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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석궁 피습'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3일에도 전국교수노동조합은 토론회를 열고 "(이번 사건은) 재임용제도를 악용해 온 대학의 몰지각한 행태와 이를 방치한 교육부, 사법부 등 사회 권력이 한 개인에게 가한 폭력의 결과"라고 성토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불상에 절을 했다'는 이유로 재임용을 거부당한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의 글을 받았다. 다음은 기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성균관대 김명호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10년을 전전긍긍하다가 자신의 교수지위보전신청을 기각한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쏴 부상을 입힌 뒤 구속 수감되었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은 김 교수가 가방 속에 노끈과 회칼도 소지하고 있었다는 식의, 구독률을 의식한 자극적인 문구로 지면을 장식했고, 독자는 아무리 그래도 사람에게 화살을 겨누다니 말이 되느냐며 이야깃거리로 삼았다.

'상해 가한 행위'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하지만...

▲ 판결에 앙심을 품고 서울고법 민사2부 박홍우 부장판사를 피습한 전직 교수 김모씨(사진뒤편 오른쪽)와 범행에 사용한 석궁을 15일 밤 경찰이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황광모
물론 사람을 살상한 행위에 대한 대가는 어떻게든 치러야 한다. 하지만 그 사건을 대하는 순간 김 교수와 비슷한 경험을 해오고 있는 나로서는 저간의 상황에 대한 전체 그림이 대번에 그려졌다. 이 가슴 아픈 일 역시 근본적인 이유는 가려진 채, 자기 일이 아니다 싶으면 무관심 내지 가십거리 정도로 삼거나, 권력과 금력 눈치를 보면서 한 사람이 피해를 뒤집어쓰면 내가 안전해질 것이라는 '속죄양 논리'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의 허상이어야 할 악을 실상으로 만들어주는 대중적 심리, 사회적 논리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김 교수, 대학, 법원 사이에 벌어진 지난 십여 년의 상황을 일일이 다 알 수는 없지만 상상은 생생하게 되었다. 상상의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가 보자.

일단 드러난 현상은 이렇다. 1995년 김 교수가 수학과목 입시 문제의 오류를 지적했고, 그것 때문에 논쟁이 오갔다. 다음 해 김 교수는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승진이 거부되고 재임용에서 탈락됐다. 김 교수는 입시 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데 대한 학교측의 보복이라며 불복,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도 학자적 양심과 학문적 능력은 있지만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한 이에 대한 재임용 탈락은 정당한 조치라며 학교 손을 들어주었다. 그 뒤 김 교수는 2005년 교수지위보전신청을 내면서 항소했지만 법원은 이를 다시 기각했다. 그런 뒤 '석궁 사건'이 발생했다.

분명히 김 교수와 학교 사이에 벌어진 입시 문제 오류 논쟁을 해결하는 과정에 학교나 동료 교수 사이에 마찰이 생겼을 것이다. 일단 오류가 있었다는 것은 법원도 인정한 부분이었는데, 정말 거기서 출발한 사안이었다면 그 범위 안에서만 해결하면 된다.

석궁 사건에 대한 상상

하지만, 조용히 넘어가도 될 일을 왜 들쑤셔서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킬 필요까지 있겠냐며 학교측에서는 탐탁치 않게 여겼을 것이다. 물론 나의 상상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 학교 내 구성원들 대부분은 그러한 논쟁에 개입하려 들지 않는다. 남의 암병보다 나의 감기를 더 심각하게 느끼는 근시안적 이기주의 때문이다. 같은 과 동료 교수들도 괜히 끼어들지 말자며 몸을 사렸을 것이다.

자기 일이 아니어서 귀찮기도 했겠거니와, 김 교수의 지적이 옳았더라도 공연히 학교 측에 밉보여 언젠간 무슨 불이익을 당하게 되지나 않을까 침묵하는 게 대부분이다. 아니면 힘의 논리에 따라 어떤 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학교 편을 들 수도 있다. 아마도 소수만이 김 교수 편을 들었을 것이다. 김 교수는 그들에게서 위로를 받았겠으나 역시 소수였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도 묻혀버렸을 것이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상처를 더 크게 받았을 것이다.

그러자 김 교수는 감정이 격해지면서 더 과격한 언행을 했을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치달으면 학교는 점차 교육자로서의 자질 운운하며 감정 섞인 인간적 흠집내기까지 시도했을 공산이 크다. 김 교수가 학교 밖 법정에 호소한 이유인 셈이다. 학교 안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법정소송에 이르면 학교는 사건의 근본 원인은 제쳐놓은 채 힘의 논리에 편승하거나 굴복한 다수 학내 구성원들을 동원해 학교에 유리한 각종 자료들을 만들기 마련이다.

