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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베스트셀러 양산에 일조하여 중국의 종이값을 올리는데 공을 세운 중국의 방송이 이번에는 정치바람에 휩싸이고 있다. 문제의 주인공은 올 연초부터 절찬리에 방송된 드라마 <와신상담>과 <대명왕조>.

우리에게도 익숙한 한자성어인 <와신상담>은 오(吳)나라와 월(越)나라의 패권 쟁패를 두고 벌어지는 과정에서 지도자들이 벌이는 복수심을 키우는 방식이다. 장작 위에 눕는 '와신(臥薪)'은 오나라의 부차가, 곰쓸개를 씹는 '상담(嘗膽)'은 월왕 구천이 쓰는 방식으로 두 개를 사이좋게 묶어서 '와신상담(臥薪嘗膽)'을 만들어냈다.

[와신상담] 어려움 참고 이겨낸 구천에 방점

<와신상담> 불굴의 의지로 오나라를 굴복시키는 월왕 구천(왼쪽)과 범려의 활약을 그린 드라마 <와신상담>의 한 장면.
대표적인 황제 전문 배우 천다오밍(陳道明)이 월왕 구천으로, 역시 정상급 배우인 후쥔(胡軍)이 오왕 부차로 연기한 이 드라마는 CCTV 산하의 회사에서 제작한 드라마다. 드라마는 당시에 상업적 자본을 바탕으로 힘을 얻은 오나라 왕 합려의 장자에게 시집간 월나라의 공주가 월나라로 도망오면서 시작된다.

연로한 월왕은 대장군의 말을 듣고 태자 구천의 항전의지를 묵살한 채 도망온 딸을 다시 오나라에 돌려보낸다. 하지만 구천의 항전의지에 양국은 전쟁을 시작하는데, 오왕 합려가 전쟁 끝에 죽는다.

이후 오자서(손자병법의 오자서)의 도움을 받은 왕자 부차가 장작 위에서 자는 수고 끝에 군사력을 키우는데, 이에 부담을 느낀 구천은 오나라에 쳐들어갔다가 대패해 볼모로 잡힌다. 이후 구천은 부차의 대변까지 맛보는 고생 끝에 월나라에 돌아오는데, 이후 곰의 쓸개를 씹으면서 복수를 다짐하고, 20년후 전쟁에서 부차를 패배시킨다는 이야기다.

드라마의 힘은 천다오밍이 연기한 구천에 집중되어 있다. 구천은 약소국임에도 젊은 범려를 기용해 굳은 의지로 국가의 힘을 키우고, 결국은 큰 나라인 오나라를 굴복시키는 전형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월나라 내부에서 항전파인 구천과 타협파인 대장군 간의 갈등으로 초반을 이끌다가 이후에는 구천과 부차의 갈등으로 이어가면서 흥미를 더한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 정부가 공공연히 방송물에 정치적 성격을 강화한다는 입장을 밝힌 이후 강한 지도력을 가진 구천을 주연으로한 드라마를 연초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중국 내부에서는 강한 중국을 내세운다는 평가가 있다. 해방군예술대학 방송과 리치엔탄(李荃談)은 이 드라마를 중국 역사극의 수준을 높인 작품으로 평가하면서 <대장금> 등 한국 궁중 드라마처럼 역사 속 인물을 이용해 현대 정치나 문화를 읽는 방식이 잘 구현됐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 승리한 구천의 연기에 힘을 부여하고 있는데, 이는 현 중국이 세계적인 헤게모니로 가기 위해서는 좀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명왕조] 직언하다 쫓겨난 충신 이야기

정치색으로 한다면 <와신상담>에 비해 <대명왕조>가 휠씬 짙다. 지난달 31일 진보적인 경제신문인 <21세기경제보도>는 '역사드라마의 뒷이야기 해서당관'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후난위성방송에서 내보낸 <대명왕조-1566, 가정과 해서>가 담고 있는 정치성에 관한 분석이다.

중국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당연히 '해서(海瑞)'라는 인물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해서는 바로 중국 현대사의 가장 극적인 사건인 '문화대혁명'의 시발점이 된 인물이다.

<대명왕조> 메인포스터에서 폭군 가정제(왼쪽)와 충신 해서를 대비시켰다.
해서는 명대 최고의 악동 황제였던 가정제(嘉靖帝, 재위 1521~1566) 때, 직언을 하다가 파직된 관리다. 베이징 부시장이던 우한(吳唅)은 마오쩌둥의 지시로 해서에 관한 극본을 하나 썼다. 그런데 이 극본은 생각하던 것과 너무나 다르게 사용됐다. 사인방이 된 야오원위안(姚文元)이 상하이 <원후이바오(文匯報)>에 이 연극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다.

야오원위안의 글에 의해 마오쩌둥은 가정제가 되고, 펑더화이가 해서가 되었기 때문이다. 펑더화이는 루산회의에서 당시 대약진운동으로 인해 곤경에 처진 중국인들의 처지를 알리는 편지를 마오쩌둥에게 썼다고 위기에 처한 인물인데, 야오원위안이 이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결국 이를 시작으로 문화대혁명의 터널에 들어가는 계기가 됐다.

때문에 해서는 일종의 금기 인물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방송하는 드라마 <대명왕조>는 가정제의 대척점에 해서를 놓아, 다시 한번 부관참시된 기억이 있는 해서를 부르는 꼴이 됐다. 그런데 더 신비한 것은 이 드라마의 제작과정이다.

검찰이 드라마 제작까지 나서다니...

<21세계경제보도>에 따르면 이 드라마는 2002년 해서의 고향인 하이난다오(海南道)에서 씨앗이 잉태됐다.

