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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그룹 관련 기사 삭제건으로 시사저널 노조가 '편집권 사수'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직장폐쇄 조치로 맞섰던 금창태 사장 등 시사저널 경영진이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이날 금 사장이 반박 자료로 제시한 '삼성'을 다룬 시사저널 커버스토리.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독한 외면이다.

왜 그럴까? 저 깊은 곳에 각인돼 있는 자신들의 아픈 상처를 들출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고통 때문일까? 아니면, 이미 망각의 깊은 늪 속에 빠져 있는 것인가?

금창태 <시사저널> 사장이 입을 열었다. 공식 기자회견까지 열고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자신과 회사의 입장을 밝혔다. 각 언론사에 미리 보도자료도 보냈다. 그런데도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참세상> 등 인터넷 신문들과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일부 신문, 그리고 방송에만 기사가 났다.

주요 신문들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저널리즘의 핵심 쟁점인 편집권이라는 뜨거운 쟁점에 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동아일보> 디지털 뉴스팀 김동원 기자가 쓴 책소개 기사 '<시사저널> 기자들의 '기자로 산다는 것''이 외롭게, 그것도 온라인판에서만 눈에 띈다.

편집권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오늘 <한겨레>의 기사(편집권은 누구 몫? 다시 물음 앞에 서다-<시사저널> 사태로 '뜨거운 공방')는 그래서 돋보인다.

지독하고 철저한 외면, 그 뒤에는

▲ 언론노조는 2일 오전 삼성본관앞에서 '<자본권력> 삼성의 언론통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안철흥 시사저널 분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금창태 <시사저널> 사장은 6일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편집권의 문제에 대해 "사장이 전체 업무를 관장하는 데 한계가 있어 (편집권) 일부를 실무진인 편집국장에 위임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겨레>는 그의 주장의 타당성을 따져 물었다.

열린우리당 <시사저널> 사태 진상조사위원회가 현직 기자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6.7%가 "편집권은 편집국에 있다"고 답했다. "발행인과 편집인을 겸하면서 편집권을 발행인만의 배타적 권리로 강조하는 금사장의 논리는 '제 논에 물대기'식의 해석"이라는 조준상 언론노조 정책실장의 주장도 소개했다.

이 기사는 "<조선> <동아> 같은 대형 신문사들은 기자들과 상반된 의식을 갖고 있다"면서 그러나 "언론계는 전체적으로 편집권은 취재편집 종사자가 주도하되 경영진도 상황에 따라 공유하는 권리로 여기는 풍토가 자리잡았다고 보고 있다"고 전한다. 지난해 6월 신문법에 대한 위헌심판 당시 헌법재판소는 "언론사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에 얽힌 조직체"라고 규정해 편집권이 공유하는 권한의 성격임을 암시한 바도 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편집권 문제는 언론계의 해묵은 쟁점이다. 어찌 보면 다수의 신문사와 기자들에게는 이제 아득한 과거의 쟁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한겨레>가 지적한 것처럼, 편집권에 대한 '상반된 의식'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금창태 <시사저널> 사장은 "편집의 최종 책임은 편집인을 겸한 대표 이사 사장이 진다, 따라서 편집에 대한 사장의 권한은 핵심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금 사장은 뭔가 착각하고 있다.

금창태 사장이 착각하고 있는 것

<조선일보>는 2005년 신문법 등에 대한 위헌 심판 청구서에서 "신문 자유의 핵심은 경향(경향성) 보호에 있고, 그 주체는 발행인"이라고 주장했다. 편집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한 신문법 제3조는 물론 "정기간행물의 편집 또는 인터넷 신문의 공표에 관하여 책임을 지고 있는 자를 '편집인'으로 한다"는 신문법 제2조 9항도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편집의 자유와 독립, 즉 편집권은 전적으로 '발행인'에게 귀속돼 있음에도 이들 법규가 편집권의 최종적인 권한을 '편집인'에게 귀속시키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편집인 또한 기자집단에 속하는 발행인의 대리인'일 뿐이라는 주장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금창태 편집인의 주장은 '발행인의 논리'에 비춰보자면 빗나간 '권리 주장'이다. 물론 금창태 사장은 <시사저널> 발행인도 겸하고 있다. 그러니 편집권이 편집인에게 있다고 하든, 발행인에게 있다고 한들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 맥락을 따져보면 큰 차이가 있다.

<조선>이 위헌심판에서 전적으로 편집권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 '발행인'은 사실상 '오너 발행인'을 뜻하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설립은 그 출발점에 있어서는 자본을 투자하는 자의 사상이나 세계관을 전파하기 위한 행위"라는 <조선>의 주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발행인이라도 격이 있는 셈이다.

▲ 시사저널 노조원들은 사측의 직장폐쇄에 항의하며 24일 오전부터 서울 서대문 시사저널사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천막에 설치된 시사저널 표지 모음 현수막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편집권에 따르는 의무는 지켜졌나

그런 점에서는 편집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며, "그 작동방향이 올바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는 김훈 전 <시사저널> 편집국장의 이야기가 더 현실적이다.

"편집권을 인격권이나 재산권처럼 (소유의 개념으로) 오해한 데서 이 모든 사태(시사저널 사태)가 빚어진 것"이라는 그의 진단이 그래서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편집인은 편집권이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성을 수호할 의무가 있을 뿐"이라는 그의 말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권리'에는 합당한 '의무'가 따르지 않는가?

삼성 관련 기사 삭제가 편집인으로서 당연한 '권리행사'였다는 금창태 사장의 주장은 물론 편집인으로서 마땅히 수행했어야 할 '직무(의무)'였다는 반어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훈 식으로 말하자면 이런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그런데 왜 하필 3쪽 짜리 '삼성기사'에서 그런 의무감이 그렇게 지대하게 발동했는가?

<한겨레>의 기사 제목이 묘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다시 물음 앞에 서다.' 누가 또 그 물음 앞에 서 있는가?

태그:#백병규, #미디어,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미디어워치, #조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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