절박한 김 교수는 그 과정을 법원에서 정당하게 판결해줄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원 역시 비슷한 과정 속에서 판결을 준비했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 십 차례 이상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하는 부산한 법관의 입장에서는 그 엄청난 자료집들을 다 읽어볼 새도 없다. 개인에게는 전 인생이 걸린 문제였지만 법관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격무에 시달리게 하는 피곤한 일거리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수 있다.

당연히 법관은 소장에 적힌 사건의 실상을 꼼꼼하게 읽고 판단하기보다는 양방간의 힘의 균형을 재보고 여론을 적당히 봐가며 판례대로 판결하려는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어쩌면 결론을 미리 내고서 소장을 적절히 취합해 판결문을 써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전 인생을 걸고 자료를 정리해 소장을 제출한 뒤 정당하게 판결해주길 바라던 억울한 이의 마음은 그곳에 반영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위협용이었든 어떻든 석궁을 준비해 판사를 찾아가게 만든 계기가 된 게 아니었을까.

▲ '석궁 습격' 사건으로 구속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자필 메모.

'악'의 문제에 대해

물론 위의 글은 상상에 의한 구성물이되, 나의 비슷한 체험에 근거한 상상적 구성물이다. 교수 사회에서 연구 내지 교육적 성과에 대한 압력은 이전에 비해 급격하게 가중되고 있지만, 정말 결정적인 결격사유가 아니고서는 재임용 탈락까지 가지는 않는다. 같은 대학 안에서 김 교수보다 '교육자적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이 교수로서의 신분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교육자적 자질이라는 추상적이고 내밀한 개념만으로 재임용 거부의 결정적인 사유를 삼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 것은 사실상 재임용을 거부하기로 작정한 뒤 그 거부를 정당화시켜주는 자의적 '수단' 정도에 불과할 때가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의 연장선에서 재임용 거부의 '원인'이기보다는 '수단'이었던 항목을 '원인'으로 재둔갑시켜 복잡다단한 인간의 내면까지도 재단하는 법원의 '월권'이 지속된다.

이즈음 내가 말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는 이른바 '악'의 문제이다. 김 교수에게 학교나 법원은 일종의 악의 세력으로 비쳤을 텐데, 이런 사건 역시 악이라는 것이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다시 사건의 근원으로 가보자.

분명히 입시 문제가 잘못 출제되었다는 것은 누군가의 실수였을 것이다. 실수는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따라서 실수를 실수로 인정하면 문제는 비교적 간단히 해결된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대학의 명예가 실추되고 학과 내지 교수들의 역량이 의심받게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사자들에게는 그것을 슬쩍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바로 여기가 악이 힘을 얻게 되는 출발점이다. 만일 그럴 때 굳이 양심이니 정의니 하는 거창한 말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어릴 적 유치원에서 배운 아주 기본적인 자세 하나를 실천에 옮기면 세상에 악이라는 것은 이름조차 내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미안하다며 실수를 실수로 인정할 줄 아는 자세이다. 그것이 인간이, 그것도 교육기관의 정점인 대학이라는 곳에서 취해야 할 기본적인 자세이다.

▲ 교수노조가 2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에서 '김명호교수사건을 계기로 본 대학교원 임용제도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 안윤학

'악'이 공룡처럼 커가는 과정

그런데 그렇기는커녕 실수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공연히 더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악의 세력을 키워가는 주인공이 된다. 이렇게 근본 원인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을 텐데도, 그 아무 것도 아닌 원인을 무마하려는 작은 욕심에 주변이 침묵하거나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쪽 편을 들면서 그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엄청난 힘으로 키워나가는 것이다. 허상이어야 할 악이 공룡처럼 거대해지는 과정은 늘 이런 식이다.

나는 10년 동안 벌어진 김 교수 사건을 일일이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 고스란히 재생시켜낼 수도 없다. 굳이 양비론적으로 판단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물론 김 교수에게도 문제는 있었을 것이고 여전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근본 원인을 다루어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면 무엇이 진실인지 그려진다. 지금 누군가에게 일시적으로 정당성이 확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 있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이미 밝혀져 있다. 우리가 그저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는 작은 일 하나하나를 솔직해야 다루고 행동해야 할 책임과 의무만이 부여되어 있을 뿐이다.

태그:#석궁 습격, #석궁, #대학교원 임용문제, #석궁, #재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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