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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한적한 작은 마을임에도 전주가 엄청나다.
ⓒ 강기희

도심의 거리는 온통 전주와 전주를 연결하고 있는 전선으로 뒤덮여있다. 거기에 전화선로와 방송 케이블까지 합세하면서 건물과 거리는 전선으로 어지럽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전선은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일산과 분당 등 신도시에 가보면 전주가 지중으로 매설되어 있어 거리가 깨끗함을 느낄 수 있다. 서울의 경우 50% 정도 지중화가 진행되었다지만 그것도 강남이나 재개발 지역에 국한되어 있다.

전국적으로 보면 지중화 비율은 더 낮아진다. 지상에 노출되어 있는 전주는 시선폭력과 다름 아니다. 오래전 검은 기름을 먹인 나무 전주는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윙윙, 울어주는 요즘의 시멘트 전주는 더 이상 아름다운 풍경이 되지 못한다.

종로 YMCA 뒷골목인 피맛골을 따라 가다보면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이 찾는 '고갈비'집이 있다. 영화의 무대로도 쓰인 그 집의 실내엔 오래된 나무전주가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 집을 '전봇상'집이라 부르곤 했다. 그러나 전주, 즉 전봇대의 추억은 거기까지이다.

종로 피맛골의 '전봇상'집의 추억, 그러나

@BRI@거리를 뒤덮은 전주와 송전탑은 아름다운 풍경을 삭막하게 만들어 놓았다. 산업화의 산물인 전주가 문화의 세기라는 말을 우습게 만들었다. 거리와 산천을 점령한 전주와 거대한 송전탑은 이제 지중화해야 한다.

전주의 평균 수명이 15년이란다. 태풍이나 수해가 나면 그 수명은 시기가 따로 없다. 하나의 전주를 세우기 위해 또 하나의 보조 전주가 세워지는 요즘이고 보면 가히 대한민국은 전주의 천국이라 할만하다.

국도변에 널려있는 전주는 여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겐 짜증의 대상이다. 사진을 찍으려 해도 전주와 전선 때문에 포기해야 할 정도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전주를 피할 수 없다. 전주 하나를 교체하는 비용이 평균 100만원이나 든다. 전주의 비중에 따라 150만원이 넘게 드는 경우도 있다.

전주를 지중화 하면 전주 하나를 교체하는 비용보다 5배 더 소요된다고 한다. 전주를 교체하거나 유지 보수하는 비용을 감안해보면 지중화 작업에 드는 비용이 큰 비용이라 할 수 없다.

"도심의 경우 재개발 지역을 중심으로 지중화 작업을 하고 있으나 그 외 지역은 지중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한국전력 관계자의 말이다. 지중화 비율 1%를 높이는데도 큰 돈이 든다는 것이다. 지자체에서 어느 지역을 지중화해달라고 요청하면 심의를 거쳐 지중화 작업을 하기도 한단다. 그런 경우 모든 비용을 한전에서 부담하는 게 아니라 지자체에서 절반 정도 부담하는 조건이다.

▲ 전선 교체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 강기희
아름다운 자연환경 지키려면 지중화 비용 감수해야

강원도 정선군 동면에 있는 소금강 일대의 지중화 작업도 지자체에서 일부 부담하는 조건으로 진행됐다. 물운대와 광대곡 등의 화암팔경이 있어 경치가 아름다운 곳인 소금강은 전주가 사라지면서 관광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전선 지중화에 대한 사진작가들의 반응은 더 뜨겁다. 어느 곳에서나 사진 작업이 가능하다는 면에서 정선군의 작은 배려가 반갑다. 정선군은 소금강 지역에 이어 관광지인 화암동굴까지 지중화 작업을 계획하고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골의 경우 전주가 밭 한가운데에 위치해 농민들로부터 옮겨달라는 민원을 많이 받는다. 이때 옮겨지는 전주는 또 다른 위험을 부른다. 전주가 좁은 길가로 옮겨지면서 차량들과의 충돌 사고에 대한 위험도 높아졌다.

전주와 송전탑은 환경 훼손의 주범이기도 하다. 한번 훼손된 환경은 복원하기도 힘들다. 설사 복원한다고 해도 그에 따른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훼손하는 전주와 송전탑을 언제까지 그냥 둘 것인지에 대한 국가적 해답이 있어야 할 시점이다.

▲ 지중화 작업을 끝낸 정선 소금강. 풍경이 그대로 살아난다.
ⓒ 강기희

태그:#전선줄, #도시, #전주,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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