당시 중앙 간부가 하이난다오에 왔을 때 해서의 묘를 보고, "해서의 정신은 우리들의 정신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공산당 간부는 하이난다오에 오면 당연히 해서의 묘를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하이코우시(海口市) 부시장 장송린(張松林)은 이 내용을 선전부에 전달했고, 이것이 드라마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드라마의 제작부서에 중국의 대검과 같은 중앙기율위원회 감찰부 산하의 화방음상출판사(華方音像出版社)가 이름을 건 것이다. 일단 중앙기율위가 이름을 건 명목은 "기율위의 활동 범위가 공산당 내에서 밖으로 나갔다"는데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검 중수부가 방송 만드는 데 나섰다면 이상한데 하물며 사회주의 국가의 감찰기관이 나섰다니….

해서 문화대혁명에 의해 부관참시됐던 해서가 다시 나왔다.
<대명왕조>는 내용적으로 봤을 때 이미 백성을 뜯어먹기에만 바쁜 중앙정부, 비단업-소금업 등으로 자본을 축적해 논을 뽕밭으로 바꾸려는 상업자본, 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힘든 농민과 같은 기층세력 등을 드라마의 세 축으로 했다.

드라마는 정권을 잡자마자 황제가 아니었던 아버지의 대우 문제로 4년 동안 투쟁해 자기의 고집을 관철한 가정제가 20년 동안 궁궐의 후원에 박혀서 신선이 되려는 상태에서 시작한다. 당시 가정제는 궁녀의 생리혈로 환단을 만들려다가 이판사판으로 그를 살해하려는 궁녀들의 난을 만나는 한심한 지경이다. 여기에 간신의 대표격인 엄숭(嚴嵩)과 이런 나라를 혁파하려는 해서 등이 대결을 벌이는 형태다.

사실 이 문제는 조금만 더 잘 보면 현실 정치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 정부가 가정제처럼 골방에 처박혀 있지는 않지만, 지금은 당시 비단업 등으로 자본을 축적하던 상인들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부호들이 탄생했다. 이들은 대부분 공산당 간부의 자제나 친척 등인데,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의 발전을 통해서 거부로 성장했다.

반면에 기층민이라고 할 수 있는 농민이나 여전히 10년째 월 100달러의 월급을 넘기고 있지 못하는 도시 노동자들이라 할 수 있다. 올림픽을 거치면서 이런 기층민들의 요구가 거세질 것은 뻔한 일이고, 후진타오 정권의 가장 어려운 점 가운데 하나가 이 요구를 어떻게 연착륙시킬 것인가이다.

어렵지 않게 추리할 수 있는 이런 갈등요소들이 드라마를 통해 공공연하게, 특히 중앙기율위의 이름까지 걸고 나오는 것은 중국 정부의 의지가 어디에 있는가를 상대적으로 방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방송 영향력 등에 업은 출판물 줄줄이 히트

<대국굴기> 세계 패권을 연구한 다큐 <대국굴기>는 책으로도 나와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정치적인 문제도 건드리고 있지만 지난 몇 년간 중국 방송이 출판계에 미친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사실 잘 만든 방송 하나는 책에 버금가는 질과 양을 갖고 있다. 2년전부터 중국 서점가는 방송 쪽의 파워가 잔뜩 강해졌다. 2년간 수백만권이 팔려나간 이중톈의 역사서 바람도 CCTV 10채널에서 방송하는 <백가강단(百家講壇)>의 결과물이다.

이중톈에 이어서 다시 <백가강단>에서 만만치 않은 탄생물이 나왔다. 베이징 사범대학 위단(于丹) 교수의 <위단 논어를 얻다>인데 방송이 인기 있자 출판사는 초판으로 100만부를 찍어 전국에 뿌렸고, 베스트셀러 1위를 독주하며 이미 200만부 이상 소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책은 중관춘 도서빌딩에서만 하루에 1만3천부가 팔려 출판계를 경악시켰다.

위단 교수는 베이징 사범대학 교수로 문학석사와 미디어 박사를 전공했다. 특히 CCTV의 메인 프로그램인 <동방시공(東方時空)>, <오늘을 말한다(今日說法)>, <예술인생(藝術人生)> 등의 책임 편집을 맏았던 중국 문화콘텐츠 관련 지식인의 대표격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국경절 연휴기간동안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논어(論語)를 이야기했고, 생활에 빗댄 쉬운 강의로 이중톈의 책처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백가강단>의 인기에 버금가지는 않지만 대형 다큐의 출판물들도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우선 지난해 7월에는 <다시 창지앙을 말한다>의 출판본이 출간되어 인기를 끌었다. 33부작인 이 다큐는 창지앙의 발원지인 티벳 커커시리를 기점으로 창지앙의 물 줄기를 따라가면서 주변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연 등을 포괄적으로 담아낸 초대형 다큐다.

20년전에 제작한 다큐를 보강 재생한 측면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책에는 진행과정에서 찍은 스틸사진에서 정선한 500장의 사진을 비롯해 이 프로그램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어 중국을 이해하는 좋은 바탕을 주고 있다.

대형 다큐의 출판화는 올 1월 <대국굴기>와 부속도서 간행으로 이어진다. 대국굴기는 지난해 11월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이 방영한 특집 대형 다큐멘터리로 포르투갈·스페인·네덜란드·영국·프랑스·독일·일본·러시아·미국 등을 자세히 분석한 책이다.

신대륙을 발견한 15세기 이후 400년 동안 꼬리를 물고 부침한 강대국의 흥성 원인을 현지 취재를 통해 상세히 분석한 이 다큐멘터리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지시와 후원 아래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획과정을 놓고 논란이 있다.

태그:#TV정치, #드라마, #중국, #해외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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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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