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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9일 보건복지부는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에 대해 월 6천원 정도의 건강생활유지비를 지급하고 외래 진료시 방문당 1천~2천원의 본인부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의료급여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또한 의료급여 상한일수 365일을 초과하는 수급권자에게 1~2개의 병의원만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현행 의료급여증을 건강보험증과 구별되는 플라스틱카드로 변경하는 등의 시행규칙 개정안도 조만간 도입할 계획임을 밝혔다.

복지부는 이러한 제도 변경에 대해 최근 의료급여비용의 급속한 증가로 인한 불가피한 조처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의료급여제도의 본래의 목적과 의미를 망각했을 뿐 아니라 재정안정의 책임을 가장 힘없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떠넘기려는 개악안일 뿐이다.

만성질환으로 정기적으로 병원 가면 누구나 365일 초과

@BRI@첫째,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에게 월 6천원의 보조금을 선지급하고 외래진료 시 본인부담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은 마치 월 3~6회의 외래진료를 보장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진료가 필요한 시점의 의료이용을 억제한다.

둘째, 의료급여 상한일수 365일을 초과하는 수급권자는 병의원 한곳만을 지정해서 다니게 하겠다는 선택 병의원제는 현 의료체계에 대한 이해는 물론 환자에 대한 의학적 고려도 없는 위험한 발상이다.

불필요한 의료자원의 낭비를 막고 포괄적인 환자관리를 위한 주치의제도의 도입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방만한 의료체계를 그대로 둔 채 정책만 바꿔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더구나 현실 대처능력이 가장 취약한 빈민층을 대상으로 준비도 없이 시범사업을 펼친다면 그들의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것이 너무도 자명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현재 복지부가 추진 중인 선택병의원제는 의료급여 환자들에게 병의원 이용에 불편함을 주어 재정을 절감하고자 하는 의도로 오해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마치 민간의료보험 사업자들의 상술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정책이 복지부의 고뇌에 찬 발상이라면, 복지의 시계가 거꾸로 돌고 있는 것이다.

의료급여일수가 365일을 초과하면 의료기관 과다이용자로 분류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못하다. 여기서 의료급여일수란 병의원에 대한 방문일수가 아닌 처방전 상의 투약일수이다.

예를 들어 혈압·당뇨 등의 만성질환으로 정기적으로 병의원을 방문하여 약을 처방받는 이라면 누구나 연간 상한일수 365일을 채우게 된다. 감기 등으로 한차례만 더 의료기관을 방문해도 상한일수를 초과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1차 의료기관의 상당수가 전문 진료과로 특화되어있다. 고혈압·뇌졸중후유증·불안신경증 등의 복합 상병으로 내과·재활의학과·정신과에서 각각 지속적으로 투약을 받는 환자라면 연간 급여일수가 1천일이 넘어가게 된다. 본의 아니게 도덕적으로 많이 해이한 요주의 인물이 되는 것이다.

물론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지나치게 의료기관을 과잉 방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들은 그야말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별도의 사례별 추적관리가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는가. 몇몇 사람이 제도를 허점을 악용한다고 전체에 연대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인권침해 논란 일었던 플라스틱카드, 의료급여 수급권자부터?

셋째, 의료급여증을 플라스틱카드로 대체하겠다는 발상은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에 대한 정부의 그릇된 편견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플라스틱카드는 그 정보의 집적성과 보안의 취약함으로 인하여 이미 한차례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키며 공론의 장에서 퇴출되었던 바 있다. 그런데 복지부에서 난데없이 의료급여증을 플라스틱카드로 대체하는 법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사회적 합의와는 별개의 존재란 말인가. 복지부장관은 어차피 전 국민에게 적용할 것이니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점입가경이다.

의료급여제도란 모든 이들에게 건강권은 기본권이며 따라서 가난한 이들에게도 치료받을 권리가 있고 그 책임은 사회에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회복지정책이다. 사회가 발달하고 평균수명의 증가로 노인인구가 증가하며 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갈수록 사회복지를 위한 비용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고민도 이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보다 양질의 복지를 보다 많은 이들에게 보다 지속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식을 찾고자 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원칙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의료급여는 빈자에 대한 사회적 적선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이지만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이들의 최소한의 권리이다. 따라서 의료급여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수급권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불이익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원칙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저 높은 곳에서 내려와 그들과 눈을 마주할 수 있는 낮은 곳으로부터 고민을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도덕적 해이란 물질적 풍요로움에서 파생되는 개념이다. 언제 우리 사회의 복지가 풍요로웠던 적이 있는가. 기본적인 생계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복지수준으로 도덕적 해이를 논하기는 시기상조다. 오히려 국민의 생존권과 건강권을 책임져야할 정부의 의지와 사명감이 해이해진 것은 아닌지 엄중히 돌이켜 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송관욱 기자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회원입니다. 대전의 노숙인 무료진료소인 희망진료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칼럼은 대전시민과 전문가,지역활동가들간의 의사소통과 시민 공론의 장을 위해 <대전시민아카데미>와 <대전충남오마이뉴스>가 마련한 참여공간입니다. 

*대전시민아카데미(http://www.tjcivilacademy.or)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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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속의 외딴 섬인 보건의료의 공공성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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