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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 눈이 내린 후 바람이 매서워진 30일, 이씨가 그날 첫 배달을 가고 있다.
ⓒ 이덕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화 한 통'이면 맛있는 음식을 싣고 달려오는 사람들. 바로 '음식 배달원'들이다. 이들이 있기에 사람들은 안방에서 편안히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오늘날에는 배달 안 되는 음식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음식 배달문화가 보편화했다. 자장면, 피자, 치킨, 족발에서 도시락까지. 오죽하면 '배달(倍達)'의 민족이자 '배달(配達)'의 민족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중에서도 음식 배달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건 역시 '중국집 배달원'이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도 '신속 배달' 사명을 수호하고자 매서운 바람과 마주선 어느 중국집 배달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겨울보다 힘든 여름, 눈비 내리는 날 늘어나는 주문

▲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중국집 배달' 관련 기사에 달린 누리꾼의 댓글들.
ⓒ 인터넷 화면 갈무리
춘천의 한 중국집에서 일하는 이상훈(34·가명)씨는 올해로 중국음식 배달 10년차 베테랑이다. 이씨는 "대학입시에 좌절하고 돈을 벌기 위해 스무 살에 처음 (중국음식 배달을) 시작했다"며 "중간에 몇 년 외도했던 것을 제외해도 어느덧 이 일만 10년"이라고 소회를 털어놨다.

대부분 중국집 배달원들은 오전 9시 30분에 출근해, 영업 준비를 마친 오전 11시부터 본격적으로 배달을 시작한다. 배달은 보통 밤 9시 30분까지 계속되는데, 그릇은 바쁜 시간을 피해 틈틈이 교대로 찾는다고 한다.

이씨가 일하는 중국집에는 이씨를 포함해 총 3명의 배달원이 있다. 이씨는 "평일에는 한 사람당 하루 25곳 정도 (배달을) 가고, 주말에는 한 사람당 하루 35곳 정도 (배달을) 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배달하다 보면 유독 일하기 힘든 계절이나 날씨가 있기 마련. 그런데 이씨는 의외로 겨울보다 여름이 더 힘들다고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니 여름에는 시원하겠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내리쬐는 햇볕에 달아오른 아스팔트 때문에 여름이 더 힘들다. 게다가 겨울엔 배달을 다녀와 가게에서 몸이라도 녹이지만, 여름에는 요리하는 열기에 가게 안이 그야말로 '찜통'이다. 배달 장사로 먹고 사는 '영세한' 중국집에 냉방기가 있을 리 없다."

▲ 장대비가 쏟아지던 지난해 7월 16일 카메라에 담은 오토바이 배달원 모습.
ⓒ 선대식
물론 배달하러 다니기 위험한 건 비나 눈이 내리는 날이다. 이씨는 "아무래도 비나 눈이 오는 날, 또는 (길이 미끄러운) 그 다음날엔 오토바이를 타기 조심스럽다"면서 "사고도 자주 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씨는 정작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 날도 "갑자기 비나 눈이 내릴 때"라며 "밖에서 먹으려고 했던 사람들이 (안에서) 시켜 먹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씨는 이달 초에도 자칫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고 한다. 배달 가던 길에 승합차가 이씨에게 달려든 것. 이씨는 "다행히 빨리 피해 다치지는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익숙한 듯 "다친 데도 없고 오토바이도 멀쩡해 엎질러진 음식 값만 받고 다시 일했다"고 말했다.

'속옷' 차림의 여자 손님에 당황, 그릇 위 '쪽지'에 보람

▲ 이씨의 철가방. 볼품없을지언정 은은히 빛난다.
ⓒ 이덕원
'손님은 왕'이라는 말도 있지만 배달하다 보면 불쾌한 손님을 만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이씨는 "가끔 '야, 거기에다 놔'라며 다짜고짜 반말하는 손님들이 있는데, 나이 드신 분들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나보다 어린 사람이 그럴 때는 정말 기분 상한다"고 하소연했다.

음식 배달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이렇듯 아직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씨는 "아직까지 음식 배달은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하류계층으로 보는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어 "특히 중국집 배달원을 그렇게 본다"며 "그래서인지 (20대 초·중반의) 젊은 사람들은 중국음식 배달이 더 창피하다고 생각해 피자 배달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배달 음식이라는 게 실내에서 편하게 먹으려고 시키는 것이다 보니 '황당한' 일도 많이 겪는다고 한다. 배달 갔을 때 손님이 '속옷' 차림으로 음식을 받는 경우가 그 중 하나. 이씨는 "특히 여자 손님이 속옷만 입고 나오면 배달 간 사람이 더 민망하다"고 털어놨다.

또 소방서와 더불어 장난전화의 표적이 되는 곳이 중국집이다 보니, 기껏 배달 갔다가 헛걸음치는 일도 부지기수. 물론 '발신자번호표시서비스'가 보편화하면서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번호를 안 뜨게 하고 장난전화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아깝지만 음식을 버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외에 배달 갔다가 개에 물리는 일도 있다고 한다. 풀어놓고 기르거나 목줄이 긴 개가 낯선 사람인 배달원을 갑자기 덮치는 것.

▲ "정확히 기억한다"면서 이씨가 직접 기자의 수첩에 적은 쪽지 내용.
ⓒ 이덕원
"배달원 아저씨. 정말 맛있게 먹었어욤. ^^ 수거하세요."

반면, 한 달여 전 이씨가 찾으러 간 그릇에는 이렇게 적힌 쪽지가 붙어있었다. 이씨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이렇게 그릇에 쪽지를 넣어놓는 손님들이 있다"며 "(그 외에) 그릇에 과일이나 과자를 담아놓는 손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럴 때면 이씨는 "맛있게 먹었다는 말에 그저 보람을 느낄 뿐"이라며 심지어 "(손님이) 음식을 깨끗이 다 먹은 그릇만 봐도 기분 좋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씨는 반대로 음식이 맛없었다는 말을 듣거나 많이 남아있을 때면 속상하다고 한다. 음식 맛이 중국집 사장에겐 매출이고 주방장에겐 자존심일지 몰라도, 정작 "손님한테 '직접 전하는' 배달원에겐 '자신의 얼굴'과 같다"는 것이 이씨의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씨가 매일같이 들고 다니는 철가방은 볼품없을지언정 유난히 '빛나' 보였다.

덧붙이는 글 | 이씨는 중국집 배달원이라는 자신의 직업에 누구보다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씨가 '실명'을 밝히지 못한 것은 다른 개인적인 사정 때문입니다.


태그:#배달원, #중국집 배달, #철가방, #중국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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