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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서울 삼성동 한 예식장에서 열린 `한강포럼` 창립총회에 참석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특강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박근혜 캠프에서 '사람 중심의 성장 전략'을 의미하는 '사람 경제론'을 들고 나왔다. 충격이었다. 진보 진영에서나 어울릴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면, 그렇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왜, 이렇게 자신하냐고? 필자가 '사람 중심의 성장 전략'을 주장한 원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8일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올린 기사 '감세를 반대하면 무조건 개혁적일까?(세금 논쟁 시리즈 4편)'의 핵심은 기존의 '자본과 건설 중심의 성장 모형'을 '사람 중심의 성장 모형'으로 전환을 주장한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9개월 후인 지난해 11월초, '사람 중심의 성장 전략'으로서 '3-fare 모형'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실천 전략을 담은 보고서를 완성해 공개적으로 발표했다.(자세한 내용은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사이트 www.piess.or.kr에서 '한국형 신성장동력 사회투자모형과 그 실현을 위한 조세재정 개혁 과제' 보고서를 다운받아서 보면 된다.)

사람 잡는 '사람 경제론'

필자가 사람 중심 성장 전략을 구상한 것은 신(新)성장론이라는 이론을 접하고부터다. 1980년대 처음 제기된 신성장론은 자본과 노동의 투입량이 경제성장의 내생변수라고 설명한 고전적 경제성장론과 달리 질적인 인적자원과 지식스톡을 더 중요한 경제성장의 내생변수로 보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지식기반 경제론의 기초가 되었고, 지식기반 경제론은 90년대 클린턴 정부의 실리콘밸리발(發) 경제 부흥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지식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사람에 대한 투자가 지식기반 경제 하에 가장 중요한 성장 전략일 것이라는 가설 아래 여러 나라의 사례를 보던 중 핀란드의 평생학습 시스템에서 결정적인 영감을 얻었다. 핀란드의 평생학습 시스템은 무상교육과 산학연 연계교육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하고 있다.

평생학습시스템 구축을 학습복지(Learnfare)로 하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일자리 복지(Jobfare), 그리고 사회적 안전망(Welfare)의 트라이앵글 모델 즉 3-fare 모형을 '사람 중심의 성장 전략'으로 제기했다.

이 3-fare 모형은 사람에 대한 투자를 최우선시하고,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므로 양극화를 해소하면서 성장을 견인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박근혜 캠프 역시 '사람 경제론'은 성장의 동력을 사람에게서 찾고, 사람의 행복을 최종 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그 구체적인 전략으로 제기된 것은 ▲국가 기강과 법 질서 확립 ▲불필요한 규제 철폐 ▲외교안보 역량 강화 등이었다.

사람 경제론을 들고 나왔으면 사람에게 어떻게 투자하겠다는 것인지, 그리고 그 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등을 설명을 해야지, 이게 웬 생뚱맞은 소리인가?

더욱 가관인 것은 국가 기강과 법 질서 확립은 불법 시위 근절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시위를 못하게 하면 경제가 성장한다고 하니 유신세력다운 발상이다. 집회 시위가 그렇게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면 집회시위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무력으로 한미FTA 반대 시위를 못하게 하는 게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한미FTA를 반대할 명분이 없도록 국익에 맞는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사람을 살리려고 '사람 중심 성장 전략'을 내놓았더니, 이를 사람 잡는데 쓰려고 한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고 칼을 만들었더니 이를 흉기로 쓰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재벌을 위한 사람 경제론

▲ 지난 8월 9일 오전 여의도 전경련 빌딩에서 열린 '열린우리당-전경련 정책간담회`에 참석한 강신호 전경련 회장 등 경제계 인사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두 번째 전략으로 내세운 것은 불필요한 규제 철폐이다. 말 자체로 보아서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내용을 보니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가 주목적이다. 재벌 봐주기가 사람 중심 성장이라니,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세 번째 전략인 외교안보 역량 강화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예가 없어 내심을 알 수가 없다. 혹시 '미국에게 아부하고 북한 때려잡기'가 아닐런지? 앞의 두 예에 비추어 전혀 엉뚱한 추측이 아닐 수도 있다.

한나라당 단골 메뉴인 감세 역시 빼놓지 않았다. 감세하면 누가 행복한가? 돈벌이가 시원치 않아 세금 걱정할 필요조차 없는 서민은 행복하지 않다. 돈에 치이는 대기업과 부자가 행복한 것이다. 그리고, 감세하면 재정이 부족할텐데 그렇게 강조하던 교육에 대한 투자는 무슨 돈으로 할 것인가?

박근혜 캠프의 사람 경제론에서 행복해야 할 사람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인 것 같다.

시민경제사회연구소에서 '사람 중심 성장 전략'을 담은 보고서를 아무런 대가없이 공개한 이유는, 여러 곳에서 이 보고서를 본래의 취지대로 사용함으로써 사회에 널리 퍼진 '경제성장전략 = 개발독재시대의 개발정책'이라는 잘못된 환상을 극복하고자 하는데 있었다.

그런데 박근혜 캠프는 이를 전혀 엉뚱하게 쓰고 있다. 좋은 뜻으로 만든 '사람 중심의 성장 전략'을 더 이상 모욕하지 말고 사람 경제론을 철회하길 바란다. 정 그렇게 사람이란 단어를 쓰고 싶으면 '특별한 사람 경제론'으로 바꾸든가.

태그:#박근혜, #캠프, #경제론, #사람경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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