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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 피스로드에 참가한 한일 대학생들 앞에서 '위안부' 생활을 증언하고 계신 나눔의 집 이옥선 할머니.
ⓒ 이명익
▲ 굴곡진 역사를 온 몸으로 살아 온 할머니의 증언에 학생들의 눈시울은 뜨거워졌다.
ⓒ 이명익

"할머니께서는 위안부에 끌려오시면서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그 피해를 준 사람들이 지금도 살아있다면 용서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앞에 없으니까 괜찮은 거지, 지금 앞에 있으면 용서 못하지.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판에 어떻게 용서를 해."

"그럼 할머니께서는 그렇게 용서를 못 하면서도 저희같은 학생들에게 이런 증언을 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우리 할머니들은 힘이 없어, 여기 앉아있는 학생들이 할머니들에게 힘이잖아."


한일 대학생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만남

▲ 나눔의 집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무라야마 잇페이씨가 나눔의 집 역사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관련에 대한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 이명익
@BRI@10평 남짓의 작은 방안, 옹기종기 모여앉은 30여명의 대학생들 중 앳된 얼굴을 한 일본인 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힘없이 늙었지만 뚜렷한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할머니는 원망과 기대가 섞인 답변을 해왔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진행되는 이야기에 작은 방에 모여앉은 학생들의 또렷했던 눈망울들은, 조금씩 붉어지고 있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픔과 대면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그 아픔이 당사자나 가해자가 아닌 제3자에게 전해진다 해도, 아픔을 대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아픔은 마음 속에 생채기를 내고 만다. 하지만 그 아픔들이 개인의 미시사가 아닌 뒤틀린 역사의 한 단면을 꿰뚫고 갈 때는, 그 아픔은 역사를 바로잡고자 하는 행동들을 만들어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

지난 3일부터 9일까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나눔의 집에서 열린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한일 대학생들의 2007 피스로드'는 그런 행동의 기틀을 마련해주는 뜻 깊은 행사였다.

가해국과 피해국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을 떠난 공통된 역사의식은,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는 기틀을 마련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젠 이런 역사적 증언을 해 줄 할머니들이 한 분씩, 한 분씩 계속 세상을 떠나고 계시다는 것이다.

▲ 위안소를 재현해 놓은 체험의 장. 일본군들은 전쟁 당시 지금처럼 걸려있던 명패를 보며 위안부들을 선택했다고 한다.
ⓒ 이명익
▲ 어린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들의 대부분은 글을 배우지 못해, 나눔의 집으로 온 후 그림으로 그때 당시의 체험을 표현했다고 한다.
ⓒ 이명익
지금 나눔의 집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는 무라야마 잇페이씨가 할머니들과 같이 생활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고 한다.

"2004년 여름이었어요.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있으면서, 봉사활동 때 알게 된 나눔의 집 김순덕 할머니가 돌아가셨죠. 그 때 들은 생각이 '아~ 할머니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구나' 하는 거였죠. 그러면서 60년이 넘은 역사 속에서 일본사회가 얼마나 역사의 산 증인들을 무시하고 있는지도 실감하게 되었고요. 그 후 작년 4월부터 비워진 통역자리와 같이 일하자는 나눔의 집의 제의가 이 일을 하게 된 큰 계기였죠."

이번 2007 피스로드 행사는 '위안부'라는 역사적 문제를 두고 '만남과 기억, 모색과 사색, 그리고 화해와 새로운 시작'이라는 합숙 활동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두 나라의 대학생들이 아픈 역사를 함께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마련되었다.

국가적 차원이 아닌 민간차원의 활동이지만, 공통의 역사인식의 저변이 확대된다면, 향후 역사왜곡과 같은 일로 두 번의 피해를 입는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지 않은가? 한번은 비극으로, 그리고 또 한번은 희극으로, 다시 이어질 한일 간의 새로운 역사가 냉소 섞인 희극으로 반복되지 않으려면, 그 역사적 책임의 인식은 한일 어느 한쪽이 아닌, 공동의 책무로 받아들이고 함께 나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 역사인식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떠난 자리에선, 서로의 눈빛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20대의 젊은이들일 뿐이다. 설거지를 하며 즐거워하는 학생들(좌로부터 야마구치 아야카, 권은성, 구마가이 나미).
ⓒ 이명익
▲ 첫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받고 모처럼 밝은 표정을 짓고 계신 이옥선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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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해의식과 피해의식이 아닌 같은 역사인식의 바탕이야말로 한일 양국의 바른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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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피스로드, #대학생, #위안부, #이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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