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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광훈 소장. 현재 25년째 진행성 근이양증(근육병)을 앓고 있다.
ⓒ 김혜원
근이영양증(근육병) : 근육을 유지하는 단백질 결핍에 의해 팔, 다리 등 근육이 굳는 병. 보통 소아기 때 발병해 점점 근육 힘이 약해지다가 당뇨, 대장암, 폐렴 등 합병증까지 겹치며 사망하게 되는 희귀질환. 치료약은 아주 개발되지 않아 물리치료가 전부.

서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광훈 소장(50). 진행성 근이양증(근육병)을 25년째 앓고 있으며, 근육병환우단체인 한국근육장애인협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82년 6월 근육병 진단을 받았다. 군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 초반의 나이. 5만 명 중 1명이 걸리는(지금은 3300~3500명 중 한 명) 희귀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을 그는 믿을 수 없었다. 처음에 계단 오르기가 힘이 들고, 종종 힘없이 넘어질 때도 '허리디스크'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근육이 점점 굳어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병. 치료약을 찾기 시작했다. 약이 없었다. 수술할 방법도 없었다. 주위 사람들은 조상 묘를 잘못 써서 그렇다고 수군거렸다. 결국 아버지 묘를 이장했다. 몸 상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투병 생활 5년 정도 하니 집안 재산이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에 있던 집(대지 40평, 건평 30평)은 날아갔고, 현재는 서울 서초동 영구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돌아눕는 것도 부인이 도와줘야...

▲ 최광훈 소장은 휠체어 없이는 바깥 생활을 할 수 없다. 다행히 현재 전동휠체어에 대해선 국가가 지원해주고 있다.
ⓒ 김혜원
1월 중순 센터에 있는 최광훈 소장을 찾았다. 찾기 전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신호가 감지되는데, 소란스런 사람들 소리만 들렸다. 1분 정도 들고 있다가 끊었다. 두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 최 소장은 "저 혼자 전화를 못 받아요. 사회복지사가 전화기를 귀에 붙여줘야 하는데 그게 안 돼서..."라며 미안해 했다. 이어 "말하는 것은 아무 문제없다"고 말했다.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최 소장은 전동휠체어에 앉은 상태로 손님을 맞았다. 팔 다리를 꼼짝 못하는 그는 단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말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표정이 밝았다. 꽤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상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대부분 부인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단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기, 머리 빗기, 밥 먹기, 옷 입기, 신발 신기 등을 부인 없이는 전혀 할 수 없다고. 심지어 혼자서 돌아눕지 못하기 때문에 부인이 수시로 잠자는 방향을 바꿔줘야 한다. 그는 "언젠가 출장 간다고 했을 때, 부인이 아주 신나하더라"면서 '껄껄' 웃었다. 이어 "솔직히 힘들지 않겠냐"면서 자신 때문에 부인이 제대로 잠자는 날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여름날은 특히 근육병 환자들에게 고통이란다. 모기가 물 때, 개미가 물 때 두 눈 뜬 채 꼼짝없이 당하고 있어야 한다고. 그는 근육병 환자들이 얼마나 심각한지 두 가지 사례를 이야기했다.

인공호흡기(병이 심해지면 호흡이 약해짐)를 단 환자가 갑작스런 돌풍이나 외부 충격을 받아, (인공호흡기가) 정전이 된 적이 있다. 이럴 때는 그냥 죽는 거다. 호흡기가 정전돼도 어느 정도까지는 유지되는 장치가 필요하다.

혼자 사는 근육병 환자한테는 119도 소용이 없다. 전화를 걸 수 없기 때문이다. 2005년 12월 경남 함안에 살고 있던 한 장애인은 보일러가 추위에 터지는 바람에 얼어 죽었다. 찬물이 방으로 흘러들어와 몸을 적시기 시작했지만 그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한 겨울 길거리가 아닌 방안에서 얼어 죽은 것이다.

그는 근육병 환자들에겐 별도 대책이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었다. 최 소장은 "근육병 환자는 약이 없기 때문에 약과 같은 대책은 필요 없다"면서 "물리치료 기구나 간병인과 같은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장 절실한 기구는 전동휠체어와 전동침대. 다행히 전동휠체어는 국가가 보조를 하고 있다.(300만원 정도 가격으로 의료보호 수급권자에겐 209만원, 건강보험권자에겐 176만원이 지원된다.)

