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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승창

샌프란시스코를 회의차 들렀다가 LA 할리우드 거리를 찾았다. 일요일 낮, 할리우드 거리는 관광객으로 북적거렸다. 할리우드가 전세계로부터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 넓지 않은 거리에 빼곡히 찬 관광객들은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구경을 해야 했다.

며칠 전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이 열렸고, 할리우드의 코닥극장에서의 아카데미 시상식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저 미국 영화배우들만의 행사가 아니다. 이미 아카데미는 전세계 사람들의 관심 속에 열리는 시상식이다. 그만큼 세계 영화 시장에서 할리우드가 차지하는 위상이 엄청나다는 반증이다.

할리우드 거리에 난무한 장삿속

@BRI@레드 카펫이 깔리는 코닥극장의 계단 좌우에는 그동안 수상한 작품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둥이 서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볼 수 있는 기둥 앞면에는 지금까지 수상한 작품들이 적혀있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오면서 볼 수 있는 뒷면에는 연도만 새겨진 채 비어 있다.

코닥극장에서 시상식이 열린 지는 몇 년 되지 않았지만 계단 옆 기둥에 2070년대까지 자리를 비워놓은 것에서 그들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할리우드 영화의 영원무궁을 믿어 의심치 않는 모습으로 읽혀지는 것이다.

할리우드 거리를 걷다보면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형상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진품'은 아니다. 돈벌이를 하기 위해 분장을 한 사람들이 길거리 여기저기에서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으면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한 가족이 사진을 찍고 금방 돈을 주지 않으니까 노골적으로 돈을 달라며 손을 흔드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람보, 슈퍼맨으로 분장한 사람들은 영락없이 배우들과 닮은꼴인 사람들이다. 처키도 있고, 스타워즈에 나왔던 우주인도 있다. 전세계 사람들에게 익숙한 영화 속 인물들이 할리우드 거리에서 살아 움직이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영화가 한 번 팔리고 나면 그뿐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부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차이니스 시어터 앞의 그 유명한 배우들의 핸드프린팅, 풋프린팅이 새겨져 있는 마당은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들의 손모양, 발모양을 찾아 손을 대보고 발을 대보며 사진찍는 관광객들로 그득하다.

길바닥에 새겨져 있는 별 모양의 배우들 이름판 앞에 잠시 멈추다 보면 유명배우 코스튬을 한 사람들과 마주치거나 기념품을 파는 가게 앞에 서 있게 된다. 거리 전부가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기억'을 재생하여 그 추억을 팔거나 기념품을 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 한 명이 '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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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이 거리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유명한 배우들을 종종 만났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 거리에 우리가 흔히 아는 배우들은 없다. 그 유명한 배우들은 다 돈 벌어서 비벌리 힐스나 말리부에 사니까.

알다시피 유명 배우들은 일상조차도 시장과 연결되어 있다. 그들 한 명이 큰 기업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전처럼 낭만적으로 할리우드 거리에서 커피를 마시는 여유란 어울리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린 셈이다.

한국도 이영애·배용준·장동건 같은 배우는 이미 그 자체가 기업이라고 할 정도로 영화산업의 규모가 커졌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자동차 몇 대 만들어 수출하는 것보다 부가가치가 훨씬 높다는 이야기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물론 한국의 영화인들 스스로 한국영화시장의 개방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할리우드의 공세에 저항하며 인용하는 말이긴 하지만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문화라는 측면보다 산업적 측면이 강조된 말이다.

이 거리에 서있으면 할리우드 문화가 어디까지 상품화되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는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가 타국의 영화시장을 얼마나 잠식하고 있을까. 이는 미국의 집요한 한국영화시장 완전개방 요구에 대한 싸움의 과정에서 이미 많이 알려졌다.

만약 당신이 할리우드를 방문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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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한국은 스크린쿼터제에 힘입어 할리우드 영화의 공세를 막고 자국영화시장을 지키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한미FTA 협상 때문에 의무상영일수를 줄이는 것을 선결조건으로 하면서 영화인들이 다시 거리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도 배우 문소리가 시위현장에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할 정도로 다가올 할리우드의 공세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할리우드 문화가 자국문화를 침탈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겠지만 이제 막 성장 가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이는 한국 영화산업과 이에 대한 영화인들의 우려가 배우들을 문화의 거리가 아닌 싸움의 거리로 내몰고 있다. 미국 LA의 할리우드 거리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거대 시장의 힘을 우려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할리우드를 방문한다면 의미있는 영화를 통해 문화의 흐름을 좇을 기대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영화와 배우조차 상품으로만 전시되고 있는 곳에서 그런 감흥을 맛보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할리우드와의 싸움이 끝난 뒤 우리 영화계가 지금 소리 높여 외치는 '문화'를 잊어버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품격 높은 자국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코닥극장의 줄지어 선 기둥을 넘어설 그런 자부심을 주면 좋겠다.

태그:#할리우드, #LA, #영화, #코닥극장, #스크린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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