다세대 주택은 1층 주차장 시설까지 합해 4층 높이 정도로 올라간다. 앞 건물과 2m 정도의 거리만 두고 집을 지을 수 있게 된다면 다세대 주택의 3층까지는 아마도 대부분 햇빛이 들지 않은 '토굴'과 같은 집에서 살아야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

다세대 주택 건설 활성화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서울의 다세대 주택 신축 동수는 2002년 1만4056동 이던 것이 2004년 1106동, 2005년 1016동으로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늘리자는 것이다.

다세대 사는 사람들에게 햇볕은 사치?

대한민국이 아파트 공화국인 것은 새삼 거증이 필요치 않다. 이제는 전국 각지의 소도시는 말할 나위도 없고, 웬만한 규모의 군단위에서도 아파트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드넓은 평원에 벌쭉이 치솟아 있는 아파트나 산간지방 산등성이에 위세 좋게 자리 잡고 있는 아파트들을 보면 아파트 중독증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BRI@어디 그 뿐인가. 집값 하면 아파트 가격을 말한다. 다세대주택이나 단독주택은 집값 동향과는 전혀 무관하다. 며칠 사이에 수 천만원 씩 오른다고 하지만 다세대나 단독의 가격은 매년 떨어지는 곳이 더 많다. 은행에서도 아파트와 아파트 아닌 집은 확연히 구분된다. 담보 비율부터 차이가 난다. 한 때 아파트 감정가격의 70~80%까지 담보를 잡아주었지만 아파트 아닌 집들은 잘 해야 50~60% 정도다.

아파트 아닌 집들이 이처럼 푸대접을 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주거환경이 나쁘기 때문이다. 다닥다닥 지어놓아 햇볕이 들이 않는 다세대 주택들은 특히 그렇다. 주차시설이 부족해 길목에선 주차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매일 저녁 전쟁이 벌어진다. 그나마 몇 차례에 걸쳐 일조권 규제와 주차 공간 규제를 강화하면서 그 형편이 조금은 나아졌다. 그런데 서울시가 다시 이를 대폭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어떻게 이런 결정을 했는지 궁금했다. 한마디로 다세대 사는 사람들에게 햇볕은 '사치'라는 이야기가 돌아왔다.

"다세대는 그야말로 영세민 가운데 영세민들이 사는 주택이다. 25평짜리 다세대 주택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강남에서도 1억8천정도 주면 살 수 있었다. 1억5천이면 좋은 위치다. 은행에서 1억2천까지 빌려줬다. 3천만 원만 있으면 내 집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제 힘들게 됐다. 이제는 이런 집들도 2억, 3억씩 한다. 그런데 융자는 4, 5천만 원 밖에 안 해 준다. 무엇보다 집짓는 사람들이 수지가 안 맞는다. 8세대 한 동을 지으면 과거에는 1~2억 원 정도, 안 돼도 5천만 원 정도 남았는데, 지금은 그것도 안 된다. 분양이 안 되니까. 최근 5년 동안에 너무 공급이 없다."

그래서 일단 업자들이 쉽게 지을 수 있도록 길이라도 열어주자고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 다세대 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주거환경은 어떻게 되는가?

"판자촌에 사는 사람도 있고, 높은 고층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있고, 호화 전원주택에 사는 사람도 있는 것 아니냐. 일조거리 규제를 완화하면 물론 주거환경은 더 나빠진다. 그러나 그것은 배부른 사람들 이야기다."

배고픈 사람들한테는 햇볕이 들고 안 들고를 따지는 것이 '사치'라는 이야기다.

비아파트시민의 주거환경 외면한 신문들

그렇다면 과연 이 처럼 규제를 완화하면 다세대 주택들을 많이 지어질까? 그것도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왜?

"은행융자가 안 돼 분양이 안되는 게 문제다. 일조거리 규제를 완화는 해주지만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집장사들이 집을 지을) 길은 열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게 2007년 3월 아파트공화국의 '서울풍경'이다. 그러고 보니 헌법 고칠 게 하나 더 있다.

"대한민국의 일조권은 아파트시민들에게만 있다."

서울시는 이런 내용의 조례개정을 8일 입법예고하고, 4월 시의회의 의결을 거쳐 빠르면 6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서울시가 이처럼 조례 개정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지난 11월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이 같은 규제 완화방침을 밝히고 2월 28일자로 건축법 관행 시행령을 바꿨기 때문이다.

200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서울의 주택수(괄호 안은 거주가구)는 모두 232만여 동(330만9천여가구)로 아파트가 54.2%(36.8%), 단독주택 19.6%(42.4%), 다세대 18.5%(12.5%), 연립 6.3%(4.4%), 기타 1.3%(0.2%)이다.

오늘 신문들, 일제히 서울시의 '보도자료'를 열심히 보도했지만, 비아파트시민의 주거환경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인 신문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마 기자들도 모두 아파트시민들인 모양이다.

태그:#백병규, #미디어워치,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다세대주택, #일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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