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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출입국관리소 화재 참사에 관해 이정호 신부가 보내온 기고문을 싣습니다. 이정호 신부는 오랫동안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일해왔습니다. <편집자주>
▲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1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이주노동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 사람이 자기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기를 인정해주는 타인이 필요하다. '하늘 아래 나 홀로 존재한다면 그가 과연 인간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이 타인과 복잡하게 연결돼 있고, 타인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할 때 너와 나의 경계를 넘어 우리에 이르게 된다. 즉 인간 주체가 단순히 자신의 유일성을 의식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 인간 주체로 인식돼야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 된다.

주인과 노예, 그리고 이주노동자

@BRI@독일의 근대 철학자 헤겔은 이 과정을 일반적으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주인은 노예를 지배하고 있지만 또한 노예의 노동에 기대어 생활하고 있는 존재인지라 자신의 정체성이 노예의 인정에 의해 가능하다는 지식 안에서만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다. 반면 노예는 노동이라는 자기 확인을 위한 다른 근원을 가지고 있으므로 동일한 방식으로 주인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만약 노예의 정체성이 그의 노동을 통해 확증된다면 자유로운 사람은 주인이 아니라 노예이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지만 그 관계가 결코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의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나는 너에 의하여, 너는 나에 의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이 핵심 내용이다.

금번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의 화재 참사를 보면서 지난날 읽었던 철학자 헤겔의 이 대목을 불현듯 떠올리게 되었다.

결국 이번 사태의 핵심적인 문제는 이미 우리 삶의 현실적인 파트너가 돼버린 이주노동자들을 여전히 파트너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유아독존적인 한국정부의 인식이다.

정부의 저변에 깔려 있던 이러한 근본적인 인식이 결국 국가기관의 '방재 시스템 부재'와 그에 따른 참사의 결과로 표면화된 것이다. 이번 참사는 정부를 포함한 우리 국민의 의식이 그 모습을 드러낸 하나의 작은 예일 뿐이다.

이주노동자, 파트너 아니라 착취대상

우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오명 속에 당당한 파트너가 아니라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해온 이주노동자들이 죄인처럼 숨어 지내고 불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병이 나도 단속 때문에 병원조차 갈 수 없고, 고용주도 마땅히 어쩔 도리가 없어 수수방관할 뿐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다. 그러다 아주 작은 병에 지레 겁먹고 목숨을 잃고 마는 사태도 빈번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참사를 '인재'라고 규정하고 외국인 출입국 관리업무 전반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우리 국민과 정부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또 하나의 미봉책에 불과하다. 외국에 인력을 송출하던 한국이 외국 인력을 받아들이는 나라로 바뀐 것은 1990년대 초이다.

이처럼 인력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가로 이동하기 마련이다.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몰려들 것이며 그들은 우리에게 더욱더 정당한 대접을 요구할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자신들의 인식이 바뀌었음을 명백히 보여주어야 한다.

1980년대까지 한국도 인력 송출국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편적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보호하고자 1990년 유엔이 제정한 '이주 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을 비준해야 하며, 미등록노동자의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법률을 조속히 제정하고 사면책을 실행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들이 인간 이하의 처우를 받는 것을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

▲ 이정호 신부.
이제 주사위는 정부로 넘어갔다. 이주노동자를 우리의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그들의 인권을 인정하는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그것이 너와 나를 가로막는 장벽을 넘어 우리가 되는 지름길이다.

그것은 또 역사가 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주노동으로 이 땅에서 숨진 모든 넋들이 하느님의 은혜로 편히 쉴 수 있길 기도한다.

태그:#여수, #출입국관리소, #화재,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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