전동침대는 간병인의 수고를 대폭 덜어준다. 레버 조작만으로 돌아눕는 것, 밥 먹는 것, 소변처리 등이 가능하다. 게다가 전동침대는 환자들이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게 해준다. 전동침대는 전동휠체어보다 조금 더 비싸다. 그는 "비용 걱정 때문이라면 임대 제도"가 있다면서 의지만 있으면 실행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전동휠체어 같은 경우 전기사용료가 만만치 않은데, 이에 대한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환자 곁에 붙어 있어야 하는 가족, 제2의 환자

▲ 근육병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약도, 병원도 아닌 간병인이다.
ⓒ 최광훈
근육병에 걸리면 다양한 개인 또는 사회 문제를 안게 된다. 먼저 출산 문제다. 근육병은 유전성 질환이다. 따라서 형제 중 근육병 환자가 있거나 본인이 환자일 때는 출산을 꺼리게 된다. 최 소장 또한 마찬가지. 결혼하고 난 뒤 나온 아이가 어느 날 까치발(발뒤꿈치를 살짝 들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을 땐 깜짝 놀랐다. 내심 '병이 유전된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을 했단다. 아이 때는 그런 일이 많다는 말을 들었지만 한동안 걱정이 가라앉지 않았다.

모계쪽 유전이기 때문에 가정 파탄 문제도 심각하다. 아이를 낳은 뒤, 근육병이 태어나면 책임을 어머니에게 돌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이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가출하거나, 이혼, 자살 등 문제가 일어난다.

보험처리가 안 되는 산전 유전자검사도 문제다. 비용이 대략 600-800만 원가량. 그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유전자검사를 보험 처리하는 게 옳지만, 아마 인권단체나 종교단체는 반대할 것"이라면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합병증도 큰 문제다. 성인 근육병 환자는 대부분 당뇨를 갖고 있다. 또한 소변 대변을 참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대장암에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재 훈련이 된 최광훈 소장의 경우 소변은 하루 2회, 대변은 이틀에 1회 정도다.

가족이 당하는 고통도 적지 않다. 오랫동안 환자를 치료하면서 가족 또한 제2의 환자가 되기도 한다. 최 소장은 가족의 도움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환자의 경우 환자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가요양기관이 해야 할 일을 가족이 하고 있다면 그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것. 그는 일본의 근육병 요양소, 미국의 가족 지원 대책 등을 언급하면서 가족까지 고통에 빠트리는 현실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난의 대물림, 질병의 대물림 끊어야 한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지만, 희귀질환과 가난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다. 가난한 사람은 영원히 그 상황에서 헤어날 수 없고, 보통의 사람을 누리던 사람은 그 이하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들에게 국가는 의약품, 병원, 재활기구 등을 지원한다. 하지만 지원을 받고 수술에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어봤지만 생활이 좋아졌다는 소리를 듣긴 힘들다.

최광훈 소장은 "수급권자 정책에서 납세자로 만드는 방향으로 정부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일정한 수입이 있어도 약값, 병원비, 기타 치료비 빼면 남는 게 없다. 직장을 포기하면 국가에서 의료보호 명목으로 약값, 병원비 등이 지원된다.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환자가 일자리를 찾게 되면 다시 지원이 끊어진다. 결국 현 정부 정책은 환자를 영원히 빈곤 상태로 두게 만든다는 것. 더불어 정부 재정에 부담을 줘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 최광훈 소장은 국가 정책이 '수급권자 정책에서 납세자로 만드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생각은 센터 소개문에 잘 나타나 있다.
ⓒ 김혜원
그는 "일자리를 달라"고 이야기했다. "희귀질환자에게 어울리는 일자리가 있냐"고 조심스레 물었더니 그는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근육병 환자의 경우 상담일을 잘 할 수 있다. 하루 종일 앉아 있거나 누워 있으니 생각할 시간이 많다. 또한 한 자리에 앉아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데 익숙하다. 또한 아픈 사람이니 누구보다 아픈 처지를 잘 알 수 있다. 일본에선 실제 상담하는 일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

최 소장은 자신이 일을 한 뒤 생긴 기쁨을 예로 들었다.

"항상 집에 있던 그에게 아들은 '다녀왔습니다'라는 인사를 했다. 그런데 일자리를 얻은 첫날, 일을 마치고 집에 갔더니, 아들이 '다녀오셨어요'라며 맞이했다. 울컥했다. 얼마나 기뻤는지. 이런 기분을 모든 중증장애인들에게 다 느끼게 해주고 싶다. 일하는 사람의 기쁨을 그들도 느껴야 한다."

현재 협회가 추정하는 근육병 환자 수는 2만 5천명. 정부 추산 7-8천명이다. 그는 근육병 환자가 장애인으로서 혜택을 받기를 희망한다. 장애인 시설 이용 등에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현재 2만 명 이상이면 장애인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희귀질환자들은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밝히길 꺼린다. 특히 근육병은 유전성 질환으로 가계 쪽 병력이 밝혀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게다가 근육병 환자는 일찍 죽기 때문에 성인 환자 숫자는 정해져 있다. 그래서 최 소장은 장애인 등록과 함께 희귀질환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희귀질환은 남 일이 아닙니다. 80년대 초만 해도 근육병은 5만 명 중 1명이 걸리는 병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3500명에 1명 꼴입니다. 불과 20여 년 동안에 14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누구도 희귀질환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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